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디스크 돌출이 척수손상 초래하기도

40대 남자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키가 매우 큰 게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다른 환자들과 다르게 얼굴표정이 환하다. 정형외과 전문의 입장에서 볼 때, 그 환자는 별로 아파 보이지가 않았다는 거다. 의자에 앉자마자 그가 입을 열었다. “몇 달 전부터 다리가 아프네요. 걸을 땐 다리에 힘이 없어지는 느낌이랄까요. 그러더니 얼마 전부터는 가슴 아래쪽부터 발까지 감각이 예전 같지가 않네요. 뭔가 좀 이상해서 병원에 왔네요.” 그가 말을 이어나갔다. “원래 허리 디스크가 있었어요. 치료를 받긴 했는데 별로 차도가 없고 오히려 심해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말을 마친 그 남자의 뉘앙스로 볼 때 그는 허리디스크에 대해 재차 확인하려고 병원을 찾은 듯 보였다. 허리디스크를 앓아왔기 때문에 ‘허리디스크를 좀 더 잘 보는 병원이겠거니….’라는 생각을 품고 병원에 온 듯 했다. 이미 병명과 치료법도 다 아는 마당에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분위기가 엿보였다. 그 환자의 표정이 밝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허리 디스크인데 왜 가슴 밑으로 감각이 없어지고, 이전과 달리 다리 힘이 없어지면서 휘청거리는 걸까? 도대체 이건 뭘까? 환자의 밝은 표정과 달리 필자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척추 속의 신경은 크게 척수(spinal cord)와 척추신경(spinal nerve) 2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척수(spinal cord)는 척추뼈 안에 위치하며 뇌와 같은 중추신경의 일부분으로 뇌와 말초신경의 중간다리역할을 한다. 척수는 뇌와 맞닿아 있으며 요추 1~2번 높이까지 내려와 있다. 반면에 척추신경(spinal nerve)은 척수(spinal cord)에서 나뭇가지처럼 뻗어나와서 팔, 가슴, 다리까지 분포하는 말초신경으로 총 31쌍이 있다.

보통 디스크나 협착증에서 말하는 신경은 척추신경(spinal nerve)이다. 허리디스크나 협착증의 경우에는 다리로 가는 척수신경이 자극 받아서 다리가 당기면서 아프고, 목 디스크의 경우에는 팔로 가는 척추신경이 눌려서 팔이 저리고 아프게 된다. 그런데 척수(spinal cord)가 심하게 압박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척수손상이 발생하면 손상부위 이하의 운동신경 및 감각신경 등의 마비가 발생하게 된다. 척수손상의 가장 큰 원인은 교통사고로 30~50% 정도다. 교통사고로 척추가 다쳐서 하지마비가 왔다면 척추손상이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정형외과 의사라면 대개 짐작하겠지만, 이 남자 환자는 경추부위의 척수손상이었다. 검사결과 제 6~7 경추 사이에 디스크가 가운데로 심하게 튀어나와 척수(spinal cord)손상이 발생한 경우. 이 상태를 경추척수증 (cervical myelopathy)이라고 한다. 이 환자는 심한 디스크가 원인이 되어 척추의 압박이 진행된 경우에 해당된다. 다른 경우로는 경추의 후종인대가 뼈처럼 딱딱해지는 후종인대골화증이 원인이 되어 경추척수증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환자에게 경추 인공디스크 치환술을 시행했다. 때에 따라서는 유합술을 시행하기도 하지만, 급성 연성 추간판 탈출증으로 인한 경추척수증은 디스크를 제거하고 인공디스크를 삽입해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

수술 후 3일이 지나자 이 환자는 하지 감각이 많이 회복되었다. 걷는 것도 많이 좋아져 걸음걸이에서 이상이 느껴지지 않는 정도가 되었다. 퇴원 후에도 당연히 처음 병원을 찾아왔을 때처럼 밝고 환한 표정을 유지하며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좋은 인상만큼이나 치료효과도 좋았던 기억에 남는 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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