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전통에도 음식은 화려하고 맛갈져

함양 ‘안의갈비’전국 유명세

‘대성식당’40년 업력 국밥

‘풍어횟집’곶감장아찌 인상적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진주는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도시’다. 진주 일대는 남명학파가 있었던 곳이다. 예전의 진주는 인근을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서울(한양)에서 아래쪽을 내려 보면 영남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좌우로 나눠진다. 왼쪽이 영남좌도다. 경북 안동 일대를 이르는 말이다. 오른쪽은 영남우도(嶺南右道)다. 현재의 경남 진주, 합천 중심지다.

좌도는 퇴계 이황을 학통을 잇는 곳이다. 유학을 익힌 후 벼슬살이로 향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우도는 남명 조식의 학통을 잇는 곳이다. 유학을 익힌 후 벼슬살이보다는 향리에서 유유자적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서당을 통해서 후학을 기르고 고향 땅에서 학문을 닦고, 시를 짓고 여생을 보냈다. “진주에는 한유공자(閑遊公子)가 많다”고 한 이유다.

‘범 진주권’에는 인근의 의령과 초계, 합천, 함양, 함안, 산청 등이 포함된다. 흔히 ‘영강(남강) 13개 고을’이라고 표현한다.

경북 안동을 중심한 영남좌도의 유학자, 선비들은 대부분 벼슬살이를 통하여 자신의 이념을 정치에 반영했다. 영남우도의 유학자들은 대부분 벼슬을 하지 않고 향리에서 학문을 닦거나 후진들을 양성했다. 영남우도의 남명의 제자들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벼슬을 하지 않았으나 국가가 위란에 닥치면 목숨을 던졌다. 영남우도는 한국 재벌기업 창립자들도 상당수 배출했다. 정치가 아니라 경제로 나라에 봉사한 것이다. 삼성, 엘지, 효성의 창업자들이 진주 가까운 지수초등학교를 다녔다. 고향도 이 무렵이다.

음식은 오히려 화려하다. 안동 인근의 음식처럼 규격화되지 않았다. 검소, 절제된 음식이 아니라 화려하고 맛갈진 경우가 많다. 진주냉면은 북쪽의 평양냉면보다 화려하다. 진주비빔밥은 안동의 헛제삿밥보다 화려하다.

조선시대 쇠고기를 구해서 먹을 수 있는 계층은 반가의 사람들이다. 일반인들의 경우 평생 쇠고기 한번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았다. “고기는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는 말은 맞다. 국가에서 금육(禁肉)으로 정하고 철저하게 통제했던 것이 쇠고기다. 고기 먹다가 잡혀가서 치도곤을 당하고 조선초기에는 고기 때문에 왕실의 친척이 귀양을 갔던 경우도 있었다. 쇠고기는 철저하게 통제되고 반가를 중심으로 한정적으로 유통되었다. 쇠고기는 조선의 르네상스 시기인 영, 정조 이후 조금씩 풀린다. 전골이 나타나고 쇠고기를 불판에 구워먹는 일들도 기록되어 있다.

영남우도, 반가의 고장인 진주 언저리에는 고기를 요리하고 먹는 일들이 비교적 흔했을 것이다. 인구 4만 명 남짓의 함양군, 그중에서도 아주 작은 면 소재지인 ‘안의면’의 ‘안의갈비’가 한때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것은 이 지역 사람들이 고기를 먹고 요리하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간판이 이채롭다. ‘삼일식당’이라는 이름은 아주 작게 붙어 있고 “안의갈비가 처음 시작된 곳”이라는 이름은 아주 길게, 크게 표기되어 있다. ‘안의갈비를 시작한 집’이라는 이미지가 더 소중하다는 뜻이다. 함양군은 서부경남에서도 가장 서쪽에 있다. 이렇게 외진 곳에 작으나마 갈비골목이 있고 이 갈비골목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떨쳤다.

안의갈비는 하얀 백자접시에 소담스럽게 담겨 나온다. 여러 가지 채소가 갈비 사이사이에 뒤섞여 퍽 화려하다. 얼핏 보면 중식(中食)인가 싶을 정도로 색상이 다채롭다. 밑반찬은 평범하고 소박하다. 갈비를 주인으로 적절한 밑반찬 몇 가지를 깔았다. 갈비찜 맛을 보면 다른 고기 음식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적절히 잘 삶은 고기에 간장양념이 골고루 배어있다. 짜지 않을까 싶지만 짭짤한 정도이지 짜지는 않다. 한때 전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안의갈비’가 망가진 것은 질이 낮은 갈비를 가져다 무턱대고 달고, 짜고, 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성식당’은 함양을 유명하게 만든 또 다른 쇠고기 요리이다. 소고기 국밥이 유명한데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는 통에 맛보기가 쉽지 않다. 시골의 평범한 가정집을 개조해 간판만 달았다. 40년 이상의 업력을 자랑한다. 함양의 쇠고기 국밥은 이름이 다를 뿐 경북 북부지방의 육개장과 흡사하다. 토란대가 많이 들어가서 부드러우면서도 칼칼한 맛을 낸다. 쇠고기 국밥만큼 인기 있는 메뉴는 수육이다. 역시 백자접시에 담겨 나온다. 수육은 특이하다. 미리 양념을 한 것이다. 질긴 맛과 부드러운 맛의 중간점을 잘 유지하는 식감이다. 수육은 무조건 부드러워야 한다고 믿지만 그렇지는 않다. 질기진 않지만 씹는 맛도 있는 것이 오히려 좋다.

사천은 진주의 남쪽, 바닷가다. 진주에서 바다로 나서려면 사천을 거쳐야 한다. 삼천포도 사천에 속한다. ‘풍어횟집’은 사천의 횟집이다. 별 특이할 것도 없는, 평범한 바닷가 횟집이다. 그러나 이 횟집에는 남해 바다가 담겨 있다. 특별히 좋은 재료나 귀한 재료를 고집하지 않는다. 제철 생선을 잘 손질해서 내놓는다. 가게 앞 수족관에서 커다란 앞치마를 두른 주인장은 쉴 새 없이 바쁘다. 초봄 무렵에는 코끼리 조개 등도 아주 싱싱하다. 밑반찬도 놀랍다. 심심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맛이다. 재료와 밑반찬의 밸런스가 훌륭하게 맞아 떨어진다. 인상적인 것은 곶감장아찌이다. 마치 반가의 음식인 정과(正果) 같다. 곶감의 맛이 살아 있다. 매운탕이 아닌, 맑게 끓여주는 탕 역시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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