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 즐기는 유일한 민족… 풍성한 밥상 이뤄

식재료 왕국 중국도 나물 일부만 섭취…유럽ㆍ미국은 거의 안 먹어

‘부일식당’ ‘마당넓은집’ ‘걸구쟁이’ ‘점봉산산나물’등 유명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1960년대 독일에 간 한국 이민자들은 산에 지천으로 있는 고사리를 보고 환호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딜 가더라도 고사리가 있으면 습관적으로 채취, 건조한다. 고사리는 지금도 아주 귀하고 비싼 산나물이다. 독일인들은 한국 사람들이 ‘산의 풀’을 먹는 걸 이상하게 생각했고, 한국인들은 ‘귀한 고사리를 먹지 않는 독일인들’이 이상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들도 마찬가지. 산나물이든 바닷가에서 쉽게 만나는 미역 등 해조류든 일단 손에 넣으면 말리고 반찬으로 만든다. 유럽이나 미국인들은 황당했을 것이다. 저런 풀을 먹다니? 들나물밖에 먹지 않았던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산나물에 대해서는 우리도 ‘깊은 오해’가 있다. 다른 민족들도 몇몇 산나물 정도는 일상적으로 먹는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웬만한 것은 모두 식재료로 삼는 중국인들도 산나물을 우리처럼 먹지는 않는다. “네발 달린 것 중 책상, 하늘을 나는 것 중 비행기를 빼고 다 먹는다”고 하지만 정작 바다와 산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중국인들도 해조류와 산나물은 널리 사용하지 않는다.

<한국일보> 기자였던 고 홍승면 씨(1927∼1983년)는 “일제강점기, 여러 민족이 살았던 만주, 간도 지방에서 한국인을 가려내는 것은 간단했다. 이른 봄 바구니를 끼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인이었다”고 적었다. 봄에 산나물을 채취하는 것은 한국인이 유일했다는 뜻이다. 중국인, 러시아인, 일본인 그리고 다른 민족들까지 산나물은 생경스럽다.

한국인들은 가난해서 산나물을 먹었고 그 습관 끝에 지금도 산나물을 먹는다고 믿는다. 얼마나 먹을 것이 없었으면 산에서 나는 풀, 나물도 모두 먹었을까, 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우리만 힘들게, 먹을 것이 없이 기근을 겪었을까? 중국, 일본을 비롯한 유럽도 모두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을 겪었다.

중세에는 유럽에도 대기근의 시대가 있었다. 유럽은 소빙하기의 기근을 우리보다 더 혹독하게 겪었다. 대기근은 13세기 중엽부터 18세기, 심지어 19세기까지도 계속되었다고 한다. 감자 농사를 망치면서 아일랜드 인들이 대거 미국으로 건너간 것도 소빙하기와 연관이 있고 유럽의 대기근, 전염병으로 인한 대참사도 소빙하기와 관련이 있다. 수백만 명이 기근, 전염병으로 죽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아일랜드 사람들은 ‘악마의 식물’로 알려졌던 감자를 먹으며 연명했고 결국 감자농사가 망하면서 목숨을 걸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향해야 했다.

이웃 일본도 인육을 먹었다는 참혹한 이야기를 남긴 텐메이[天明]대기근을 겪었다. 1782년부터 1792년 사이의 일이다. 일본은 텐메이대기근뿐만 아니라 몇 차례 기근을 통하여 역시 수백만이 굶어 죽었다. 중국은 더 참혹했다. 한반도도 마찬가지. 4차례의 기근 중 가장 참혹했던 경신대기근(庚辛大飢饉)은 1670∼1671년 사이다. 기록을 보면 그나마 우리는 일본, 중국이나 유럽보다는 기근의 시대를 잘 견딘 편이다.

먹을 것이 없어서 산나물을 채취했다면 우리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 유럽도 마찬가지로 산나물을 먹어야 한다. 유럽에서 ‘악마의 식물’이라고 믿었던 감자까지 먹었던 이들이 산에서 나오는 나물을 먹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일본의 경우, 인육 전설까지 남기면서 산나물을 피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정작 산에서 나물을 채취하고 또 상식(常食)하는 것은 우리밖에 없다. 외국인들에게 산에서 나오는 먹을거리는 버섯 정도다.

왜 한국인들이 산나물에 매달리는지 그 이유는 확실치 않다. 다만 한국인의 밥상은 산나물로 인하여 더욱더 풍성해졌다.

제철 산나물을 말리면 묵나물이 된다. 묵은 나물이다. 햇나물이 나오지 않는 계절에는 묵나물을 먹어야 한다. 묵나물은 묵나물 특유의 향이 있다. 물에 담가서 불린 다음 삶아낸 나물에 참기름, 간장, 된장, 소금, 볶은 참깨 등을 넣고 조물거리면 아주 맛있는 나물이 된다. 정월대보름의 ‘나물 파티’는 바로 이 묵나물들로 이루어진다. 들나물도 있고 몇몇 산나물도 눈에 띈다. 산나물, 들나물의 향취를 아는 이들은 오히려 한겨울 묵은 나물을 찾아 나선다.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친 묵나물들은 싱싱한 제철 나물과는 또 다른 맛을 전한다.

영동고속도로 진부 IC 부근의 ‘부일식당’은 오래된 산나물 전문점이다. 취, 곰취, 다래 순, 얼레지, 부지깽이 나물 등 10여 종류의 산나물을 내놓는다. 두부와 된장찌개도 좋다.

경기도 광주 곤지암의 ‘마당넓은집’은 국내 최고의 쇠고기 전문점이지만, 못지않게 산나물, 들나물과 더불어 장아찌도 좋은 집이다. 주인이 직접 선별한 산나물을 사용한다. 제철이 아니면 묵나물이나 장아찌로 내놓는다. 고기와 나물 모두 압권이다.

속리산 주차장 부근의 ‘경희식당’도 수준급이다. 봄철이면 홑잎나물이나 외꽃버섯 등 이제는 쉽게 보기 드문 나물도 만날 수 있다. 겨울 묵나물도 아주 좋고 더덕보푸라기는 압권이다.

경기도 여주의 ‘걸구쟁이’는 고기와 조미료가 없는 사찰음식전문점이다. 좋은 소금, 직접 만든 효소를 사용한다. 생나물, 묵나물이 모두 좋다.

서울 시내에서 산나물을 즐기려면 교대역 부근의 ‘점봉산산나물’을 권한다. 다양한 산나물을 큰 그릇에 넣고 비벼먹는 ‘산나물 비빔밥’이 아주 좋다. ‘점봉산’은 원래 산나물의 질과 생산량이 모두 좋았던 곳인데 이제 나물 생산량이 많이 줄었다.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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