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다무락마을
봄의 시작을 알린다는 매화만 해도 그렇다. 유명한 광양 섬진강 매화꽃밭은 말할 나위도 없고, 해남 예정리의 보해매원과 양산 원동면의 순매원에 이르기까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인산인해를 이루어 심각한 인파와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있다. 호젓하게 매화의 향연을 즐길 곳은 정녕 없는 것일까?
햐얀 눈 흩뿌린 듯한 수줍은 매화꽃
그 해답을 전라남도 구례군 구례읍 계산리의 다무락마을이 제시한다. 필자가 지난해 3월이 끝나갈 무렵 이곳을 찾았을 때 외지인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아무리 평일이라고 해도 관광객이 달랑 나 홀로라니. 어느 정도로 한적한 곳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매화의 아름다움이 유명지에 비해 뒤지지도 않는다. 하얀 눈을 흩뿌린 듯한 매화꽃밭은 참으로 인상적일 뿐만 아니라, 그 아래로는 야생화들이 수줍게 피어 있다. 거기에다 샛노란 산수유꽃과 초록빛 대나무 숲까지 어우러져 환상적인 정경을 연출한다.
섬진강 굽이마다 산수유 향기 물씬
다무락마을은 북쪽으로 지리산 줄기인 천왕봉(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과는 다른 봉우리), 동쪽으로 갈미봉, 서쪽으로 국사봉이 솟은 가운데 그 품속에 아늑하게 안긴 마을로, 남쪽으로는 섬진강이 굽이쳐 흐른다. 다무락이라는 마을 이름은 예로부터 논과 밭 사이의 경계에 담장을 둘렀다고 해서 붙은 것이다. 다무락은 담장의 이 지방 사투리다.
구례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다무락마을의 어귀인 계산리 정류장에서 내린다. 섬진강을 끼고 늘어선 산수유와 매화가 봄의 정취를 물씬 풍기며 길손을 맞는다. 강변에 앉아 잠시 쉬며 섬진강에 그림자를 드리운 봄꽃의 향기에 젖어들다가 300여 주민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다무락마을로 접어든다.
유곡마을이라고도 불리는 다무락마을은 상유, 중유, 하유마을로 다시 나뉘는데 이 세 마을은 각기 개성이 다르다. 북으로부터 남으로, 상유는 산간오지의 전형을 보여주고, 중유는 넓은 과수원을 품고 있으며, 하유는 섬진강을 안마당처럼 삼고 살아간다.
감·배·밤… 온 마을이 '과수밭 천국'
하유를 지나 중유마을로 올라서니 주변이 온통 과수밭이다.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이곳은 과일나무의 천국이 된 것일까?
낮이면 섬진강에서 불어온 강바람이 산으로 올라가고, 밤이면 지리산의 차가운 산바람이 골짜기를 타고 아래로 내려온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일교차가 커지고 이는 농사를 짓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가파른 산비탈에 돌담을 쌓고 흙을 메워 층층대식의 다랑논을 켜켜이 쌓았다. 그러나 이 다랑논은 물이 지나치게 잘 빠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따라서 용수공급의 어려움 탓에 다랑논은 천수답이 되었고 주민들은 시름에 빠졌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어 우리 국민들의 소득이 높아지고 식생활이 개선되면서 과일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발맞추어 다무락 사람들은 1995년부터 과수 재배로 눈길을 돌렸다. 생산성이 낮은 다랑논은 감나무, 배나무, 매화 등을 심은 과수원으로 탈바꿈했고 산자락에는 밤나무가 대량으로 재배되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전국에서 단위면적당 과실 수확량이 으뜸으로 꼽힐 정도가 되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파란 하늘 아래 산자락을 타고 좁다란 길이 굽이굽이 돌아간다. 누룩실재를 넘어 구례 사동으로 가는 길이다. 저 옛날 다무락 사람들은 저 고개를 넘어 구례장으로 오갔다. 이제는 추억에 묻힌 그 길을 더듬어보고 싶다.
여행 메모 # 찾아가는 길=순천완주(27번)고속도로-황전 나들목-구례구역(선변삼거리)-구례교-섬진강로를 거친다. 대중교통은 구례 터미널에서 다무락 입구인 계산리로 가는 군내버스 하루 약 10회 운행. # 맛있는 집=섬진강 일원에는 예로부터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민물참게를 이용한 참게탕을 내는 맛집이 즐비한데, 그 가운데 구례구역 인근의 고향산천(061-782-8410)이 유명하다. 시래기를 비롯한 채소들과 큼직한 참게를 넣고 재래식 비법으로 끓인 참게탕이 얼큰하고 시원하니 입맛을 돋운다. 쏘가리탕과 메기탕, 잡어탕 등도 인기 있으며 탕이 나오기 전에 서비스로 주는 튀김(맛살, 고구마, 가지, 은어 등) 맛도 일품이다. |
신성순 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