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만이 능사 아냐… 비수술 치료엔 적당한 '시간' 필요

빨리 결과를 알고 싶어 마음 졸여본 사람들은 영화 ‘인터스텔라’같은 시공간의 초월에 대해 상상해봤을 것이다. 2015년 새해가 되었어도 영화 ‘인터스텔라’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과학적 지식, 그 중에서도 물리학의 상대성이론까지 등장하는 이 영화는 정형외과 전문의인 필자의 경험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왠지 친숙한 느낌을 준다.

솔직히, 정형외과 전문의인 필자도 영화 내용처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었다고 고백해야만 될 것 같다. 환자를 안심시키고 소통을 더 잘하기 위해서라면 의사에게 몇 번 쯤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능력이 주어져도 되지 않을까? 영화를 보고 나서 문득 필자의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이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내용은 영화가 아니라 필자가 진료실에서 경험한 실화, 즉 논픽션이다.

30대 초반의 남자환자. 낯이 익다. 웃고 있다. 맞다. 3개월 전에 허리디스크 때문에 내원했던 환자다. 디스크가 터져 있었고, 심하게 신경을 누르고 있었다. 때문에 한쪽 다리에 심한 통증이 발생한 환자. MRI 소견으로는 터진 디스크가 신경을 심하게 압박하고 있던 상황. 터진 디스크의 크기가 크고 신경압박이 심했지만 디스크의 양상으로 볼 땐 수술은 필요 없다는 판단이 섰다. 비수술치료를 하면 이내 좋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 환자, 지인이 대학병원에 있으니 그분과 상의하겠노라고 MRI를 복사한 뒤 돌아갔다. 그리고 그 이튿날. 그 환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다소 흥분한 목소리였다. “아니, 제가 대학병원 교수님한테 갔더니만 수술을 바로 하라고 하네요. 지금 바로 수술하지 않으면 다리에 마비가 와서 못 움직일 수도 있다고 그래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당연히 흥분할 만 했다. 대학병원 교수님은 그냥 두면 마비가 올 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하는데, 필자는 수술을 바로 하지 않고 비수술 주사치료부터 하자니까 필자가 못미더웠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전후사정과 당시 상황을 종합하면 양상은 달라진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환자를 위하는 입장에서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 환자는 당시 디스크가 터져서 흘러나왔고 MRI소견으로 그 양상이 딱딱한 양상이 아니었다.(이런 땐 MRI소견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경우엔 대부분 디스크를 제거하지 않고도 치료가 가능하다. 다리의 통증은 주사치료로 완화시킬 수 있으며, 터진 디스크는 시간이 해결해 준다. 그렇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다름 아닌 시간이다. 다시 말해 시간만 지나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2~3개월 후엔 낫는다는 거다. 터진 디스크는 조금씩 흡수되어 쪼그라들고, 신경의 압박은 해소된다. 넉넉잡아 3개월이란 시간만 지나면 낫는다는 뜻. 그 3개월의 시간이 의사인 필자와 그 환자 사이에 장벽 아닌 장벽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20분이 넘는 전화통화 끝에 그 환자는 필자의 설명에 수긍하고 환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곧장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와 비수술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필자는 퇴원하는 그 환자에게 치료 3개월 후에 MRI 촬영을 해서 디스크 크기가 줄어들었는지 꼭 확인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일은 시간에게 맡겨야 하는 게 우주 삼라만상의 법칙.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그 환자와 공유하고 싶었다.

드디어 시간이 흐르고 흘러 3개월 뒤. 디스크 크기가 줄었는지 확인해보자던 바로 그 날이 왔다. 조마조마하던 석 달의 시간이 흘렀다.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 필자는 긴장했다. 그 환자는 말할 것도 없는 상황. MRI 촬영결과, 터진 디스크의 크기가 확연하게 줄어들어 있었다. 신경의 압박도 거의 없어진 상태.

진료실 모니터의 MRI촬영화면을 바라보던 필자와 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려 마주보며 웃었다. 환자의 안도하는 표정과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웃음에서 정형외과 전문의로서의 보람이 느껴졌다. 진료실을 씩씩하게 걸어 나가는 환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온 것처럼, 3개월이란 시간을 빨리 흘러가게 할 순 없는 걸까? ”

필자는 이렇게 가끔씩 영화 속 현실을 그리워하며 산다. 환자의 고통이 하루 빨리 사라지기를 고대하며 사는 게 숙명인 의사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달려라병원 이성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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