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팅마켓의 제대로 된 대중 음식들

‘공수간’ 떡볶이ㆍ튀김 깔끔

‘논현곱창’본연의 맛에 충실

‘반찬투쟁’당일 장 본 식단

‘가빈의 맛 있는 밥상’내공 상당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영동시장 언저리는 묘한 곳이다. 강남에 이 정도 규모의 재래시장이 있는 곳은 드물다. 지역 이름부터 영동시장이다. 행정구역으로는 강남구 논현동이고 인근에 논현역을 비롯하여 학동역 등 지하철 역도 몇 개 있다. 그래도 여전히 ‘영동시장’이라고 부른다. 영동시장은 “서울 그것도 강남에 이런 곳이 있어?”라는 생각이 드는 전통 재래시장이다. 영동시장은 제법 오래된 시장이고 아직도 펄펄 살아 있는 재래시장이다. 가수 싸이는 ‘강남스타일’을 불렀다. 노래가 널리 알려지면서 ‘강남역’ 일대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 강남역이 불과 한 블록 건너다. 영동시장이 묘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지리적으로는 강남의 핵심지역에 있으면서 재래시장의 모습과 기능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재래시장은 모든 물가가 비교적 싸다는 느낌을 준다. 영동시장 언저리의 음식점들도 비교적 착한 가격을 내세운다. 허름한 분위기의 식당들도 많고, 목로주점 같은 분위기의 술집들도 많다. 여름이면 길거리에 식탁과 의자를 내놓고 늦은 밤까지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도 많다.

영동시장은 ‘테스팅 마켓 testing market’이다. 새로운 음식, 음식점들이 줄을 잇는다. 소비자들은 즐겁다. 새로운 음식이 늘 나타나는 곳이다. 가격도 강남임을 감안하면 그리 비싸지 않다.

애당초 영동시장의 먹자골목을 만든 것은 ‘한신포차’다. ‘실내에 있는 포장마차’라는 묘한 조합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이미 20년을 넘긴 업력이다. 유명한 프랜차이즈 본점이 여기서 시작되었다.

‘공수간’은 최근 가장 핫한 떡볶이집이다. 오후에 문을 열고 새벽까지 영업을 하는데 시간에 관계없이 늘 긴 줄이 늘어선다. 내부는 좁고 아주 허술하다. 오랫동안 앉아서 떡볶이나 튀김을 먹기는 불편하다. 대부분의 고객들이 포장, 테이크아웃을 원한다. 한밤중에도 포장을 기다리는 줄들이 길게 늘어선다. 늦은 밤까지 일하는 연예인들이 즐겨 찾는 걸로도 유명하다. 매콤한 떡볶이와 튀김이 인기다. 떡볶이는 상당히 깔끔하다. 매운 맛의 국물이 있는 떡볶이다. 그러나 과하게 맵지 않아 속이 쓰리지는 않다. 국물을 듬뿍 머금은 밀떡과의 조화가 좋다. 떡볶이를 먹어가며 튀김을 국물에 찍어먹으면 환상의 궁합이다. 튀김 역시 인기 비결인데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쓰고 튀김기름 관리가 철저하다. 매운 맛에 약하다면 어묵을 곁들이기를 추천한다. 직접 육수를 만든다. 흔히 어묵은 퉁퉁 불어있는 경우가 많다. ‘공수간’의 적절히 익은 어묵은 팔뚝만한 김밥과도 잘 어울린다. 영업시간은 새벽까지이지만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 가게 앞에 오토바이가 여러 대 서 있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 것. 영동시장은 강남이다. 밤늦은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움직인다. 때로는 20∼30대 이상의 오토바이가 배달할 떡볶이를 기다린다. 강남에서 시작된 ‘이동형 편의점’이다. 한밤중의 떡볶이 배달도 가능하다.

곱창에 대한 이런저런 비판들이 미디어를 통하여 널리 알려졌다. 맛있는 곱창이 문제가 아니다.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사람들은 아예 곱창을 먹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람의 입은 간사하다. 몸에 그리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굳이 찾아서 먹는다.

‘논현곱창’은 영동시장 골목 남쪽 초입에 있다. 상당히 깔끔한 곱창을 내놓는다. 주인의 이야기대로 곱창의 질로 승부한다. 곱창 본연의 맛에 가장 충실하다. 곱창에 대한 신념도 대단하다. 신선함을 보장하기 위해 직접 농장을 운영하고 직접 재료를 공수한다. 주인은 곱창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다가 어느 날 우연히 맛본 곱창에 반해 직접 곱창 집을 차렸다고 한다. 곱창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곱창을 더 맛있게 즐기는 법을 알려준다. 좋은 곱창, 나쁜(?) 곱창에 대해서 설명도 아끼지 않는다. 곱창은 기름 맛, 혹은 씹는 맛이라는 편견에 열심히 저항하는 중이다. 양, 곱창, 대창 등 부위별로 맛이 다르고, 그 맛의 차이를 음미할 수 있다. 소스도 가게에서 직접 제조한다.

영동시장 북동쪽 끄트머리에 묘한 집이 하나 있다. 흔히 ‘밥집’이라고 표현하는 곳이다.

‘반찬투정’은 영동시장의 번잡한 시장 통에 있는 작고 허술한 식당이다. 재미있는 것은 밥집이면서 뷔페식으로 운영한다. 메뉴는 정해진 게 없다. 그날그날 장을 봐서 만드는, 가정식에 가까운 밥상이다. 실내에 반찬들이 줄줄이 놓여 있고 손님들은 원하는 대로 덜어서 먹는다. 반찬 예닐곱 가지와 국이 있는데 매일 가게 앞의 작은 칠판에 반찬의 종류를 써놓는다. 뷔페라니 비쌀 것 같지만 가격도 6000원 정도로 착하다. 국도 매일 달라진다. 혹시 지나가다가 칠판에 육개장이 쓰여 있다면 반드시 맛봐야 한다. 깔끔하고 맑은 육개장이다. 손이 많이 가는 탓에 자주 내놓지는 못한다. 조미료는 따로 사용하지 않으나, 가공 식재료에 이미 들어가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원산지 표기를 따로 하지 않는 점은 아쉽지만, 감내할 만하다.

‘가빈의 맛있는 밥상’은 음식 내공이 있는 집이다. 영동시장 큰 길 건너편은 반포 먹자골목이다. 꿋꿋이 좋은 음식을 만들려 노력하는 집이다. 한식 밥상 몇 종류가 있다. 조미료가 절제되어 있다. 먹고 나면 속이 편안하다. 시선을 끄는 화려한 메뉴가 없음에도 꾸준히 인기를 끄는 이유다. 이집의 생선구이는 강추. 한식의 백반이 있고 그 백반에 한두 가지 요리를 얹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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