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여유에 화려함·인간미 더해져진주비빔밥, 육전, 냉면 등 대표적… 비빔밥 특징은 정성과 솜씨의 나물'진주음식만드는부엌 하모' '소문'… 전통 진주비빔밥 만날 수 있어'진주청국장' 청국장, 일품요리 훌륭

‘소문’ 진주비빔밥
진주, 진주음식은 저평가되어 있다. '저평가'라기 보다, 잊고 있다는 표현이 오히려 정확하다. 진주 음식을 말하자면 '진주'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진주는 조선시대 '삼남의 중심' '삼남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조선의 가장 큰 도시는 한양(한성)이다. 수도다. 한양 이외에 북에는 평양이 있고 남에는 진주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경상도를 '좌도'와 '우도'로 나누었다. 행정 및 군사 상의 편제다. 잠깐씩 합치기도 했지만 조선 초기에 경상도를 좌, 우로 나눈 다음 이 제도는 조선시대 내내 지켜진다. 좌, 우는 한양에서 남쪽을 바라볼 때 낙동강을 중심으로 나눈 것이다. 진주는 경상우도(慶尙右道)의 중심지 중 하나다. 경상우도에는 성주, 선산 등이 포함되지만 범 진주권인 합천, 함양, 의령, 남해, 거창, 사천, 하동, 고성, 창원 등도 포함된다. 경상도를 '남, 북'으로 가른 것은 갑오경장 직후인 고종 33년(1896년)이다. 불과 120년 전의 일이다.

경상 좌, 우도는 지리, 행정, 군사적으로도 나누지만 한편으로는 학풍(學風)으로도 나눈다. 안동과 경주 등을 중심으로 한 경상좌도는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었다면 경상우도의 진주권은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학풍을 이었다.

조선은 성리학과 경국대전(經國大典)이 다스린 나라다. 유학자는 유학, 성리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나라의 근간이다. 이들은 성리학을 바탕으로 생활한다. 관혼상제(冠婚喪祭)는 평생의 주요한 일이고 음식은 주요한 도구다. 음식은 성리학을 공부한 유학자, 반가(班家)를 중심으로 유지, 발전한다.

남명 조식을 이야기하는 것은 조선시대 진주권이 남명 조식과 남명학파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남명학파의 사람들이 많이 살았고 한편으로 진주가 대도시였기 때문이다. 대도시에는 사람이 모이고 저자(시장)가 생긴다. 남명학파의 유학자들이 살았던 진주권의 중심, 진주에는 당연히 음식이 발전했다. 오늘날도 남아 있는 '진주음식'은 바로 이런 조선시대 반가의 음식, 관청과 저자를 중심으로 발전한 음식의 잔영이다.

‘소문’ 전유어
갑오경장 이후 경상도가 남, 북으로 나뉘고 1920년대에 도청소재지는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긴다. 진주는 서서히 쇠락하기 시작한다. 부산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하고 음식도 발전한다. 한국전쟁 때 부산은 대도시가 된다. 항구도시인 부산은 내륙과 바다의 산물을 모두 받아들인다. 일본과 미국 등의 문물과 음식도 받아들인다. 우리가 '삼남에서 가장 장대했던 도시 진주'를 잊어버리기 시작한 시기다. 그러나 오래된 진주의 전통적인 음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안동, 경주 등의 경상좌도는 벼슬살이에 나선 유학자들이 많았다. 이에 비해서 진주는 은거하는 선비들이 많았던 곳이다. 퇴계학파의 제자들은 대부분 벼슬살이에 나갔거나 나가기를 원했다. 남명학파의 유학자들은 고향 땅에서 은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진주권을 두고 '한유공자(閒遊公子)들이 사는 곳'이라고 표현한 이유다. 좋은 정자를 짓고 유유자적하며 한 세상 살아가는 이들이 많았다. 번거롭고 당파 싸움이 치열한 중앙의 정계를 등지고 그들은 그들만의 삶을 살았다. 질박하면서도 여유가 있고 어느 정도의 사치는 인정하는 삶이었고 음식이었다. 음식은 여유가 있고 변형이 가능했다. 벼슬에 나갔던 이들이 전형적이고 틀에 매인 '성리학적 기준을 갖춘 음식'을 구했다면 진주권의 음식은 얼마쯤의 사치와 화려함도 가능한 여유로운 음식이었다. 인간의 냄새가 나는 음식이었을 것이다.

진주음식으로는 진주비빔밥, , 진주냉면 등이 남아 있다. 진주비빔밥은 지금부터라도 확실한 모양새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진주비빔밥을 '육회 고명의 특이함'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더러는 화려한 모양새를 진주비빔밥의 특질로 손꼽는다. 그렇지는 않다. 진주비빔밥의 특질은 을 만지는 정성과 솜씨에서 찾아야 한다. 진주헛제사밥과 진주비빔밥을 혼동하기도 하고 고명의 화려함과 보탕국 등으로 진주비빔밥을 설명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의 잡지 <별건곤(別乾坤)>의 '팔도명식물예찬(八道名食物禮讚)'이란 기사에서는 진주비빔밥을 "서울비빔밥이 큰 고깃덩어리와 긴 콩 발을 넣은 것과 달리 하얀 쌀밥 위에 파란 채소와 고사리, 숙주 같은 각색 을 넣고 쇠고기를 잘게 썰어 끓인 장국을 부어 비비기 좋게 하고 그 위에 황청포, 육회, 고추장을 얹어서 상에 낸다"고 설명했다. 오늘날의 황포묵을 '황청포'라고 표현한 것도 재미있다. 녹두로 만든 청포묵을 치자로 물들인 것이다.

실제 오래 전의 진주비빔밥을 기억하는 이들은 "을 삶은 후 뽀얀 물기가 나오도록 만진 후 참기름, 조선간장을 조금 떨어뜨린 후 꼭꼭 주물러서 낸다"고 한다. 조선간장으로 간을 한 을 정성스럽게 내는 것이 바로 진주비빔밥의 특질인 셈이다.

’진주청국장’ 반찬
예전 진주비빔밥을 재현한 것은 아니지만 서울 강남의 '진주음식만드는부엌 하모'에서 진주비빔밥과 을 만날 수 있다. 심하게 왜곡된 '당면과 조미료 투성이의 짝퉁 잡채' 대신 제대로 된 숙채(熟菜) 모둠 '잡채(雜菜)'도 만날 수 있다. 이름은 '조선잡채'다.

광화문 '소문'에서도 진주비빔밥을 만날 수 있다. 비빔밥과 더불어 대구로 만든 전유어가 깔끔하고 권할 만하다.

양재역사거리 부근의 '진주청국장'은 몇몇 반찬에서 반가의 음식 냄새를 느낄 수 있으나 진주음식이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청국장이나 몇몇 일품요리는 아주 좋다.

본 기자는 <주간한국>(www.hankooki.com) 제256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진주청국장’ 청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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