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계곡과 하늘문

용추 하류 계곡으로 단풍이 드리웠다.
용추폭포와 문간재로 오르는 등산로가 나뉘는 갈림길에서 문간재 방향으로 잠시 들어서자 피마늘골 건너편에서 깎아지른 벼랑이 가로막는다. 지하여장군과 천하대장군, 한 쌍의 장승 머리에 '하늘문'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고 그 위로는 너비 1미터 가량의 철제 층계가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다. 그러나 말이 층계지 실제로는 사다리나 마찬가지일 터. 경사가 60~70도는 되는 듯싶다.

하늘문에서 오르는 하늘재 코스는 두타산 지킴이 및 산악구조대장으로 널리 알려진 권영일 씨가 손수 개설했다. 수직 높이 80미터(해발 305~385m)에 걸쳐 278개의 층층대가 여섯 구간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 첫 구간 150 층계는 뒤로 넘어갈 듯 아슬아슬해 다리가 후들후들거린다. 천국으로 오르는 층층대가 이럴까? 불현듯 1970년대의 하드록 그룹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불후의 명곡 '스테어웨이 투 헤븐(Stairway to Heaven)'이 떠오른다.

68 층층대로 이루어진 두 번째 구간을 올라 고깔 모양 바위문을 지나자 비로소 앞이 탁 트인다. 발바닥바위를 비롯하여 병풍 같은 기암절벽을 감싼 짙푸른 노송과 가을을 맞아 울긋불긋 단장한 활엽수가 어우러져 천하 절경을 연출한다. 무릉계곡 맞은편 산자락에 두타산성 터가 보이고 그 위로는 산성12폭포가 댕기 같은 긴 물줄기를 벼랑 아래로 늘어뜨린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면 쌍폭의 어머니 박달골이 기암절벽 사이로 깊게 패어 있고, 저 멀리로는 두타산과 청옥산을 잇는 백두대간의 힘찬 마루금이 하늘 아래 꿈틀댄다. 여기가 비록 천국은 아닐지라도 선계(仙界)라고 부르는 건 무방하지 않을까?

무릉계곡 절경 감상하고 나서 하늘문으로

비경은 계속된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또 다른 풍경화가 시선을 잡아맨다. 감동과 흥분에 젖어 세상사 고뇌도, 피곤함도 잊는다. 하늘재를 넘어 관음골 맑은 물을 건너면 관음사(관음암)에 이른다. 하늘문에서 시작된 2.1㎞ 남짓한 하늘재 트레킹 코스는 40여 분만에 막을 내린다. 신라 의상국사가 수도하던 곳이라고도 하고, 고려 태조 때 용비대사가 창건했다고도 하는 관음사는 현재 비구니들의 수도처로 남아 있다.

두 물줄기가 벼랑을 타고 쏟아지는 쌍폭.
하늘재 코스는 삼화사 쪽에서 관음사를 거쳐 하늘문으로 내려올 수도 있으나 사다리에 가까운 층층대를 내려오노라면 심한 현기증으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하므로 차마 못할 짓이다. 힘들어도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고 위만 보고 오르는 게 차라리 속 편하다. 그래서 무릉계곡의 절경을 감상하고 나서 하늘문 층층대를 오르는 것이 정석이다.

고적대(1,354m)-청옥산(1,404m)-두타산(1,353m)을 잇는 백두대간 동북쪽 기슭을 굽이치는 절경의 골짜기가 무릉계곡이다. 시원스러운 폭포와 기암괴석을 감도는 맑은 물, 병풍 같은 기암절벽과 넓은 암반이 어우러지는 무릉계곡은 한여름 피서지로도 그만이며 늦가을 단풍도 자못 개성적이다.

쌍폭과 용추폭포 일원의 단풍이 일품

무릉계곡에는 수백 명이 앉을 만한 너럭바위인 무릉반석, 신라 고찰 삼화사, 어느 선비가 종이학을 접어 날렸더니 실제로 학이 되어 날아갔다는 전설이 깃든 학소대 등 명소가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 돋보이는 절경은 매표소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쌍폭과 용추폭포다.

쌍폭은 왼쪽 박달골에서 흘러내린 층계형 폭포와 오른쪽 용추폭포에서 내려온 계류가 빚은 직폭이 만나 하나의 깊은 웅덩이를 파놓고 있다. 좌우에서 20여 미터 높이의 벼랑을 타고 쏟아지는 쌍폭의 두 물줄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신비스럽고 오묘하다. 1999년에는 쌍폭 위에 영화 '싸울아비' 촬영 세트인 오두막이 올라앉아 한결 운치를 돋우기도 했지만 지금은 철거되어 조금 아쉽다.

가을이 짙어가는 무릉계곡 오솔길.
용추폭포는 항아리 모양의 상담과 중담을 거친 물이 하담으로 내리꽂히는 3단 폭포로서 지극히 빼어난 맵시가 환상적이다. 국내의 수많은 용추폭포 가운데서도 첫손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무릉계곡 단풍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쌍폭과 용추폭포 일원이다. 해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이곳 단풍은 보통 10월 중순 무렵부터 물들어 10월 하순~말경 절정을 이룬다.

무릉계곡 중간부에서 샛길로 빠져 가파른 비탈길로 30분쯤 올라가 만나는 두타산성터도 다녀올 만하다. 신라 파사왕 23년(102년) 처음 쌓고 조선 태종 14년(1414년) 증축했다는 두타산성은 길이 2.5㎞, 높이 15미터의 석성이었지만 지금은 아쉽게도 원형을 찾을 길이 없다. 임진왜란 때는 이 고장 청년들이 의병을 조직해 왜군과 싸웠던 호국의 현장이기도 하다.

# 찾아가는 길

영동고속도로-동해고속도로-동해시-7번 국도-42번 국도-삼화동을 거쳐 무릉계곡으로 들어온다.

대중교통은 고속버스나 영동선 열차로 동해시로 온 뒤에 무릉계곡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사다리에 가까운 층계인 두타산 하늘문.
# 맛있는 집

무릉계곡 입구 무릉반석상회(033-534-8382)는 백두대간 지킴이(전 백두대간 보전회 회장) 김원기 씨가 운영하는 집으로 황기, 인삼, 대추, 밤, 감자, 마늘 등을 듬뿍 넣은 토종닭 백숙과 동동주, 각종 산채 요리를 맛깔스럽게 내고 민박도 받는다.

'하늘문'을 연 주인공 권영일 씨가 운영하는 무릉회관(033-534-9990)은 토종닭백숙과 닭볶음탕, 오리백숙, 산채곤드레돌솥정식 등으로 인기를 끌며 최신 콘도식 숙박 시설도 갖추고 있다.


빼어난 맵시가 환상적인 용추폭포.
보물 1277호인 삼화사 삼층석탑.

글 사진=신성순(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