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 같은 설경을 만들어 내는 선픽.
설원에서도 가끔 신기루와 마주친다. 구름아래 펼쳐진 눈길 끝, 슬며시 내민 속살은 동화마을을 닮았다. 캐나다 밴쿠버와 밴프의 길목에 자리잡은 작은 스키마을 선픽. 그곳에서 현기증 나는 하얀 신기루를 만난다.

캐나다 서부 밴쿠버에서 승용차로 4시간30분. 스키마을 선픽의 인상은 고요하고 이채롭다. 이곳에서 나무 사이를 질주(일명 ‘트리 런’)하다가 문득 나타나는 정경과 마주치면 몸이 움찔해진다. 그림인지, 달력인지 분간 안되는 설경은 뒤통수에 둔기를 맞은 듯 현기증을 만들어낸다.

선픽은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BC)주에서 두 번째로 큰 스키장이지만 분위기는 따사롭고 아늑하다. 1년에 2,000시간 이상 해를 볼 수 있어 ‘Sun peaks’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휘슬러가 겨울시즌이면 전 세계 젊은 스키어와 보드족으로 술렁거린다면 선픽은 알프스의 한적한 스키장에 온 듯한 분위기다. 마을 숙소는 모두 스위스 샬레풍의 세모지붕들이다.

알프스를 연상시키는 아련한 설경

선픽은 분명 캐나다 서부의 대표적인 스키장인 휘슬러와는 다른 정경이다. 한국 사람들은 캐나다의 스키장하면 휘슬러 정도만 알고 있지만 선픽 역시 헤어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설경이 어우러진 선픽 슬로프.
선픽에서는 누구나 한번쯤 스피드를 멈추고 슬로프 아래에 펼쳐진 광경에 매료된다. 발밑에는 동화 같은 설경이 펼쳐지고 슬로프 끝 전나무숲 너머로는 세모지붕의 집들이 설산에 안긴 듯 둥지를 틀고 있다. 푹신한 눈에 엉덩이를 댄 채 주변을 넋 놓고 바라봐도 탄성과 웃음만 난다.

선픽은 세 개의 봉우리가 둘러싸고 있다. 토드 마운틴(2,080m),선덴스(1,730m),모리세이 (1,675m) 등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슬로프들은 다양한 개성을 지녔다. 토드 마운틴이 자연의 거친 슬로프를 간직하고 있다면 선덴스는 슬로프가 잘 다듬어져 초ㆍ중급자가 즐기기에 좋다. 모리세이에서는 초보자들도 트리런을 즐길 수 있다. 나무사이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스키를 타다 보면 진정한 스키타기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특히 모리세이 봉우리는 선픽의 멋진 정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감상 포인트가 많아 좋다.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졌을 뿐, 선픽 리조트의 슬로프수는 100여개에 달한다. 그중 20%가 초보, 60%가 중급자, 20%가 상급자용으로 가족들이 즐기기에도 좋다. 표고차는 881m, 가장 긴 슬로프는 8㎞로 롱런이 가능하다. 봉우리 정상에서도 초급자 코스가 마련돼 있으니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겨울마다 펼쳐지는 와인페스티벌

선픽은 스키마을로는 안성맞춤인 조건을 지녔다. 같은 BC주의 휘슬러가 겨울에 비도 뿌리고 하루에도 날씨가 변화무쌍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눈은 아주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파우더 스노. 1년에 5∼6m의 눈이 내리며 4월까지 스키를 탈 수 있다. 슬로프는 한개면을 전세내 질주와 휴식을 겸해도 좋을 만큼 여유롭다. 한국의 ‘콩나물 슬로프’에 시달린 경험자들은 개인 전용 슬로프에서 대통령 스키를 체험할수 있다. 숙소와 스키장이 붙어 있어 스키-인 스키-아웃이 가능하다.

선픽 전나무숲.
선픽은 캐나다인들에게는 상징적인 곳이기도 하다. 올림픽 스키 메달리스트(68년)이자 캐나다의 국민 영웅인 낸시 그린이 이곳에 터를 잡고 지내기도 했다. 낸시 그린은 일반인들과 함께 스키를 타며 포인트를 직접 알려줘 선픽을 알리는데도 일조했다.

이곳 젊은이들은 낮에는 스키를 타고 밤에는 바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저녁 때 바에서 만난 친절한 청춘을 슬로프에서 다시 조우해 멋진 인연을 쌓을 수도 있다. 휘슬러처럼 휘황찬란하지는 않지만 바에서, 또 자쿠지에서 오붓한 애프터 스키를 즐길 수도 있다. 선픽에는 튜브파크 등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도 마련돼 가족 스키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선픽의 동화 속 정경은 와인 페스티벌이 어우러지며 더욱 분위기를 낸다. 일조량이 많은 인근 오카나간은 아이스 와인으로도 유명한 곳으로 매년 겨울이면 와인페스티벌이 이 일대에서 열린다. 와인축제도 즐기고 스키도 탈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은 일찌감치 동이 난다. 페스티벌이 아니더라도 고요한 마을에서의 ‘그들만의 눈잔치’는 겨우 내내 따사롭게 진행된다.

여행메모

▲ 가는길=선픽과 인근 도시 캠룹은 밴쿠버와 자스퍼, 밴프를 잇는 중간지점에 위치했다. 한국에서는 항공편으로 밴쿠버를 경유해 캠룹까지 이동이 가능하다. 밴쿠버에서 선픽까지는 5번 도로를 이용해 승용차로 4시간30분, 캠룹에서 선픽까지는 45분 소요된다. 캠룹∼선픽간에는 셔틀버스가 운행되며 휘슬러∼선픽간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선픽 슬로프에서 나홀로 질주.
▲ 숙소=델타 선픽 리조트는 220개의 룸을 갖추고 있으며 슬로프사이드에 인접해 스키-인, 스키-아웃이 가능하고 자쿠지 시설도 갖추고 있다. 1박 30달러 안팎의 값싼 호스텔도 마련돼 있다. 선픽 홈페이지(www.sunpeaksresort.com)와 캐나다관광청(www.canada.travel)을 통해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기타정보=리프트는 오후 4시까지 가동하며 야간스키는 없다. 숙박과 리프트를 묶은 다양한 가족 패키지 프로그램이 있으며 와인페스티벌 기간에는 리프트와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패키지를 이용할수도 있다. 전압은 110V만 이용돼 별도의 충전용 멀티탭이 필요하다.


선픽의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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