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원 봉화산
전북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고, 경남 함양군 백전면과도 이웃해 있는 봉화산은 백두대간을 이루는 중요한 봉우리다. 덕유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 남부 구간의 중간 지점에 당당히 솟은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인근에 장안산, 백운산, 사두봉, 팔공산(대구 팔공산과는 다름) 등의 고봉이 즐비해서인지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했다. 그러다가 근래 들어 부쩍 관심이 높아졌다. 오랜 침묵을 깨고 떠오르는 샛별로 등극한 것이다.
그 까닭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흥부전의 무대인 흥부마을 성리를 산기슭에 거느렸기 때문이다. 놀부에게 쫓겨난 흥부가 박 씨를 심어 부자가 된 마을, 즉 발복지(發福地)가 바로 남원시 아영면의 성리라는 것인데, 주민들은 흥부가 실존 인물이며 이름은 박춘보로 그의 묘소가 마을 근처에 남아 있다고 말한다. 다른 하나는 지리산 바래봉에 못지않은 철쭉 명산으로 뜨기 시작한 덕분이다. 흥부골 뒷산의 철쭉 꽃밭이라니……. 말만 들어도 괜스레 가슴이 설레는 듯하고, 고향도 아니건만 고향처럼 따스한 기운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사람 키보다 높은 철쭉들이 군락 이루고
봉화산 철쭉은 정상에서 남쪽으로 약 2㎞ 지점인 꼬부랑재 남면으로부터 치재와 매봉에 이르는 1㎞ 남짓한 능선 주변에 대단위 군락을 이루고 있다. 10헥타르가 넘는 면적에 철쭉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 있고, 선홍빛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황홀경을 연출한다. 또한 키가 2미터 가까이나 되는 까닭에 철쭉꽃밭으로 들어서면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고 좁은 터널을 이루고 있다.
봉화산 철쭉 산행 코스는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를 이루는 복성이재에서 백두대간을 타는 길,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 신기마을에서 오르는 길 등을 비롯하여 다양하게 뻗어 있지만, 가장 편안하게 오르려면 성리 짓재마을에서 임도를 따라간다. 주차장 옆의 안내도와 철쭉식당슈퍼민박 사이로 드리운 임도가 치재와 매봉으로 오르는 지름길이다.
철쭉꽃의 바다가 선사하는 황홀한 장관
임도 초입에서 매봉 쪽을 바라보면 철쭉은 보이지 않지만 연둣빛으로 물든 신록이 봄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임도를 따라 불과 15분 남짓 오르면 흥부골봉화산 철쭉제단이 마련되어 있는 곳부터 철쭉 꽃밭이 펼쳐진다. 철쭉제단 아래에는 목을 축이고 요기를 할 수 있는 임시포장마차와 작은 주차장이 있는데, 한가한 평일에는 이곳까지 승용차를 몰고 오를 수도 있지만 길이 좁아 마주치는 차량에 주의해야 한다.
나무 데크로 이루어진 층계를 잠시 오르면 조망이 트이면서 드넓은 철쭉 꽃밭이 한눈에 들어오고, 전망대인 정자가 세워져 있어 편히 쉬면서 천상화원을 감상하기에도 그만이다. 한마디로 철쭉꽃의 바다라고 할 만하다. 별다른 수고도 하지 않았는데 넋을 잃을 만큼 황홀한 장관을 만끽할 수 있다니, 그저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고개를 들어 올리면 통신시설과 전망대가 세워진 매봉(해발 712.2미터)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온다. 꽃밭 속으로 드리운 길로 몸을 숨기면 어느새 매봉이 반기고, 사방으로 탁 트인 주변 경관에 다시금 감탄사를 내뱉게 된다.
▲ 찾아가는 길
지리산 나들목에서 88올림픽(12번)고속도로를 벗어난 뒤에 아영면-성리를 거친다. 대중교통은 남원에서 인월을 거쳐 성리로 가는 시내버스 이용.
▲ 맛있는 집
인월시장 안에 있는 시장식당(063-636-2353)은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순대국밥 전문점이다. 돼지 사골을 푹 곤 국물에 선지로 만든 피순대와 내장을 듬뿍 넣고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를 풀어 넣은 맛이 깔끔하면서 구수하다. 식성에 따라 부추와 새우젓, 다진 고추, 띄운 비지 등을 넣어 먹는다. 흑돼지국밥도 인기 있는데, 다소 매울 것이라는 주인장의 경고(?)와 뻘건 국물과는 달리, 그다지 맵지는 않고 담백하고 시원하며, 털이 숭숭 달린 살코기는 잡냄새 없이 부드럽다.
글ㆍ사진=신성순 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