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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규 원장의 스마트한의학(118)] 앵커링-마음의 옹이

오래전에 한의사가 되기 위해 늦은 나이에 공부하고 있었을 때 먼 친척 벌되는 사돈 총각을 우연히 학원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반가워서 이런 저런 얘기 중에 지난해 점수를 물어보니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문과에서 그 점수로 한군데만 빼고 못갈 데가 없는데 왜 재수하느냐고 물어보니 꼭 서울대 법대를 가야 된다고 말했다. 왜 거기를 집착하냐고 물어보니 고등학교 ?? 누군가가 "너 같은 녀석은 죽었다 깨어 나도 거길 못간다"고 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오기로 공부에 매달렸다고 했다.

최근에 전립선암과 갑상선암을 수술하고 수술 전보다 몸이 더욱 불편해졌다고 하시면서 내원한 환자가 있었다. 수술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과 함께 집도한 의사 분들에게 극도의 적개심을 드러내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의사가 환자가 잘못되게 수술하려고 했겠습니까? 그 선생님도 최선을 다해서 수술 했을 겁니다"하고 진정시키고 나서야 비로소 진료에 임할 수 있었다.

살아가다 보면 무수히 많은 인연으로 맺어진 관계 속에서 즐거운 일도, 슬픈 일도, 화나는 일도 생기고 그 때문에 생채기도 받고, 사랑도 받고, 살아가는 힘도 얻곤 한다. 배가 오랫동안 항해를 하고 항구로 들어오면 바람에 배가 흔들리지 않도록 돛과 닻을 내린다. 돛은 돛대에 매달려 바람을 이용해서 항해하는 도구이고, 닻은 항구에 정박할 때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무거운 것을 뻘에 내려 고정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뽀빠이 팔뚝에 새긴 문신이나 해군사관학교 마크에도 닻을 볼 수 있다. 닻은 영어로 앵커(Anchor)다. 심리학에서 쓰이는 앵커링이란 말은 '잠재의식에 닻을 내린다'는 뜻이다. 모두(冒頭)에서 말한 두 가지 예는 모두 앵커링된 기억들이다.

수십 년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일을 겪고 살아가지만 몇 가지만 생생하게 기억하고 다른 모든 것들은 다 지워져 어슴프레한 것을 알 수 있다. 몇 가지 생생한 것이 곧 앵커링된 것이다. 앵커링된 것은 어떤 매개체로 인해서 잠재의식에서 의식으로 떠오르게 된다. 우리는 대개 모르고 지내다가 어떤 음악을 들으면 첫사랑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와 같이 어떤 특정한 냄새를 맡거나, 특정한 무언가를 보거나, 특정한 음악이나 음성을 들으면, 물밀듯이 가슴이 요동치면서 어떤 상황이 떠오르게 되는데 이것은 특정한 것들이 연결고리가 되어, 우리의 잠재의식에 깊이 뿌리박혀 있던 앵커링된 추억이나 기억들을 일깨워 의식세계로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모든 것들이 우리의 잠재의식을 만든다. 잠재의식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블랙박스 같은 것이다. 우리의 의식형태를 유빙(遊氷)의 예를 들어 설명하면 겉으로 나타나는 의식(意識)은 5% 남짓이고, 물속에 잠긴 95%가 잠재의식이다. 결국 잠재의식이 우리의 모든 삶을 지배하고 우리의 행동과 습관을 결정한다. 알러지의 많은 부분은 앵커링과 관련이 있다. 가령 상한 돼지고기를 먹고 발생한 식중독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으면 잠재의식은 우리를 보호하려고 돼지고기를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돼지고기를 먹는 순간 강력한 두드러기 같은 것으로 우리에게 죽을 수 있다고 경고해서 돼지고기를 못먹게 한다. 이것이 돼지고기 알러지다. 돼지고기 알러지는 심지어 된장국이나 김치찌개에 들어 있는 소량의 돼지고기에도 반응해서 금방 알아차릴 정도다.

알러지 치료는 알러지 유발물질인 알러젠(Allergen)을 최대한 멀리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알러젠과 관련하여 좋지 않은 기억이 앵커링된 것이 있는지 따져보아서 그런 일이 있으면 잠재의식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조정함으로써 치료할 수도 있다.

음식물 알러지는 대개 앵커링이 된 경우가 많아 한방심상치료로 좋아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망각은 대용량 두뇌를 가진 사람이 살아가는데 냉각장치로 꼭 필요한 기능이다. 이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정신병이 된다. 이때는 명상이나 참선 등으로 빨리빨리 잊어버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한약은 그 이후에 써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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