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원 봉화산

봉화산 매봉 아래로 철쭉 꽃밭이 펼쳐진다.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강촌유원지 인근의 봉화산은 유명한 구곡폭포를 품고 있어 수도권 일원의 관광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남원 봉화산이라면 상당히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실제로는 춘천 봉화산(487미터)보다 훨씬 높고(920미터) 덩치도 큰 준봉인데도 말이다.

전북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고, 경남 함양군 백전면과도 이웃해 있는 봉화산은 백두대간을 이루는 중요한 봉우리다. 덕유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 남부 구간의 중간 지점에 당당히 솟은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인근에 장안산, 백운산, 사두봉, 팔공산(대구 팔공산과는 다름) 등의 고봉이 즐비해서인지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했다. 그러다가 근래 들어 부쩍 관심이 높아졌다. 오랜 침묵을 깨고 떠오르는 샛별로 등극한 것이다.

그 까닭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흥부전의 무대인 흥부마을 성리를 산기슭에 거느렸기 때문이다. 놀부에게 쫓겨난 흥부가 박 씨를 심어 부자가 된 마을, 즉 발복지(發福地)가 바로 남원시 아영면의 성리라는 것인데, 주민들은 흥부가 실존 인물이며 이름은 박춘보로 그의 묘소가 마을 근처에 남아 있다고 말한다. 다른 하나는 지리산 바래봉에 못지않은 철쭉 명산으로 뜨기 시작한 덕분이다. 흥부골 뒷산의 철쭉 꽃밭이라니……. 말만 들어도 괜스레 가슴이 설레는 듯하고, 고향도 아니건만 고향처럼 따스한 기운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사람 키보다 높은 철쭉들이 군락 이루고

봉화산 철쭉은 정상에서 남쪽으로 약 2㎞ 지점인 꼬부랑재 남면으로부터 치재와 매봉에 이르는 1㎞ 남짓한 능선 주변에 대단위 군락을 이루고 있다. 10헥타르가 넘는 면적에 철쭉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 있고, 선홍빛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황홀경을 연출한다. 또한 키가 2미터 가까이나 되는 까닭에 철쭉꽃밭으로 들어서면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고 좁은 터널을 이루고 있다.

치재 아래에 세워진 봉화산 철쭉제단.
봉화산 철쭉꽃의 만개 시기는 해마다 그리고 해발고도에 따라 다르다. 평균시기는 해발 400~600미터쯤의 하단부와 중간부가 4월말부터 5월초 사이, 해발 700~900미터쯤의 정상부는 5월 중순 무렵이다. 그러나 하단부와 중간부에는 철쭉꽃이 듬성듬성 피어나기 때문에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철쭉이 가장 넓고 빽빽하게 몰려 있는 치재와 매봉 일원의 철쭉꽃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보통 5월 중순을 전후하여 찾는 것이 무난하지만, 올해는 봄철의 기온이 높은 편이어서 그보다 일찍 활짝 필 것으로 보인다.

봉화산 철쭉 산행 코스는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를 이루는 복성이재에서 백두대간을 타는 길,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 신기마을에서 오르는 길 등을 비롯하여 다양하게 뻗어 있지만, 가장 편안하게 오르려면 성리 짓재마을에서 임도를 따라간다. 주차장 옆의 안내도와 철쭉식당슈퍼민박 사이로 드리운 임도가 치재와 매봉으로 오르는 지름길이다.

철쭉꽃의 바다가 선사하는 황홀한 장관

임도 초입에서 매봉 쪽을 바라보면 철쭉은 보이지 않지만 연둣빛으로 물든 신록이 봄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임도를 따라 불과 15분 남짓 오르면 흥부골봉화산 철쭉제단이 마련되어 있는 곳부터 철쭉 꽃밭이 펼쳐진다. 철쭉제단 아래에는 목을 축이고 요기를 할 수 있는 임시포장마차와 작은 주차장이 있는데, 한가한 평일에는 이곳까지 승용차를 몰고 오를 수도 있지만 길이 좁아 마주치는 차량에 주의해야 한다.

나무 데크로 이루어진 층계를 잠시 오르면 조망이 트이면서 드넓은 철쭉 꽃밭이 한눈에 들어오고, 전망대인 정자가 세워져 있어 편히 쉬면서 천상화원을 감상하기에도 그만이다. 한마디로 철쭉꽃의 바다라고 할 만하다. 별다른 수고도 하지 않았는데 넋을 잃을 만큼 황홀한 장관을 만끽할 수 있다니, 그저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고개를 들어 올리면 통신시설과 전망대가 세워진 매봉(해발 712.2미터)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온다. 꽃밭 속으로 드리운 길로 몸을 숨기면 어느새 매봉이 반기고, 사방으로 탁 트인 주변 경관에 다시금 감탄사를 내뱉게 된다.

치재와 매봉 능선 자락에 군락을 이룬 철쭉 꽃밭.
뭔가 아쉽다면, 그리고 체력과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백두대간 능선을 1시간 20분쯤 더듬어 봉화산 정상으로 오른다. 꼬부랑재를 지나면 철쭉이 드문드문 피어 있고, 다리재 일대는 산불로 인해 초원지대로 바뀌면서 야생화들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다. 정상 일원은 넓은 억새밭 사이로 키 작은 철쭉들이 자라고 있어 10여 년 뒤에는 이곳도 화려한 철쭉 꽃밭으로 변신할 것으로 보인다. 봉화산 정상에 오르면 장쾌한 조망이 펼쳐져 산행의 수고를 달래준다. 북으로는 장안산, 남덕유산, 기백산 등이 이어지고 남으로는 웅장한 지리산 연봉이 손에 잡힐 듯하다.

▲ 찾아가는 길

지리산 나들목에서 88올림픽(12번)고속도로를 벗어난 뒤에 아영면-성리를 거친다. 대중교통은 남원에서 인월을 거쳐 성리로 가는 시내버스 이용.

▲ 맛있는 집

인월시장 안에 있는 시장식당(063-636-2353)은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순대국밥 전문점이다. 돼지 사골을 푹 곤 국물에 선지로 만든 피순대와 내장을 듬뿍 넣고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를 풀어 넣은 맛이 깔끔하면서 구수하다. 식성에 따라 부추와 새우젓, 다진 고추, 띄운 비지 등을 넣어 먹는다. 흑돼지국밥도 인기 있는데, 다소 매울 것이라는 주인장의 경고(?)와 뻘건 국물과는 달리, 그다지 맵지는 않고 담백하고 시원하며, 털이 숭숭 달린 살코기는 잡냄새 없이 부드럽다.



글ㆍ사진=신성순 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