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불회사

보물 1310호로 지정된 불회사 대웅전.
국내 첫 사찰… 편백나무 숲길 운치

호남선 열차를 타고 광주역에서 내린다. 역전 버스정류장에서 불회사 입구를 거쳐 중장터로 가는 시내버스는 두 가지다. 남평까지의 길은 같지만, 남평에서 다도면으로 질러가는 노선과 나주-영산포로 빙 도는 노선으로 나뉜다. 마침 나주와 영산포로 돌아가는 노선이 아니라 다도 직행을 탄 덕분에 약 1시간 만에 불회사 어귀에 다다랐다. 나주로 도는 노선은 30분이나 더 걸린다.

버스에서 내리니 작은 사찰치고는 우람한 일주문이 눈앞에 들어온다. 일주문에는 초전성지덕룡산불회사(初傳聖地德龍山佛會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여기서 초전성지(初傳聖地)는 최초로 불교가 전해진 성지라는 뜻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불회사의 창건 내력을 알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불회사는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1978년 불회사 큰법당 불사 때 발견한 ‘호좌남평덕룡산불호사대법당중건상량문’에 따르면 불호사(불회사의 옛 이름)는 동진 태화 원년(366년) 마라난타가 창건하고, 희연조사가 당나라 현경 1년(656년)에 재창했으며, 원말 지원 1년(1264년) 원진국사가 삼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위 상량문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마라난타가 내륙을 거치지 않고 영산강 포구를 통해 당시 삼한 중 마한의 근거지였던 나주 지방으로 들어와 불회사를 세웠다고 추정할 수 있다. 아울러 불회사는 우리나라 최초로 창건된 사찰임과 동시에 한국 불교 전래를 6년이나 앞당기게 되는 셈이다.

여장승인 주장군.
미소로 반기는 석장승 한 쌍

일주문을 지나자 안온한 숲길이 마음을 편안하게 감싼다. 일주문에서 불회사에 이르는 진입로는 1㎞가 조금 넘는 거리로 편백나무 숲길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삼나무와 비자나무도 어우러져 운치를 돋운다. 그 울창한 숲 사이로 샛노란 은행잎과 빨간 단풍잎이 반짝이고, 오른편 산자락에는 주렁주렁 매달린 감이 붉게 익어가고 있어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15분 남짓한 산책이 아쉬울 만큼 아름답고 호젓한 길이다.

불회사에 거의 다다를 즈음, 중요민속자료 11호로 지정된 석장승(돌장승)이 반긴다. 사찰이나 마을 어귀에 세우던 장승은 잡귀 또는 도적의 출입을 막고 물리친다는 민간신앙적인 수호신의 소임을 해오다가 나중에는 이정표 구실도 했다. 장승의 유래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선사시대의 선돌이나 원시무속신앙의 솟대(소도)가 그 기원인 것으로 추정된다.

불회사 진입로 좌우에 마주보고 서있는 한 쌍의 석장승은 민간신앙과 불교신앙이 융합된 소중한 조형물로 선이 굵고 투박하여 강렬한 인상을 풍긴다. 높이 2.3미터의 남장승은 조각의 선이 깊고 뚜렷하며 수염으로 남성임을 표현하고 있다. 입 가장자리에는 뾰족한 송곳니가 아래로 드러나 있고 머리 위에는 상투를 틀고 있으며, 몸체에는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높이 1.7미터의 여장승은 남장승에 비해 표정이 온화하고 상대적으로 얕은 선으로 조각되었다. 미소 띤 얼굴이 여성스러우며 몸통에는 ‘주장군(周將軍)'이라고 새겨져 있다. 두 장승 모두 크고 둥근 눈에 두루뭉술하면서 큼직한 주먹코가 해학적이다. 인근에 있는 운흥사 석장승(중요민속자료 제12호)은 강희58년(조선 숙종 45년, 1719년)이라고 제작연도가 음각되어 있는데, 조각 형태와 수법이 그와 비슷한 것으로 미루어 그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막바지 가을 여행지로도 제격

남장승인 하원당장군.
석장승을 지나면 단풍빛이 갈수록 곱게 비치다가 이윽고 불회사에 다다른다.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마산리, 덕룡산(492m) 동쪽 기슭에 파묻혀 있는 불회사는 전나무, 삼나무, 비자나무, 편백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대웅전, 영산전, 삼성각, 명부전, 응향각, 심검당 등 10여 전각이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2001년 4월 보물 1310호로 지정된 불회사 대웅전은 1799년(정조 23년) 중건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폿집으로 화려한 장식이 돋보인다. 대웅전의 본존불로는 종이로 만든 건칠불상인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으며, 그 좌우로 흙으로 조성한 토불인 관세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이 놓여 있다.

불회사는 인근 운주사의 명성에 가려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철따라 색다른 정취를 선사하며 특히 늦가을 단풍이 개성미 넘치는 풍광을 내뿜는다. 꽃불을 지핀 듯 붉은 색 일색으로 활활 타오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오색영롱한 색상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단풍이 매혹적이며, 바람결에 흩날리는 낙엽도 정취를 돋운다. 이곳 단풍은 매우 늦게 물들어 막바지 가을 여행지로도 제격이다. 해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11월초가 되어야 단풍이 물들기 시작해 11월 중순 무렵에 절정을 이루는 것이다.

<여행메모>

# 찾아가는 길=호남고속도로-광산 나들목-13번 국도-나주-818번 지방도-봉황면 입구-다도면을 거친다.

불회사 단풍은 11월 중순 무렵 절정을 이룬다.
대중교통은 광주역이나 나주에서 중장터 방면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불회사 입구 하차.

# 맛있는 집=나주의 유서 깊은 객사인 금성관 남쪽 일원에 나주곰탕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해방 후의 5일장에서 서민을 위한 국밥을 말아 시작한 것이 전통향토음식인 나주곰탕으로 자리 잡아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것이다. 나주곰탕은 무쇠 솥에 쇠뼈를 넣어 푹 곤 맑은 육수에, 따로 삶은 고기(사태, 양지머리 등)와 밥을 말아내는데 한마디로 ‘밥 반, 고기 반’이다. 고기를 삶기 전에 기름기를 제거하는 것이 담백한 수육 맛의 비결이다. 많은 집 가운데 하얀집(061-333-4292), 노안집(061-333-2053), 남평할매집(061-334-4682) 등이 유명하다.


편백나무와 은행나무가 어우러졌다.
불회사는 늦가을 정취가 인상적이다.

글ㆍ사진=신성순(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