탓 루앙의 와불.
라오스는 '느림의 미학'이 깃든 땅이다. 사람도, 탈 것들도 더딘 템포로 오간다. '욕망이 멈춘 땅', '힐링의 나라'....다양한 수식어만큼이나 외지인들에게 라오스는 여유롭고 단아한 이미지로 다가선다.

느림의 미학이 깃든 접경의 도시

라오스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유일한 내륙 국가다. 중국,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에 둘러싸여 있으며 산악지형의 특성까지 가미돼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현 수도인 비엔티안(Vientiane)에는 라오스의 변화상들이 오롯하게 담겨 있다.

수도인 비엔티안은 라오스의 관문이자 세상과의 완충지대의 성격이 짙다. 동남아시아 유일한 내륙국가의 수도는 식민과 전쟁, 이념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왔다. 비엔티안은 '위앙짠'의 프랑스풍 이름으로 현지 주민들이 부르는 위앙짠에는 '달의 도시'라는 로맨틱한 의미가 담겨 있다.

옛 수도인 루앙프라방의 탁발공양과 방비엥의 카약킹을 담아냈던 메콩강 줄기는 이곳에서는 경계가 된다. 강 너머는 태국의 농카이 지역이다. 라오스의 부호들은 건너편 태국 땅에 별장을 짓고, 쇼핑을 즐기기 위해 강을 빈번하게 넘나든다.

왓 씨앙쿠앙의 불상.
이른 아침의 메콩강변은 새벽부터 산책하고 뛰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이 일대는 해질 무렵이면 데이트를 즐기는 청춘남녀들과 야시장, 레스토랑이 들어선 번화가로 변신한다. 옛 수도 루앙프라방의 탁발 행렬과는 완연하게 다른 풍경들이다.

도심에 깃든 불교의 흔적

라오스는 불교의 나라다. 변해가는 수도인 비엔티안에서도 불교의 흔적들은 오롯이 남아 있다. 부처의 가슴뼈가 안장된 탓루왕 사원, 수천 개의 부처상이 들어선 시사켓 사원 등은 번잡한 도시의 한 가운데 들어서 있다. 탓 루왕 사원에는 '왕국의 성스러운 탑'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외관은 단순하지만 높이 45m의 거대한 규모와 강렬한 색이 인상적이다. 시사캣 사원은 비엔티안에 남아 있는 사원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데 사원 담벼락에는 왕국의 전설을 기리는 사연들이 그려져 있다.

도시 외곽 왓 씨앙쿠앙에서는 불교와 힌두교가 접맥된 다양한 불상들을 알현할 수 있다, 비엔티안의 도심을 한눈에 내려다 보려면 빠뚜사이 정상에 오르면 된다. 빠뚜사이는 1958년 프랑스로부터 라오스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건축물인데 아이러니컬하게도 파리의 개선문을 본따 만들었다. 빠뚜사이가 이방인들에게는 비엔티안의 상징물처럼 여겨지는 것도 이채롭다.

느림의 풍경은 도심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시속 60km 이상 질주하는 차량을 보기 어려울 겁니다." 라오스 현지인의 설명은 도로 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비엔티안이나 외곽 도로에서 차량들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않는다. 육로로 이어지는 길들은 멀고 지루해도 버스들은 이곳 주민의 일상만큼이나 천천히 달린다. 한국에서 퇴물이 된 중고버스들은 비엔티안 시내를 버젓하게 오간다. 일부 버스들은 화려한 외관을 갖추고 치장했지만 곳곳에 한글이 새겨져 있어 친근감을 더한다. 비엔티안의 국내선 공항에 들어서면 웃음과 함께 정감이 간다. 라운지에는 긴 간이의자가 있고, 작은 매점에서 직접 만든 쌀국수를 파는 정겨운 풍경들이다.

개선문을 본 뜬 비엔티안의 상징인 빠뚜사이.
옛 것과 새 것이 혼존하는 땅

비엔티안은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시장 옆으로는 백화점이 들어서고 도심에는 개발 붐이 일었다. 거리에서는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청춘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달러나 유로를 환전하려는 환전소는 번화가 곳곳에서 목격되고, 국적기인 라오스항공 등은 한국까지 직항편이 직접 연결되고 있다. 빗장이 풀리고 외부자본이 밀려드는 이곳 수도에서는 아셈 정상회의가 열려 라오스의 변화상을 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번잡한 비엔티안의 단상들은 시리게 다가섰던 라오스인들의 결핍과는 조금은 거리가 멀다. '노는게 좋다'는 라오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가난보다는 느긋함으로 치장되기를 바란다. 한달 평균 임금 수준이 10~20만원 정도. 삶에 대한 만족도는 오히려 이곳을 찾는 이방인들의 나라보다 높다고 하니 우리네 셈법은 큰 의미가 없다.

여행메모

▲ 가는길=인천에서 비엔티안까지는 라오스항공 직항편이 오간다. 루앙프라방까지 항공편이 연결되며 태국이나 베트남을 경유해 도착할 수도 있다. 라오스는 체류기간 15일까지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 비엔티안~루앙프라방은 육로로는 10시간 가량 소요된다.

순진한 표정의 동자승들.
▲ 숙소=비엔티안의 돈찬 팰리스 호텔(www.donchanpalacelaopdr.com)은 비엔티안의 유일한 5성급 호텔로 메콩강변에 들어서 있다. 시내 최고층 호텔로 강건너 태국과 베엔티안 도심을 조망할 수 있다. 외지인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들도 다수 갖춰져 있다.



글 사진 서영진(여행칼럼니스트) aular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