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 싸고 기본 충실한 착한 서민식당 모여

‘안동국시’국수 맛 일품, 반찬 정갈

‘국과밥’해장에 좋은 맑은 한우 국밥

‘착한밥상’매일 장 봐 제철 재료 사용

‘전통대구탕’‘원조신촌설렁탕’손꼽혀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아현고가도로가 사라졌다. 1968년 9월19일 개통된 국내 첫 고가차도이다. 45년간 사용했으니 시쳇말로 쓸 만큼 썼다. 뻥 뚫린 길이 얼마쯤은 생경스럽지만 이 또한 오래지 않아 익숙하리라.

이 인근이 바로 서대문구 ‘북아현동’과 마포구 ‘아현동’ 사이의 경계지점이다. ‘아현(阿峴)’은 ‘아현(兒峴)’이 바뀐 이름이다. 한자를 바꾼 뚜렷한 이유는 없다.

조선시대의 한양에는 성저십리(城底十里), 성저오리(城底五里) 지역이 있었다. 한양도성의 성벽(城壁)을 기준으로 오리나 십리 되는 지역을 뜻한다. 도성 인근 지역이니 특별지역이다. 여러 가지 제약도 따른다. 한양도성의 안전을 위하여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던 지역이라는 뜻이다.

아현동 일대는 조선초기에는 한성부 성저십리 지역에 속했다. 영조 무렵에는 한성부 서부 중 ‘아현계’라 불렀다. 남쪽으로는 만리현(萬里峴, 만리동 고갯길 일대)과 서북쪽으로는 대현(大峴)이라는, 두 개의 큰 고개 중간에 있었다. 만리현이나 대현보다 작은 고개라는 뜻이다. ‘아현(兒峴)’은 ‘작은 고개’ ‘아이 고개’ ‘애고개’ ‘애오개’로 바뀐 것을 한자로 바꾼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아현동’과 ‘북아현동’이다. 행정구역이 바뀔 때마다 ‘애오개’ 지역은 서대문과 마포 사이에 왔다갔다 한다. 결국 지금은 ‘서대문구 북아현동’과 ‘마포구 아현동’이 되었다. 마포구 공덕동 일부와 마포구 아현동 일대가 ‘애오개’다. 전철역 애오개역이 있는 지역이다. 물론 ‘남아현동’은 없다. 아현동이 남아현동인 셈이다.

아현동, 애오개 일대는 서울의 대표적인 서민 지역이었다. 교통 요지 마포에서 서울 청량리를 잇던 전철이 지나가던 지역이다. 자그마한 집들이 많은 지역이니 이래저래 개발도 늦었다. 오래된 지역이니 노포들이 많다. 허름한 식당들도 쉽게 30년, 50년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서울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들은 누구나 ‘애오개 뒷골목의 밥집’ 한두 곳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

‘안동국시’. 경북 북부지방 반가의 음식인 ‘안동국시’가 애오개 뒷골목에 있음은 퍽 흥미롭다. 국시와 정식 메뉴가 있다. 안동지방의 국수는 크게 ‘제물국시’와 ‘건진국시’로 나눌 수 있다. ‘건진국시’는 ‘삶은 다음 건져서 냉수처리를 한 국수’다. 쫄깃하고 차진 맛이 있다. 국물도 깔끔하다. 대소사(大小事)에서는 미리 준비해서 쉽게 내놓을 수 있는 건진국수를 사용했을 것이다. 제물국수는 육수에 면을 넣고 삶은 것이다. 별도로 건져내는 과정도 없고, 냉수처리도 하지 않는다. 건진국수에 비해 텁텁하고 국물이 걸쭉한 편이다,

제대로 만든, 기품 있는 반가의 음식이다. 면이 하늘하늘하고 한편으로는 탄성도 적당하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끊기는 맛이 일품. 반찬들도 정갈하다. 가늘게 채 썬 무나물은 사각사각한 맛이 살아 있다. 김치 또한 제대로 만든 경상도식 김치다. 제법 묵은 김치지만 곰삭은 맛보다는 적절한 풋내를 가지고 있다.

‘국과밥’은 애오개역 오피스 건물들 뒤에 자리한 작은 식당이다. 테이블 서너 개와 20여 명이 들어갈 방이 하나 있다. 주중에만 문을 연다.

대표 메뉴는 쇠고기 국밥. 배추와 대파 등이 많이 들어가 적당한 단맛이 난다. 소고기의 구수한 맛도 제대로 살렸다. 상당수의 장터국밥이나 한우국밥 등이 사골 분을 사용하거나 터무니없이 고추기름을 사용한다. 맛이 텁텁하다. 이집의 한우국밥은 맛이 제대로 살아있다. 조미료를 거의 쓰지 않으니 맑은 맛이 난다. 속을 쓰리게 하는 매운 맛이 아니라 맑으면서도 매콤한 맛이 난다. 해장용으로도 좋다. 반찬은 서너 가지 정도로 매일 바뀐다. 또 다른 인기 메뉴는 콩국수다. 진하게 잘 만든 국물은 고소함이 가득하다. 착한 사람이 정성스레 만든 음식이다.

이 지역의 또 다른 ‘착한 밥집’은 ‘착한밥상’이다. 특별히 내세우는 메뉴는 없다. 가게 이름이 ‘착한밥상’이다. 그날그날 반찬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백반이다. 집 밥에 가까울 정도로 소박하다. 매일 장을 봐서 제일 싸고 좋은 제철 재료로 내놓는 음식으로 반찬도 퍽 단출하다. 밑반찬 5-6 가지와 국 한 그릇, 고기나 생선으로 만드는 메인 반찬(?) 정도가 전부다, 장류 등의 조미료를 제외하고 별도로 주방에서 조미료를 따로 넣지는 않는다. 먹고 나면 속이 참 편하다. 음식이 짜지 않다. 아침 식사도 가능하다. “오늘 뭐 먹을까?”란 직장동료의 질문에 “아무거나”라고 답한다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다.

‘전통대구탕’집도 특이하다. 가게에 ‘대구탕’이라는 글자만 보인다. 메뉴도 대구탕과 찜뿐이다. 내장탕이 따로 있어 둘이 가서 하나씩 주문을 하면 대구와 내장을 섞어서 내주기도 한다. 내장이 들어가면 아무래도 깊은 맛이 난다. 양도 푸짐하다. 국물은 칼칼하니 깨끗하다. 잡다한 게 들어가지 않는다. 냉동 수입 대구를 사용하는 점은 아쉽지만 가격이 저렴하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도 생선 만지는 솜씨가 좋아 충분히 맛을 낸다. 1인분 주문이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원조신촌설렁탕’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내공 있는 노포다. ‘신촌설렁탕’은 여러 곳이고 서로 상관은 없다. 이곳도 마찬가지. 설렁탕, 내장탕 등을 권하는데 굳이 ‘특’을 고집하지 않아도 고기 양이 넉넉하다. 기본을 지킨 설렁탕이다. 설렁탕은 뼈 곤 국물에 살코기 곤 국물을 일부 더한 것이다. 설렁탕이 지나치게 고소, 구수하거나 맛있으면 조미료, 감미료, 수입 사골분 등을 사용한 것이다. 기본을 지키는 설렁탕은 무덤덤한 맛이다. 소금과 파를 넣으면 그나마 달고 구수한 맛이 돈다. 이집 설렁탕이 그러하다. 저녁 7시에 문을 닫는 것이 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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