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오래된, 뿌리가 깊은 맛집 곳곳에

‘호반’ 대창으로 만든 북한식 진짜 순대
화덕 피자 알린 ‘대장장이화덕피자’
전설의 무용가 최승희 살았던 ‘한뫼촌’
‘카페 코’융드립으로 진한 맛

권력은 권력자와의 물리적인 거리와 반비례한다. 권력은, 최고 권력자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또 얼마나 자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조선의 최고 권력자는 당연히 궁궐의 국왕이다. 권력자들은 국왕의 궁궐과 가까운 곳인 삼청동, 북촌(北村) 일대에 모여 살았다. 최고 권력자의 지근거리다. 궁중과 가까운 곳이니 출퇴근도 여유롭다. 끼리끼리 연락을 취하기도 쉽다.

삼청동 인근의 팔판동(八判洞)은 판서가 동시에 8명이 살았다고 해서 팔판동이다. 북촌은 오늘날 삼청동, 북촌 일대가 권력자들이 살았던 동네들이다. 당연히 권력자들의 음식은 이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 유지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떡이다. ‘남주북병(南酒北餠)’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한양 도성의)남쪽에서는 술을 마시고 북쪽에서는 떡을 먹는다”는 뜻이다. 도성의 경계선은 청계천변이다. 조선후기, 일제강점기에는 오늘날의 명동 지역이나 청계천 일대까지 민가가 들어선다. 한양도성의 남쪽에 있는 남산은 도성의 핵심부가 아니라 외벽이다. 이 일대에 사는 이들은 가난한 선비들이거나 하급무인들이었다. 벼슬살이를 하지 않으면 공부만 하는 딸깍발이 선비들이나 무인들은 손님이 오면 술상을 차렸다. 험하고 거친 막걸리 정도였을 것이다.

북촌은 고위직 관리들, 부호들은 다과상, 떡 상을 내오는 것이 상례다. 조선시대에는 술상이 잦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보는 것같이 손님만 오면 술상을 내지는 않았다. 떡은 귀한 먹거리였다. 손님맞이 상에 떡을 내오거나 특별한 행사에 떡을 내는 것은 대단한 권력자, 반가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오늘날 허리우드 극장 언저리에 떡집이 많은 것은 일제강점기까지도 전해졌던 북촌의 습속 때문이다.

종로구 계동의 ‘북촌문화센터’부터 북쪽으로 가회동 일대에 들어서는 곳, 이 언저리에서 삼청동을 거쳐 경복궁에 닿은 지역이 대략 북촌 지역이다. 고위직 관리들이 많이 살았던 이곳에는 여전히 오래된, 뿌리가 깊은 맛집들이 있다.

‘호반’은 헌법재판소 맞은편 작은 골목 안에 있다. 얼추 50년 이상 된 오래된 집이다. 가정집을 개조한 구조로 2층이다. 좁은 골목 안에 이 정도의 면적을 가진 집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음식은 소박하고 푸짐하다. 전형적인 북한음식이다. 그리 아름답지는 않지만 정갈하고 정감이 있는 북한 음식을 선보인다.

대표메뉴 순대는 대창순대다. 순대는 전국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더러 순대를 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포장마차나 분식집까지 순대는 인기 메뉴다. 불행한 것은 대부분의 순대들이 케이싱을 사용하는 ‘공장제 짝퉁 순대’다. ‘케이싱’은 순대 재료인 창자 모양을 한 것으로 순대 대용품으로 많이 사용한다. 전분이나 찹쌀을 사용하기 때문에 건강에 나쁘지는 않다고 하지만 진짜 순대는 아니다. ‘호반’의 순대는 돼지의 창자, 그 중에서도 대창에 곡물을 채워 넣은 북한식 순대다. 순대 본연의 냄새가 난다. ‘호반’의 순대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 수 있다. 제대로 된 순대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호반’의 순대를 먹으면서 그 무거운 맛에 질리는 경우도 있다. 아주 좋은 순대, 제대로 만든 순대다. 순대의 겉껍질은 흰색에 가깝다. 색소도 넣지 않고 제대로 만든 순대라는 뜻이다. 대창순대는 원래 흰색이다.

가벼운 식사로는 콩비지가 아주 좋다. 돼지 뼈가 들어가 구수하고 돼지고기 특유의 단맛을 낸다. 속이 편안한 식사다. 허물없는 사람들끼리 저녁 시간에 술 한 잔 기울이기도 좋다.

‘대장장이화덕피자’는 북촌에서 삼청동으로 넘어가는 가회동 길 골목에 있다. 행정구역도 가회동이다. 골목 안에 숨어 있어서 제대로 찾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간판도 제대로 없다. 현대적인 느낌의 ‘유리 가라쓰’ 안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가끔 긴 줄을 서 있는 경우도 있다. 옆 가게까지 확장을 했다.

비교적 일찍 화덕피자를 만들기 시작한 집이다. 오븐피자의 시대를 거쳐 화덕피자가 시작될 때 유행을 선도했다. 피자는 수준급이다.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것은 루꼴라 피자다. 피자 판 위에 가득한 생 루꼴라의 쌉싸름한 맛이 좋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스페인 하몽을 올린 피자도 있다. 최근 가장 인기를 누리는 메뉴는 깔조네 피자다. 깔조네 피자는 ‘뚜껑이 있는’ 피자다. 피자 판 위에 또 다른 판을 얹었다. 양도 든든하다. 테이블 간격이 좁아서 불편한 점은 감수해야 한다.

‘한뫼촌’은 월복한 무용가 최승희의 생가로 알려져 있지만 틀린 사실이다. 최승희가 살았던 집이다. 마당의 장독대가 소담하다. 아기자기한 한옥을 개조해서 식당으로 사용한다. 내부는 개별실로 꾸며져 있다.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 문이지만 좌석은 입식이다. 조용한 식사가 가능하다. 가격대가 다양한 편이다.

그릇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옻칠을 한 목기다. 조미료를 최대한 절제하여 음식 맛은 심심하다. 채식위주의 메뉴구성이다. 사찰음식에 가깝다. 제철 재료를 사용한다. 깨, 기름은 경북 상주에서 받아온다. 튀김이나 지짐도 느끼하지 않고 깔끔한 맛을 낸다.

막걸리는 수십 년째 막걸리만 만드시는 할머니께 받아온다. 겨울에는 과실주가 별미다.

‘카페 코’는 헌법재판소 오른쪽 좁은 골목에 있다. 사람의 코 모양의 조형물이 간판을 대신한다. 내부는 공간을 오목조목 나누었다. 화려한 장식은 없다. 깔끔하고 소박하지만 품위가 있는 공간이다. 다양한 원두를 취급한다. 직접 로스팅 하고 융(絨)드립을 한다. 진하고 부드러운 향이 살아난다. 그날 가장 좋은 원두를 추천해 달라고 해도 좋다. 화장실이 예쁘고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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