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기의 전설이 어린 용추폭포.
정상 바로 옆에서 시원한 샘물 솟아

우리말로 물바라기재라고 일컫는 수망령(水望嶺). 경남 거창군 북상면과 함양군 안의면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915미터의 이 고개는 동으로 금원산과 기백산, 서쪽으로 월봉산과 거망산 등 1,200~1,300미터급 준봉들을 거느리며 남북으로 길게 뻗어 이어진다. 물을 바라본다는 뜻 그대로 수망령은 고갯마루 양쪽으로 수량 풍부한 계류들을 굽어보고 있을 뿐 아니라 정상 바로 옆에서는 맑고 시원한 샘물이 솟아나온다.

수망령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내리는 내계천(월성천)은 위천과 황강을 거쳐 합천군 청덕면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수망령 남쪽으로 흐르는 용추계곡은 지우천-남강을 지나 함안군 대산면에 이르러 낙동강 본줄기로 합류한다. 수망령 남북으로 서로 다르게 발원한 물줄기가 낙동강이라는 한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 셈이다.

거창 월성리와 함양 용추사를 잇는 수망령 고갯길은 한여름의 열기가 가신 가을철 산책 코스로 그만이며 경사도 완만하다. 10㎞ 남짓한 이 길은 월성리를 기점으로 잡아야 오르막이 짧아 힘이 덜 든다.

거창에서 황점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월성리에서 내린다. 내계대교 앞 삼거리에서 다리를 건너 내계마을로 들어서면 본격적인 수망령 트레킹이 막을 올린다. 내계(內桂)는 월봉산 자락에 안긴 지형이 달 속의 계수나무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길가에는 붉게 익어가는 사과들이 탐스럽게 매달려 있어 거창이 사과의 명산지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수망령 정상에 세워진 팔각정.
신선이 살았다는 오지의 내계폭포

내계교에서 40분쯤, 계곡을 끼고 걷다가 몇 차례 다리를 건너면 내계폭포 안내판과 만난다. 내계폭포는 신선이 살았다는 전설에 따라 자하동(紫霞洞)이라고 일컫던 아름다운 골짜기에 파묻힌 높이 10미터 남짓한 물줄기로 용소폭포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폭포는 가파른 비탈 아래 숨은 탓에 접근하기가 위험하거니와 철망으로 가로막혀 멀찌감치 위에서 굽어볼 수밖에 없다.

다시 길을 재촉하여 15분 남짓 걸으면 내계5교를 지나 간이화장실이 보인다. 여기서 길 오른쪽으로 드리운 좁다란 나무데크로 들어서면 이내 뜻하지 않은 폭포수가 깎아지른 암벽 틈새로 시원스레 쏟아져 내린다. 이렇듯 내계위폭포는 모르면 지나치기 십상인 위치에 절묘하게 숨어 있다.

내계위폭포 어귀에서 굽이굽이 돌아가는 고갯길을 50분쯤 더 오르면, 운산골을 지나고 온갖 들꽃들의 환영을 받다가 물소리가 잦아들 즈음 수망령 정상에 다다른다. 수망령은 월봉산과 금원산으로 오르는 산길 입구이기도 하다. 수망령의 팔각정에서 다리쉼을 하면서 김밥과 오이로 끼니를 때운다. 소박한 점심상이지만 맑은 공기와 바람을 벗 삼아 먹노라니 꿀맛이 따로 없다.

수망령을 넘어서면 줄곧 내리막이라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우거진 숲길을 걷다가 하늘이 열리면 저 멀리 황석산의 웅장한 산세가 가슴 설레게 한다. 두 젊은 바이커가 산악자전거를 타고 옆으로 스쳐 간다. 트레킹에 나선 이후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이다. 숱한 지류의 물이 합류하면서 용추계곡 물소리는 점차 우렁차게 깊은 골짜기를 울린다. 진리삼매경에 빠질 만큼 아름다워 심진동이라고 불리기도 했다는 말이 실감 나는 정경이다.

고갯길을 오르다가 뒤돌아본 월성리와 덕유산 능선.
'비류직하십여장'의 신비로운 절경

수망령을 떠난 지 50분 후, 무학대사가 몸을 숨기고 수도했다는 은신암 입구를 지나자마자 용추자연휴양림 상부 지역의 오토캠핑장과 숲속의집을 만나고, 다시 15분 뒤에는 산림문화휴양관과 물놀이장에 닿는다. 용추자연휴양림 아래에는 벌통이 놓인 돌탑공원이 눈길을 끌고, 30분 후에는 용추사 북쪽 입구 다리에 이른다.

계곡을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 삼사 분만 가면 용추사와 만난다. 때마침 붉은 꽃이 핀 배롱나무가 산사의 정취를 돋운다. 전통사찰 86호인 용추사는 신라 소지왕 9년(487년) 각연대사가 세운 장수사와 부속 암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사찰로 1959년부터 복원 중건했다.

용추사 아래에는 용추계곡 으뜸의 절경인 용추폭포가 위용을 뽐낸다. 어느 옛 시인이 ‘비류직하십여장(飛流直下十餘丈)’이라고 표현했듯이, 15미터 높이에서 기암절벽을 뒤흔들듯 내리꽂히는 물줄기가 신비스러우면서 장엄하다. 폭포 아래로는 지름 30미터에 이르는 용호(龍湖)가 입을 벌리고 있다. 이무기가 용이 되려고 108일 금식기도를 드리다가 하루를 채우지 못하고 실패했다는 전설이 어린 곳이다.

용추폭포에서 10분쯤 내려가면 용추사 일주문인데 현판에는 ‘덕유산 장수사 조계문’이라고 적혀 있다. 각연대사가 창건한 옛 장수사는 해인사에 버금가는 거찰로 원효, 의상, 무학, 서산, 사명 등의 고승이 수도한 것으로도 이름났는데 한국전쟁 때 전소되고 일주문인 조계문만 남은 것이다. 1702년(숙종 28) 세워진 이 일주문은 일반적인 맞배지붕이 아니라 다포계 팔작지붕 양식이어서 독특하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54호로 지정되었다.

용추사는 전통사찰 86호로 지정되었다.
이로써 쉬엄쉬엄 걷는 시간만 3시간 30분쯤 걸린 수망령 트레킹이 막을 내렸다. 이제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 버스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용추사는 함양군에 속하지만 버스는 거창에서 출발하여 안의를 거쳐 오간다.

여행메모


# 찾아가는 길

승용차를 이용하면 차를 되찾으러 가야 한다는 문제가 따른다. 거창에서 하루 7회 운행하는 월성-황점 방면 버스 이용.

# 맛있는 집

안의면은 한우 갈비찜과 갈비탕으로 이름난 고장이다. 안의 갈비찜은 간장을 기본양념으로 조리듯 삶아 버섯, 당근, 파, 양파 등을 곁들이는 것이 특징으로 간간하면서 살이 부드러우며, 갈비탕은 깔끔하고 담백하면서 시원한 맛이다. 비싼 한우인 만큼 푸짐한 양을 기대하지는 말도록. 안의면의 여러 집 가운데 삼일식당(055-962-4492), 옛날금호식당(055-964-8041), 안의원조갈비집(055-962-0666) 등이 유명하다.

벌통이 놓인 돌탑공원이 이채롭다.

명성 높은 거창 사과가 붉게 익어가고 있다.

글ㆍ사진=신성순(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