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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규 원장의 스마트 한의학(117)] 가족, 인연-감정과 질병의 시작

지금 50대 중반에 해당되는 흔히 말하는 58년 개띠 때 도시의 경우 보통 초등학교 한 학년이 10반 정도 되고 한 반에 60∼70명 정도로 그것도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받곤 했다. 또한 이런 많은 학생 수 때문인지 대학입시는 경쟁이 치열해서 같은 고등학교 선후배가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동시에 입학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선후배 없이 혼자였던 필자는 주로 나이 많은 동기들과 어울리다 보니 그들의 후배가 나를 형이라고 부른 적도 있었다.

이와 비슷하게 과거에는 한 집에서 시어머님이랑 며느리랑 모두 아이를 가져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산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누구는 태어나자마자 삼촌, 고모, 이모, 외삼촌 같은 거창한 직함을 들고 태어나고, 누구는 조카로 태어난다. 필자의 집에서도 막내고모랑 큰 형님이 나이가 같아 초등학교에 같이 입학해서 같은 반에서 수업을 받곤 했다. 그래서 막내 고모는 큰 형님만큼이나 친근하고 가깝게 지낸다.

최근에 필자가 부친상을 당했을 때 막내고모는 북받치는 설움을 참을 수가 없어서 너무나 서럽게 울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토하기만 할 뿐 꺼억꺼억 거리면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조카가 명색이 한의사 인데 갑자기 그런 일을 당하니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이대로 두다가는 필시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 우선 그늘진 곳으로 가서 뒷목에 받침을 할 수 있는 것을 ?아서 고개를 최대한 완전히 뒤로 제껴서 입에서 기관지가 꺾이지 않고 일직선이 되도록 유지하게 하고 복식호흡을 하게 했다. 어느 정도 숨쉬기가 회복되자 따뜻한 코코아 한잔을 마시게 해서 겨우 진정을 시켰다.

애이불상(哀而不傷)이라고 했다. 슬퍼하지만 몸을 상하지 않게 슬퍼하라는 뜻이다. 애정(哀情)은 폐(肺)의 감정으로 너무 슬퍼하면 폐장이 상해서 숨을 쉴 수 없다는 한의학 이론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셈이다. 그리고 따뜻한 코코아의 달달한 감미(甘味)는 몸을 이완시켜 주고 안정시켜 주는 역할을 해서 진정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막내 고모는 왜 그렇게 몸을 상할 정도로 울었을까? 부친과 일면식이 없는 지나가는 행인도 똑 같이 그런 슬픈 감정을 느낄까? 쉽게 말하면 추억 때문일 것이다. 큰 오빠와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울컥한 것 같다.

굳이 불교의 용어를 빌리지 않아도 세상의 모든 일은 인연에서부터 시작된다. 만나야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 인연이란 것이 묘해서 사랑하는 사이인데도 사랑만 하는 것이 아니고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각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큰일은 항상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나가는 행인1은 사이코패스가 아닌 다음에는 나와 아무런 원한도 없고, 애정도 없어 나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한의원에 울화병, 경계(驚悸, 가슴이 진정이 안 되고 뛰고 잘 놀라는 것), 우울증, 불면증, 상기(上氣,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갱년기 증후군, 수족냉증 같은 정신적인 문제로 내원하는 60대 이상의 부인들을 진료해 보면 그 원인이 가족에게서 시작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강압적이고, 독단적이며 가부장적인 권위를 강조하는 남편을 둔 경우는 숨을 못 쉬고 헐떡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집에 들어가는 것조차 싫지만, 경제적으로 독립할 엄두가 나지 않고 또한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희생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남존여비 사상은 인수대비가 1475년 소학(小學)과 열녀전(烈女傳)을 참고해서 왕실의 부녀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내훈(內訓)'으로 엮어 출간하면서 조선을 지배했다. 그 책의 <부부장>에는 "혹시 남편이 때리거나 꾸짖는 일이 있어도 당연히 받들어야 할 뿐 어찌 감히 말대답하거나 성을 낼 것인가?"라는 대목도 보인다. 자신의 아이를 낳아서 대를 이어 주고 평생 반려자로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게 할 얘기는 아닌 것 같다.

가족이라는 끊기 힘든 인연에서 시작된 정신병을 보면 명심보감에 나오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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