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항재의 침엽수림이 빚은 설경이 눈부시다.
금겨울 설경이 눈부신 백두대간 명산

대봉과 태백산 사이의 백두대간에 우뚝 솟은 함백산은 강원도 태백시와 정선군 고한읍에 걸쳐 장엄한 산세를 뻗어 내리고 있다. 해발 1,573미터의 함백산은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계방산에 이어 우리나라(남녘 땅)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고봉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근 태백산의 명성에 가려 일반인들에게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산악인들에게는 뜨거운 사랑을 받는 명산이다.

함백산은 여느 명산에 견주어보아도 뒤질 것이 없다. 맑은 날이면 백두대간 일원의 첩첩산중이 한눈에 들어와 장쾌한 조망을 만끽할 수 있고, 안개나 운해가 드리우면 그 나름의 신비로운 분위기에 도취할 수 있는, 매력 만점의 명산이다.

함백산은 철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개성미 짙은 풍광도 매혹적이다. 초여름의 분홍빛 철쭉꽃과 은은한 가을 단풍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눈부신 겨울 설경이 첫손 꼽히는 절경이다. 상고대(수목에 내린 서리가 얼어붙어 눈처럼 보이는 현상)와 설화가 만발한 함백산의 겨울 풍경은 환상의 세계 그 자체다.

함백산의 진수를 제대로 맛보려면 싸리재(두문동재)-함백산-화방재를 잇는 백두대간 산행이 제격이다. 그러나 일반인들로서는 대여섯 시간 남짓 걸리는 등산이 만만치 않으며 특히 눈 쌓인 겨울이면 엄두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힘겨운 길이다. 함백산만 간단히 오르려면 만항재를 기점으로 잡으면 된다.

만항재 표지석 뒤로 함백산이 보인다.
국내 포장도로 중에 가장 높은 고개인 만항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포장도로는 어디일까? 각종 매스컴이나 관광안내 책자 등을 통해 지리산 정령치라고 알려지기도 했으나 천만의 말씀이다. 정령치는 해발 1,172미터에 불과하다. 강원도 태백과 고한을 잇는 싸리재의 해발고도는 1,268미터에 이른다. 그러나 이것도 최고 높이는 아니다. 영예의 주인공은 바로 함백산 남서쪽 능선의 만항재다. 태백시와 정선군 고한읍, 영월군 상동읍의 3개 시군이 경계를 이루는 만항재는 해발 1,330미터나 된다.

조선 초기,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소원을 빌었다고 해서 망향재라고 불리다가 훗날 만항(晩項)으로 바뀌었다는 이 고개는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들꽃들이 피고 지며 특히 한여름이면 야생화축제로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이지만 겨울철에는 상대적으로 인적이 드물다. 그러나 한겨울에도 감자전, 메밀전, 도토리묵, 어묵, 동동주 등을 내는 쉼터가 문을 열어 몸을 녹이며 시장기를 달래기에 좋다.

사실 만항재까지만 올라와도 눈부신 설경을 감상하기에 충분하다. 푹신푹신한 눈밭을 거닐며 전나무를 비롯한 침엽수들에 피어난 설화와 상고대를 마주하노라면, 동화 속의 눈꽃나라로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져들고 새하얀 마법의 숲에 갇혀버린 듯한 환상에 젖어들 수 있다. 그러나 만항재와 함백산과의 고도차가 불과 24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으므로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함백산에 오를 수 있다.

국내 5대 적멸보궁 간직한 신라 고찰 정암사

국내 5대 적멸보궁 가운데 하나인 정암사 적멸보궁.
만항재 정상에서 고한 쪽으로 350미터쯤 내려오면 고갯길이 왼쪽으로 급히 도는 지점 오른쪽으로 시멘트길이 드리운다. 이 길로 1.5㎞쯤 오르면 삼거리와 만나는데, 오른쪽 길은 대한체육회 선수촌 태백분촌으로 이어지고 왼쪽 길로 2.3㎞쯤 더 오르면 함백산에 다다른다. 함백산 정상 가까이까지 좁다란 시멘트 찻길이 굽이굽이 돌아 오르지만 겨울에는 눈이 두텁게 쌓여 있어 차가 다닐 수 없다.

만항재에서 함백산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1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겨울에는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쳐야 하므로 2시간 가까이 걸린다. 겨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르는 도중에 백두대간 일대의 산줄기들이 힘차게 뻗어 내린 장관에 넋을 잃어 시간은 지체되게 마련이다. 굳이 서두를 것 없이 백두대간의 강인한 생명력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쉬엄쉬엄 걸어 오른다.

함백산 북서쪽 기슭, 만항재에서 고한 쪽으로 5.6㎞ 지점에는 신라 고승 자장율사가 645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창건한 정암사가 파묻혀 있다. 석가모니의 진골사리를 보관한 적멸보궁, 마노석으로 만든 높이 9미터의 7층모전석탑인 수마노탑(보물 410호), 자장율사가 꽂은 지팡이가 자라 주목이 되었다는 전설이 어린 주장자(선장단) 등을 간직한 유서 깊은 고찰이다. 더욱이 맑고 찬 계곡에는 냉수성 어류인 열목어가 서식하고 있어 아늑한 산사의 정취가 한결 돋보인다. 이곳은 경북 봉화군 석포면의 백천계곡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열목어 서식의 남방한계선이라는 중요성 때문에 천연기념물 73호로 지정되었다.

# 찾아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제천 나들목-38번 국도-사북-고한-상갈래 교차로-414번 지방도(함백산로)-정암사를 거쳐 만항재로 온다. 영월-태백간 31번 국도를 따르다가 화방재(어평휴게소)에서 414번 지방도를 이용하여 만항재로 오르는 길도 있지만 겨울철에는 제설작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차가 다니기 어렵다.

백두대간에 솟은 함백산은 국내(남한)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고봉이다.
대중교통은 고한에서 정암사를 거쳐 만항마을로 가는 버스를 탄 다음, 40분쯤 걸어 만항재로 오른다.

# 맛있는 집

만항재 북쪽 자락의 해발 1,100미터 고지에 자리한 만항마을에는 닭과 오리를 이용한 요리를 내는 집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 만항할매닭집(033-591-3136)이 유명하다. 한약재와 생황기를 넣은 황기닭백숙, 옻닭, 찜닭, 닭볶음탕, 닭똥집볶음 등 다양한 닭요리를 비롯해 생약재와 녹두를 넣은 오리백숙, 옻과 녹두를 넣은 옻오리 등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인근 밥상머리(033-591-2030)는 닭과 오리 요리 외에 가마솥곤드레밥, 감자떡과 감자전병 등으로도 이름나 있다.

본 기사는 <주간한국>(www.hankooki.com) 제255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정암사 위쪽 언덕에 수마노탑이 우뚝 서 있다.

글·사진=신성순(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