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군위군 산성면 화본역

어린이들이 화본역에서 열차에 오르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

간이역이란 단어를 되뇌노라면 왠지 모르게 애잔한 느낌이 밀려든다. 불현듯 잃어버린 고향이 떠오르듯이 아련한 향수에 젖어들기도 한다. 아마도 사라져가는 옛것에 대한 그리움과 애착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에는 800여 곳의 간이역이 있다고 한다. 그 가운데 역무원이 근무하고 있는 배치간이역은 48곳, 역무원 없이 운영되는 무배치간이역은 188곳이며, 나머지 간이역은 여객열차가 서지 않거나 아예 폐역이 된 곳들이다.

열차 여행을 즐기는 네티즌들이 꼽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인 중앙선 화본역으로 감성여행을 떠나보자. 경북 군위군 산성면의 화본역은 1938년 2월 1일부터 영업을 개시했으며 한동안 호황을 누렸다. 매 2일과 7일, 영천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기차 안이 와글와글했을 정도로 이용객이 많았다. 지금은 청량리-부전, 동대구-영주, 동대구-강릉을 오가는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 왕복 3회, 모두 6차례 정차할 뿐이지만 그래도 간이역치고는 혜택 받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청량리역에서 오전 8시 25분발 열차를 타고 4시간 15분만인 12시 40분경 화본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니 선로 좌우로 레일카페와 급수탑이 눈에 들어오고 남쪽 저 멀리로는 팔공산 능선이 힘차게 뻗어 위용을 뽐낸다.

1938년 세워진 화본역 역사.
담쟁이덩굴이 감싸 안고 있는 급수탑

역사건물 반대편에 우뚝 서있는 급수탑부터 돌아본다. 1899년부터 1967년까지 철로를 달리던 증기기관차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1930년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화본역 급수탑은 아직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아 내부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높이 25미터 남짓한 급수탑의 외부는 담쟁이덩굴이 감싸 안고 있어 흡사 동화 속 그림 같은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급수탑 내부에는 물탱크로부터 물을 공급하고 가열된 물을 끌어올리는 두 종류의 파이프 관과 환기구가 그대로 남아 있고, 벽면에는 '석탄정돈, 석탄절약'이라는 옛 시절의 문구와 아이들의 낙서가 어지럽게 쓰여 있다. 급수탑 아래의 급수정 안에는 증기기관차의 작동 원리가 알기 쉽게 그려져 있다.

역사건물을 나와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화본역 시비'와 만난다. 박해수 시인과 대구MBC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간이역 시비 세우기' 사업의 일환으로 2006년 12월 28일 세워졌다. 새마을호 객차를 활용한 레일카페로 발길을 옮겼으나 문이 닫혀 있다. 주말과 공휴일, 그리고 방학기간에는 문을 열지만 평상시 주중에는 찾는 이가 드물어 쉰다고 역무원이 귀띔한다.

그 대신 역사건물과 레일카페 사이에 마련된 휴게공간에서 쉰다. 능수버들을 비롯해 나무들이 제법 울창하게 우거지고 숲 그늘 아래 여기저기 야외탁자가 놓여 소공원 같은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화본역과 레일카페 사이의 휴게공간.
1960~7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박물관

역사건물 앞으로 나오면 50년 역사의 역전상회가 보이고 길 좌우로는 벽화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일연 스님은 군위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집필했다. 그래서 군위군을 '삼국유사의 고장'이라고 일컬으며, 화본마을 벽화들 역시 삼국유사와 관련된 그림들이다.

역전상회 앞에서 벽화들을 감상하며 왼쪽 길로 잠시 가면 오른쪽 언덕 위에서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라는 근현대사 박물관이 반긴다. 1954년 4월 20일 개교하여 2009년 3월 1일 폐교된 산성중학교 건물을 활용하여 2011년 4월에 문을 연 곳으로, 어른들은 옛 추억을 떠올리고 자녀들은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을 체험해볼 수 있다.

낡은 책상과 의자, 난로 위의 양은 도시락, 추억의 책가방과 신발주머니, 왕자표 크레파스, 재래식 변소 등이 옛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칠판 옆에 '옆반 정복'이라고 쓰인 급훈을 보노라면 절로 웃음보가 터진다. 장구, 피리, 멜로디언 등 손때 가득 묻은 악기들도 정겹게 다가온다.

학교와 관련된 소품들만 전시된 곳이 아니다. 연탄가게, 구멍가게, 문구점, 극장, 전파상, 이발소, 만화방, 뮤직박스와 디스크자키가 있던 옛날 다방, 못난이 인형, 말 타는 놀이기구, 포니2 픽업 자동차 등 다채로운 볼거리가 풍성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1960~70년대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는 추억의 박물관이다.

이밖에도 화본마을에는 구경거리가 다양하다.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3기, 수백 년 수령의 회나무와 정자, 일제 때의 목조가옥인 철도관사, 정미소, 1962년 개업한 성희다방, 일제 때 만든 저수지인 화본지, 충의공 엄흥도 묘소 등이 그것이다.

# 찾아가는 길

군위 나들목에서 중앙(55번)고속도로를 벗어난 뒤에 경북대로-간동3거리-효우로-백양3거리-동부로-산성가음로를 거친다.

열차를 이용한 교통편은 다음과 같다.

청량리역발 8시 25분 열차는 원주-제천-영주-안동을 거쳐 12시 40분경 화본역 도착. 부산 부전역발 7시 20분 열차는 경주-영천을 거쳐 10시 23분경 화본역 도착. 동대구역발 15시 03분 열차는 16시 07분경 화본역 도착. 동대구역발 16시 30분 열차는 17시 30분경 화본역 도착. 강릉발 6시 15분 열차는 영주-안동을 거쳐 11시 21분경 화본역 도착. 영주발 12시 02분 열차는 13시 25분경 화본역 도착.

# 맛있는 집

화본역 앞의 나리식당(054-382-3070)은 '밥 잘하는 집'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소박한 상차림이지만 엄마가 차려준 밥상이나 고향집 할머니의 손맛을 떠올리게 하는 토속적인 맛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직접 담근 토종 된장으로 끓인 구수한 된장찌개를 비롯하여 김치찌개, 정식(백반), 산채비빔밥, 소피국, 버섯전골, 두부전골, 오리주물럭, 돼지불고기와 주물럭 등이 입맛을 돋운다.


화본마을에는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1930년대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화본역 급수탑.

글ㆍ사진=신성순 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