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마틴스 성당.
보헤미안의 풍류가 서린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는 ‘원초적’ 동유럽의 향수가 담긴 곳이다.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의 한 가운데 놓여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생소하게 다가왔던 슬로바키아의 수도는 다소곳하게 여행자의 마음을 빼앗는다.

‘깊은 동유럽’의 도시와 조우하는 길은 제법 단출하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수드반호프역(남역)에서 브라티슬라바까지는 열차로 1시간 걸릴 뿐이다. 브라티슬라바 중앙역은 유럽의 젊은 배낭족들이 기타를 퉁기고 또 어느 곳인가 떠나기 위해 배낭을 메고 부산하게 자리를 뜬다. 수드반호프역에서 봤던 수많은 단체관광객을 이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도시의 관문인 미카엘스 탑

황제가 거처했던 브라티슬라바 성.
구시가지 여행은 미카엘스 탑을 중심으로 한나절이면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브라티슬라바의 도심은 다뉴브 강을 중심으로 나뉘는데 동유럽의 오래된 도시일수록 구시가, 신시가에 대한 경계선은 명확하다. 구시가지 안은 헝가리 통치 시절의 고풍스러운 건물과 유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14세기에 세워진 미카엘스 탑은 브라티슬라바의 관문이었으며 성위에서는 구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탑을 중심으로 서남쪽으로는 11명의 왕과 7명의 왕비를 기리는 성 마틴 성당과 슬로바키아 동전에 새겨진 브라티슬라바 성이 위치했다. 브라티슬라바 성은 과거 황제의 거처였으며 나폴레옹 전쟁 때 소실됐다가 2차대전 후에 복구 됐다. 지금은 슬로바키아의회와 시립박물관 건물로 사용되고 있어 슬로바키아의 역사, 문화, 예술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성 반대편에는 가장 오래된 교회인 성 프란시스칸스 교회와 구 시청사, 광장 등이 늘어섰다. 흐비쯔도슬라보브 광장 등 구도시의 골목들은 중세의 빛바랜 건물과 그 건물에 기대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옛 시청사가 있는 광장앞 주변은 노천바와 조각품들로 채색된다. 브라티슬라바의 명물인 소를 주제로 한 조각과 거리의 악사를 만날 수 있는 곳도 이곳이다.

성 프란시스칸 교회.

골목 노천바에 앉아 맥주를 주문하면 ‘필스너 우르켈’이 가득 담겨 나온다. 알싸한 맛이 강한 보헤미안 맥주는 구시가의 향취를 더욱 몽롱하게 만든다. 동유럽의 한적한 노천 카페에 앉아 늘씬한 슬라브 여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유적을 감상하는 것은 브라티슬라바 여행의 숨겨진 묘미이기도 하다. 음악가인 프란츠 리스츠 역시 15차례나 매력적인 이 도시를 찾았다고 한다.

헝가리 통치를 받던 천년 세월

고요한 도심의 단면 뒤에는 슬로바키아의 기구한 역사는 함께 공존한다. 슬로바키아는 1000년의 세월 동안 헝가리의 통치를 받았다. 체코와 결합해 체코슬로바키아를 세운 뒤에도 경제 발전은 대부분 체코 중심으로 이뤄졌고 전통 농업 국가였던 슬로바키아는 늘 뒷전이었다. 뒤늦은 개발은 89년 벨벳혁명 이후 재분리된 슬로바키아가 오히려 옛 흔적을 유지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브라티슬라바 거리의 악사.
몇 년간 한국에 불어 닥친 체코 프라하의 열풍에 비하면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는 고요하고 한가롭다. 현지인들 역시 휴가철이면 인근 시골 별장으로 여행을 떠나 도시는 따사로운 햇살과 여유로운 정취로만 채워진다.

브라티슬라바 외곽에서는 영어, 독일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 헝가리어, 체코어가 국어로 쓰이던 시절이 있었기에, 슬로바키아어를 제대로 쓸 수 없었던 이곳 사람들의 자국어에 대한 애착심은 대단한다. 그렇다고 여느 식당이나 모텔에서 언어 때문에 불편한 경우는 없다. 그림을 그려주면 그림으로 화답할 정도의 정성스런 모습을 보여준다. 유럽의 다른 관광지와 달리 때가 묻지 않고 친절한 게 바로 슬로바키아 여행의 또 다른 감동이기도 하다.

여행 메모

가는 길=오스트리아 비엔나를 경유하는게 가장 수월하다.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는 비엔나 수드반호프역에서는 평균 1시간 단위로 열차가 출발한다. 동유럽구간의 이동 때는 동유럽 유레일철도패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슬로바키아의 열차는 특급, 급행, 보통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출발 시각표에서 R마크가 있는 열차는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브라티슬라바에서 렌트카를 빌린 뒤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둘러볼수도 있다.

음식, 기타정보=슬로바키아 길거리 광장에서는 이곳 샌드위치인 '빠락'을 주문하면 된다. 전통 닭 수프인 '슬레빠치아' 역시 한국 사람들 입맛에 알맞다. 알칼리 맥주인 '필스너 우쿠엘'도 꼭 맛볼 것. 브라티슬라바의 작은 호텔들은 1박에 50유로 정도로 저렴한 편이다. 화폐는 유로가 통용된다.

브라티슬라바 구시가 거리.

구시가의 미카엘스 타워를 잇는 골목과 노천 바들.
도시의 관문인 미카엘스 타워.

글ㆍ사진=서영진(여행칼럼니스트) aular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