드라마 ‘추노’의 촬영지였던 구룡마을 대숲.
홀어머니를 모시고 마를 캐며 근근이 살던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경주로 가서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주며 자기가 지은 향가인 서동요를 가르친다. '선화공주가 남 몰래 어느 남자(서동)와 정을 통한다'는 내용의 노래인 서동요가 널리 퍼져 진평왕의 귀에까지 들어가자 선화공주는 궁궐에서 쫓겨난다. 귀양길에 오른 공주를 도중에서 기다리다가 유혹한 서동은 이윽고 공주와 결혼한다.

이상은 <삼국유사>에 실린 '서동 설화'의 줄거리다. 이후의 이야기는 '미륵사 창건 설화'로 이어진다.

그 후 서동이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백제 무왕(재위 600~641년)이다. 무왕은 왕비와 함께 용화산 사자사로 지명법사를 찾아가다가 연못 속에서 나타난 미륵삼존을 본다. 이곳에 절을 세워달라는 왕비의 청에 따라 무왕은 지명법사에게 연못을 메워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지명법사는 산을 무너뜨려 연못을 평지로 만들고 그 자리에 미륵사를 세운다.

창건 연대가 확실하지 않지만 이러한 전설에 따라 무왕이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미륵사는 백제 최대의 거찰이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미륵사는 길이 172미터, 너비 148미터로 3탑3금당식의 독특한 배치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즉 중앙의 거대한 목탑 좌우로 두 기의 석탑이 있었고, 탑들 뒤로 하나씩의 금당(불당)이 세워져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건물과 탑 주위는 세 개의 회랑이 둘러싸고 있었다.

미륵사는 백제가 멸망함에 따라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때까지는 제법 번성했으며 억불숭유 정책을 폈던 조선 시대에 이르러 폐찰된 것으로 보인다.

국보 11호인 미륵사지 석탑의 해체 이전 모습.
목탑 양식 따른 국내 최대의 석탑

1980년부터 시작된 대대적인 발굴 조사 결과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었고 미륵사의 규모와 구조가 낱낱이 밝혀졌다. 사적 150호로 지정된 미륵사지는 면적 1338만4,699㎡에 이르는 광대한 규모로 석탑과 당간지주가 오랜 풍상을 겪은 채 남아 있다.

국보 11호인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나라 최대의 옛 석탑으로 높이 14.24미터에 이른다. 동서로 놓인 쌍탑 중에 서탑인 이 탑은 원래 9층으로 추정되지만 6층까지만 남았으며 그나마도 크게 파손되어 동면의 북쪽과 북면의 동쪽 일부만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미륵사지 석탑의 특징은 화강암으로 만든 돌탑이면서도 목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동안 이 탑은 볼 수 없다. 해체 보수 작업에 들어가 현재 보호막에 가려 있는 상태이며 2016년에야 공사를 마무리하고 다시 공개될 예정이다.

서탑 옆의 동탑은 높이 27.67미터, 기단 12.4미터의 구층석탑으로 1993년에 복원했다. 예산 부족으로 기계를 이용해서 깎았기 때문에 탑의 형태가 어색해 보였으나 근래 들어 이끼가 좀 끼고 연륜이 쌓이면서 제법 석탑 같은 느낌을 주기 시작했다. 보물 236호인 당간지주는 우아한 형태가 돋보이며 높이 4.53미터에 이른다. 여느 사찰과는 달리 두 개의 당간지주가 약 100미터의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는 점이 특이하다. 미륵사를 창건하면서 함께 세웠다는 설도 있지만, 금산사 당간지주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통일신라 때의 것으로 보는 견해가 더 유력하다.

자연 그대로의 오롯한 풍경 품은 대숲

미륵사지 석탑은 해체 보수에 들어가 보호막으로 가려 있다.
미륵사지에서 나와 구룡마을로 향한다. 동구로 접어드니 앙증맞은 벽화가 길손을 반긴다. 예로부터 품앗이 전통을 이어온 마을의 전래 이야기를 벽화로 그린 것이다. 잠시 후, 눈 쌓인 논두렁과 울창한 대나무 숲이 어우러져 아늑한 풍경을 펼친다.

면적 5만㎡에 이르는 대나무 군락지를 간직하고 있는 구룡마을은 우리나라 대나무의 주종을 이루는 왕대의 북방한계선이어서 생태적인 가치가 높다. 드라마 '추노'의 촬영지이기도 했던 구룡마을 대나무 숲은 2005년 겨울 냉해를 입어 상당수의 왕대가 말라 죽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이를 안타깝게 여긴 마을 주민과 산주, 전북생명의숲이 2006년부터 고사한 대나무를 제거하고 생육 환경을 개선하는 등 꾸준히 노력을 기울이면서 차츰 옛 모습이 복원되고 있는 중이다.

하늘을 찌를 듯 터널을 이룬 대숲 사잇길로 들어선다. 흰 눈 내려앉은 숲길을 걷노라니 뽀드득뽀드득 발자국 소리와 댓잎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정적을 깨고, 대나무 향이 은은하게 가슴으로 스며든다. 숲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겨울 햇살은 은빛과 초록빛이 손잡은 세상을 살며시 엿본다. 저 유명한 담양의 대숲과는 달리 꾸밈없이 투박하고 고요하다. 자연 그대로의 오롯한 풍경에 모든 욕심이 비워지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대숲을 돌아 나오는 길, '혼자보다는 동행이 아름답다'는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홀로인 나 자신이 왠지 모르게 쑥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 찾아가는 길

익산 나들목에서 호남고속도로를 벗어난 다음, 금마면 방면으로 온다. 금마에서 북쪽 722번 지방도를 따르면 구룡마을 입구를 지나 미륵사지에 이른다. 대중교통은 익산시에서 미륵사지로 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보물 236호로 지정된 미륵사지 당간지주.
▲ 맛있는 집

미륵사지 주변에는 순두부 전문점이 여럿 있다. 멸치국물에 바지락을 넣고 뚝배기에 끓인 순두부백반이 맛깔스럽다. 시뻘건 국물을 보면 맵고 칼칼할 것 같지만 막상 맛보면 약간 얼큰한 정도이며 시원하다는 느낌이 오히려 강하게 든다. 순두부찌개에 부추를 넣어 먹으면 한결 입맛을 돋운다. 내고향순두부(063-836-7660), 미륵산순두부(063-836-8919), 전통엄마순두부(063-836-9358) 등이 있다.


가족친화마을로 지정된 구룡마을 입구의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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