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825호로 지정된 숭림사 보광전.
보광전 안의 화려한 닫집이 눈길 끌어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과 웅포면의 경계에 함라산이 솟아 있다. 해발 240.5미터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산줄기가 금강의 연안과 맞닿아 있고, 정상에 오르면 호남평야와 웅포가 굽어보이는 등 산세가 아기자기하다. 잘 정비되어 있는 등산로 주변에는 정자 등의 휴식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또한 산자락에는 약 24km에 이르는 함라산 둘레길이 드리워 있다.

함라산 둘레길의 중간지점인 함라산 북쪽 기슭에 금산사의 말사인 숭림사가 앉아 있다. 신라 경덕왕(재위 742∼765년) 때 진표율사가 창건하고, 1345년(고려 충목왕 1) 행여선사가 중건했다고 전해지는 고찰이다. 숭림사(崇林寺)라는 절 이름은 중국의 달마대사가 숭산(崇山) 소림사(小林寺)에서 9년간 벽을 바라보며 좌선한 고사(故事)를 기리는 뜻에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 후 임진왜란 때 보광전만을 남긴 채 불타버렸으며, 1697년(숙종 23)과 1819년(순조 19), 1892년(고종 29) 각각 전각을 중수했다. 1923년에는 주지 황성렬이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켜 보광전을 중수하고 나한전과 영원전 등을 새로 짓는 등 면모를 일신했다. 그러다가 1957년 고광만의 시주로 시왕전과 나한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보광전을 비롯하여 우화루·정혜원·영원전·나한전·요사채 등이 남아 있다. 이 중 보물 제825호로 지정된 보광전은 1345년(고려 충목왕 1)에 세우고 1819년(조선 순조 19)에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부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88호인 목조석가여래좌상을 모시고 있으며, 불상 뒤로는 후불탱화가 걸려 있다. 흔히 불상과 후불탱화만 보고 돌아서는 경우가 많은데 진짜 볼만한 것은 불상 위 천장에 걸린 닫집이다. 극락조와 용, 구름 등이 조각된 닫집이 눈부실 만큼 화려한 까닭이다.

사모지붕의 단칸 건물인 숭림사 범종각.
고려 충목왕의 왕비가 등창을 고친 사찰

숭림사 보광전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온다. 1345년 충목왕의 왕비는 몸에 난 등창으로 고생이 심했다.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여러 의원들이 병을 고치려 했으나, 등창은 갈수록 심해지고 왕비의 몸은 점점 야위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왕비는 관세음보살을 부르다가 잠이 들어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어느 사찰에 자신이 머무는 동안 병이 씻은 듯이 낫자, 잠에서 깨어난 왕비는 그 사찰의 모습과 산세를 일러주며 절을 찾게 하였다. 이윽고 찾아낸 절이 바로 지금의 숭림사였으며, 왕비는 이곳에서 관음보살에게 일주일간 기도를 드렸다.

마지막 기도를 드리던 날, 향긋한 향기에 취해 잠시 잠에 빠져든 왕비는 파랑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 자신의 몸에 난 등창을 핥아주는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깬 왕비가 몸이 날듯이 가벼워졌음을 느끼고 등창을 살펴보니 깨끗이 나은 것 아닌가. 병이 완치되어 궁궐로 돌아간 왕비는 그 이후 숭림사에 전답을 하사하고 왕실의 원찰로 삼아 관음기도의 도량으로 삼았다고 한다.

숭림사가 간직한 유물로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7호인 청동은입인동문향로(靑銅銀入忍冬紋香爐)가 소중하다. 몸체에는 2개의 사자머리 모양 손잡이와 3개의 다리가 달려 있으며 은으로 인동무늬와 모란무늬를 새겨 넣었다. 전체 높이 110㎝, 둘레 120㎝에 이르는 이 작품은 조선 초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함라마을 옛 담장

목조석가여래좌상 위로 화려한 닫집이 걸려 있다.
숭림사 인근, 함라산 둘레길 중 양반길이 시작되는 함라면 함열리에 소중한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2006년 6월 19일 등록문화재 제263호로 지정된 함라마을 옛 담장인 바로 그것이다. 이 마을은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이 1611년(광해군 3)에 귀양을 온 곳이기도 한데, 유배기간 동안 <성수시화>등 여러 작품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함라마을은 이른바 삼부잣집으로 불리는 조해영, 김안균, 이배원 가옥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만석꾼 삼부자는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곳간을 열고 아낌없이 베푼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인심은 함라……" 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 함라마을 옛 담장은 돌과 흙을 섞어 쌓은 토석담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토담, 돌담, 전돌로 쌓은 담 등 종류가 다양하다. 이중에서 차순덕 가옥의 경우에는 담장 양편에 거푸집을 대고 황토흙과 짚을 섞어 쌓은 전통적인 축조 방식이어서 보기 드문 사례로 꼽힌다. 담의 지붕은 시멘트 기와로 되어 있다.

함라마을 옛 담장은 시루떡처럼 한 줄 한 줄 쌓아올리는 평쌓기 방식으로 축조되었다. 또한 집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은데도 담장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불그스름한 빛을 띠는 담장 길을 걸으며 우리 민족의 미적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화유산을 살펴보노라면 조선 시대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 찾아가는 길

연무 나들목에서 천안논산(25번)고속도로를 벗어난 뒤에 동안로-산양4거리-강경로-중신교차로-익산대로-덕용교차로-함안로를 거쳐 금성교차로에 다다른다. 여기서 우회전하면 숭림사 입구, 직진하면 함라마을에 이른다.

숭림사로 들어가는 호젓한 길.
대중교통은 전국 각지에서 호남선 및 전라선 열차나 버스를 타고 익산으로 온 뒤에 숭림사 입구 및 함라마을로 가는 시내버스로 갈아탄다.

# 맛있는 집

숭림사 인근의 샘골가든(063-855-5238)은 새송이버섯을 듬뿍 넣은 오리주물럭으로 유명하고 그 옆에 있는 천혜우(063-858-6492)는 함라한우영농조합법인이 직접 운영하는 집으로 고급 한우로 승부한다. 맞은편의 함라산둘레길한우촌(063-856-7770)은 어린잎을 네다섯 가지 넣어 상큼한 육회비빔밥과 알맞게 배합한 양념으로 부드러운 맛을 내는 돼지갈비, 갈비탕 등으로 이름나 있다.


요사로 쓰이는 정혜원은 조선 후기 건물이다.
불그스름한 빛을 띠는 함라마을 담장길.
등록문화재 제263호로 지정된 함라마을 옛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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