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전 전망대에서 저동항을 굽어보았다.
독도와 어우러진 해돋이 장면 ‘감동의 물결’

울릉도는 도둑․공해․뱀이 없고 향나무․바람․미인․물․돌이 많다는 3무5다(三無五多)의 오각형 화산섬으로 찾아갈 때마다 가슴 설레게 하는 마력이 있다. 온통 험준한 산악지대로 이루어져서 일평생 울릉도에서 살아온 토박이들도 미처 가보지 못한 오지가 숱하게 숨은 까닭이다. 그 가운데 울릉도의 깊은 속살을 음미할 수 있는 알짜배기 비경과 만나려면 내수전과 석포를 잇는 옛길을 산책하는 게 정답이다.

해뜨기 전에 내수전 일출전망대로 오르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러 택시를 탄다. 도동에서 내수전으로 가는 버스가 있지만 첫차를 타더라도 일출 시간 이전에 다다를 수 없는 까닭이다. 내수전 일출전망대 입구에서 다소 가파른 층계를 10분 남짓 오르면 해발 440미터의 전망대에 닿는다.

탁 트인 동해의 갓밝이가 길손을 반기더니 이윽고 바다를 뚫고 해가 솟아오른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해님 바로 오른쪽으로 작은 섬이 또렷하게 보이는 게 아닌가! 독도다. 수평선 위로 뾰족 솟은 독도의 의연한 자태가 신비롭다. 울릉도에서 87.4㎞ 떨어진 독도 옆으로 뜨는 해돋이를 마주할 수 있다니, 보통 행운이 아니다. 감동의 물결이 가슴속 깊숙이 일렁인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사방을 둘러본다. 왼쪽(북)으로는 대섬 죽도와 깍새섬 관음도, 섬목 해안이 펼쳐지고 오른쪽(남)으로는 저동항이 내려다보인다. 밤에 이곳에 오르면 저 유명한 저동 어화(漁火)도 굽어볼 수 있다. 그래서 내수전 일출전망대로 오르는 산길에는 조명 시설도 갖추었다.

내수전-석포 옛길 단풍은 11월 중순 이후 절정을 이룬다.
늦가을 단풍이 매혹적인 호젓한 오솔길

전망대 주차장으로 내려와 석포로 가는 옛길로 들어선다. 대섬과 빽빽한 원시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한 폭의 동양화를 음미하다가 고즈넉한 숲길로 빨려 들어가면 몇 해 묵은 낙엽들이 수북수북 쌓여 있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오솔길을 거니노라면 서부개척시대를 연상케 하는 외딴집이 아슬아슬하게 산비탈에 누워 있기도 하고, 우거진 숲 사이로 푸른 바다가 언뜻언뜻 비치기도 하고,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실개울 위로 얼기설기 엮인 채 걸려 있는 나무다리를 건너기도 하는 등, 가슴속 깊이 아련한 옛 정취가 아로새겨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거닐고 싶은 호젓한 산책길 가운데 하나로 활활 타오르는 단풍도 일품이다. 이곳 단풍은 매우 더디게 물든다. 성인봉 단풍이 10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 나리분지 단풍이 11월 초순 무렵 절정을 이루는 데 비해, 이곳은 11월초에 단풍이 물들기 시작해 11월 중순이 지나야 절정을 이루며 12월초까지도 가을빛을 이어간다. 산자락이 동쪽을 향하고 있는 까닭이다.

내수전 전망대 어귀에서 완만한 내리막을 30분 남짓 헤치면 맑은 계류가 흐르는 정매화골 쉼터와 만난다. 오래 전 정매화 씨의 외딴집이 있었다고 해서 정매화골이라고 일컬으며, 1962년부터 1981년까지 이효영 부부가 살면서 폭우와 폭설로 조난당한 300여 명의 인명을 구조한 곳이기도 하다.

어화․해돋이․달맞이․독도, 그 모두를 품은 정들포

정매화골 쉼터에서 완만한 오르막을 팔구 분 헤치면 와달리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진다. 지금은 와달리에서 일주도로 공사를 하기 때문에 출입이 통제되고 있지만 몇 해 전에 찾았을 때는 내려갈 수 있었다. 그때 와달리로 가는 길은 처음에는 완만한 오솔길이다가 이내 급경사 내리막길로 바뀌었다. 산비탈에 걸린 밧줄을 잡고 엉금엉금 기어 내려가야 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바닷가 오지 마을이었던 와달리는 이미 빈터로 변해 잡초만 무성하고 새싹들이 꿈을 키웠던 와달분교도 12년 역사를 뒤로 한 채 1981년 문을 닫았다. 앞으로는 망망대해, 뒤로는 깎아지른 절벽이니 애당초 사람 살기는 힘든 곳이었다. 하지만 도로가 개통되면 와달리는 활기찬 마을로 변모할 터이니 상전벽해란 이런 경우에 하는 말이리라.

와달리 갈림길에서 북쪽으로 30분쯤 가면 북면 경계 표지판이 보이고 완만했던 오르막은 평탄한 내리막으로 바뀐다. 북면 경계로부터 30분 남짓 걸으면 시멘트 길과 만나고 다시 20분쯤 가면 석포마을 쉼터와 안용복기념관에 닿는다. 석포는 본디 정들포 또는 정들깨라고 불렸다. 그러다 일제 때 일본인들이 돌이 많다면서 제멋대로 석포라는 한자 지명으로 바꾸었다. 머물다 보면 정들어 떠나기 싫어진다는 뜻으로 정들포 또는 정들깨였으니, 이 얼마나 정감 넘치던 이름인가. 이렇듯 아름다운 우리말 지명은 일제 때 거의 다 사라지고 이제껏 제 이름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니….

석포마을 쉼터는 전망이 천하일품인 명당이다. 대섬(죽도) 너머 망망대해 저 앞으로는 독도가 보인다. 또한 해돋이와 달맞이, 오징어잡이 배의 집어등이 앞바다를 환히 밝히는 어화도 만나볼 수 있다. 한마디로 천혜의 독도 전망대요, 해돋이 전망대요, 보름달맞이 전망대요, 어화 전망대다.

여행 메모

# 찾아가는 길

포항, 묵호항, 강릉항에서 울릉도행 정기 여객선이 운항한다.

울릉도에는 공영(군내)버스, 택시, 렌터카 등의 교통수단이 있다. 비싼 운임 들여 차를 싣고 들어오는 것보다는 이들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게 경제적이고 편리하다.

# 맛있는 집

울릉도의 대표적인 별미로는 홍합밥, 따개비밥, 해물밥, 따개비칼국수, 약소불고기, 산채비빔밥, 오징어물회와 꽁치물회 등이 꼽힌다. 필자는 현지 주민의 추천으로 도동 돌섬식당(054-791-9052)에서 해물밥을 맛보았다. 청정 해역의 싱싱한 홍합과 갯바위에 붙어 살아가는 따개비를 따서 갖은 나물과 양념을 넣어 지은 별식으로 담백하고 고소하며 영양가도 높다.


독도 옆으로 뜨는 내수전 일출전망대에서의 해돋이.
내수전-석포 옛길 아래로 죽도가 보인다.
내수전-석포 옛길 도중에 펼쳐진 고비 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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