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국 후아한

승마를 즐기는 후아힌 해변.
태국 중부 여행은 왕의 흔적이 서린 곳일수록 그 의미가 더욱 도드라진다. 세계 유산인 아유타야가 33명의 왕이 머문 고도로 품격을 더한다면, 후아힌은 왕실의 여름 궁전이 있었던 해변 휴양지로 명함을 내민다. 후아힌은 푸켓, 파타야처럼 번잡하지 않은 단아한 모양새를 지니고 있다.

방콕 남서쪽으로 210km 떨어져 있는 후아힌은 태생 자체가 왕실의 피서지였다. 1920년 라마 7세가 ‘끌라이 깡원’이라는 여름 궁전을 지은 뒤 휴양지로 개발됐고 지금도 여름 별궁은 왕족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왕실의 휴양지답게 후아힌에서는 요란한 해양 스포츠보다 한가로운 풍경이 어울린다. 파타야가 1960년대 베트남전 이후 대중적인 리조트들이 생겨나며 화려한 붐이 일었다면 후아힌은 번잡함과는 먼 격조 높은 휴양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후아힌에 휴양의 바람이 깃든 것은 20세기 초, 방콕에서 철도가 개통되면서부터다. 고풍스러운 후아힌 역 주변으로 별궁이 지어지고 잇따라 귀족들의 별장도 들어섰다. 후아힌에 태국 최초의 골프코스가 만들어졌던 것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와이너리도 들어서 도시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

승마와 와인을 즐기는 고요한 휴식처

이방인들이 엿보는 후아힌의 골목은 두 가지 모습을 지녔다. 타끼엡 언덕에서 북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활처럼 휘어진 후아힌 비치에는 최고급 리조트와 레스토랑들이 들어서 있다. 상류층 사람들이 그윽한 식사를 즐기고, 왕실의 휴식처답게 말을 타고 해변을 오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후아힌 기차역조차 라마 왕조때 지어진 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으로 화려한 전통양식이 돋보인다.

후아힌 골프코스.
시내 면면에 녹아 있는 모습은 후아힌의 변해가는 현주소를 보여준다. 다운타운 초입에는 스타벅스 등 외국계 체인점이 들어섰지만 거리 안쪽으로 접어들면 야시장과 노천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풍경이다. 푸켓이나 파타야처럼 현란하지는 않지만 노천식당을 채운 손님들은 조용한 휴식을 즐기려는 유럽인들이 대부분이다. 사탕가게, 이발소 등 태국의 60~70년대 풍경을 재현한 ‘플런완’이나 남쪽 카오 ? 러이 욧 국립공원 등은 현지인들도 휴식을 위해 즐겨찾는 단골 장소다.

내륙으로 1시간 가량 접어들어 ‘후아힌 힐’ 지역으로 향하면 열대지방인데도 와이너리가 들어서 있다. ‘’라는 열대 와인을 현지에서 테이스팅하기 위해 사람들은 구불구불한 비포장 길도 주저하지 않는다. 와이너리에서는 코끼리를 타고 포도밭을 구경하는 이색투어도 마련하고 있다. 열대 태국의 와이너리는 다소 생경스러운 장면이다.

역동적인 삶이 뒤엉킨 데찬누칫 거리

가장 무더운 태국의 4월이면 이곳에서는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될 때다. 태국 고유의 여름 명절인 쏭크란 축제 시즌이 되면 후아힌의 거리 역시 진풍경을 연출한다. 웃옷을 벗어젖히고 속살이 내비치도록 물을 뿌리는 역동적인 거리로 변신한다. 태국 달력으로 4월은 새해가 시작되는 시기로 더위가 치솟는 날이면 해변과 리조트에서 벗어나 골목으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차를 타고 달리며 물총을 쏘고, 차창에 물을 끼얹는 북새통에 뙤약볕의 데찬누칫 거리는 흥건한 물바다로 변신한다.

야시장이 들어서는 데찬누칫 거리나 페차카셈 거리 뒷골목에는 뚜껑 없는 ‘썽테우’(트럭형 합승차)나 ‘툭툭’(삼륜 택시)이 물동이를 싣고 거리를 누빈다. 물세례의 대상에는 국경이 따로 없다. 현지인과 이방인들이 합세해 물 호스를 움켜 잡고, 차량에 탑승한 채 드럼통에서 물을 끼얹기도 한다. 관광객들은 수영팬티 하나 달랑 걸치고 물싸움에 직접 동참한다.

몬순 밸리 와이너리
쏭크란이 어우러진 후아힌의 거리는 모처럼 얌전한 분위기를 걷어낸 활기찬 모습이다. 고향을 방문한 주민, 왕실의 휴양지를 찾은 이방인들까지 어우러져 음주가무를 즐기기도 한다.

4월의 후아인에서 좀 더 호젓한 공간을 탐하려면 차암으로 향한다. 후아힌 북쪽의 차암은 열차역과 시장을 중심으로 소박한 해변이 어우러진 곳이다. 후아힌 해변과는 달리 태국 주민들이 물놀이를 즐기는 서민적인 풍경을 엿볼 수 있다. 후아힌에서 차암으로 향하는 길목의 해변만 거닐어도 가슴은 푸르게 차오른다.

여행메모

▲ 가는길=인천에서 방콕을 경유하는게 일반적이다. 후아힌까지는 방콕남부터미널에서 버스로 3시간 정도 소요된다. 열차로 이동도 가능하다. 후아힌 시내는 도보로도 둘러볼 수 있는 규모다. 근거리는 삼륜 택시인 툭툭을 이용해도 된다.

▲ 기타정보=후아힌과 차암 일대에 숙소가 밀집돼 있다. 하얏트, 힐튼 등 특급 리조트부터 배낭족을 위한 숙소까지 다양하다. 중급 숙소는 차암 일대에 많다. 쏭크란 축제는 매년 4월 중순 태국의 새해를 기념해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데 축제 내용과 기간은 조금씩 다르다.

쏭크란 축제 때의 데찬누칫 거리.


글ㆍ사진=서영진(여행칼럼니스트) aular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