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돼지고기 널리 사용…이슬람은 금기고려ㆍ조선시대에도 돼지고기 이용 기록 나와한국 1970년대부터 삼겹살 우대 유별나'더두툼생고기' '성산왕갈비' '탐라돈' 등 명성
안동 장씨 할머니의 <음식디미방>에는 돼지고기 요리법이 나온다. '가제육(家豬肉)' '야제육(野豬肉)'이라고 표현했다. '저'가 멧돼지라면 '가제육'은 멧돼지 새끼를 집에서 길렀다는 뜻인지 아니면 지금처럼 집돼지, 사육돼지가 따로 있었다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어쨌든 야생과 집에서 기른 고기와 조리법도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음식디미방>에는 개고기(狗肉, 구육)에 관해서는 10여 종류의 요리법이 나온다. 돼지고기 요리법은 2∼3가지에 불과하다. 돼지보다는 개고기가 보편적인, 상식(常食)의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것은 돼지가 너무 맛있는데다 사막지대가 많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물을 구하기 힘들어서라는 주장도 있다. 맛있는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돈이 많거나 권력자들이다. 부유하고 힘센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찾으면 상대적으로 가난한 이들이 식량이 줄어든다. 그래서 종교상의 율법으로 돼지고기를 금했다는 게 문화인류학자들의 주장이다.
조선시대도 마찬가지. 돼지는 물을 많이 소비하는 동물이다. 피부에 물기가 있어야 하고 습한 곳을 즐긴다. 한반도 역시 건조한 기후 때문에 돼지 사육이 자유롭지 않았다. 더하여 돼지는 개, 소와는 달리 별도의 효용가치가 없다. 개는 집을 지키고 소는 논밭에서 일을 한다. 그러나 돼지는 오직 먹는 일만 한다. 굳이 돼지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18년(1418년) 8월1일(음력)의 기록이다. 제목은 '원단 보사제를 행하다'이다. "(전략)이것이 하늘(天)에 제사지내는 것이니, 그 예(禮)가 작지 않습니다. (중략) 돼지(豚)가 살찌지 않으니, 거의 하늘을 섬기는 뜻이 없습니다."
보사제(報祀祭)는 기우제(祈雨祭)를 지낸 뒤 비가 오면 비온 3일 안에 천신(天神)의 은혜에 감사드리던 제사다. 이때 수퇘지를 사용했다. 위 인용문은 돼지가 살찌지 않았으니 하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한다고 책망한다. 태종은 이 상소를 그대로 따르라고 명한다.
정조 때의 북학파 학자이자 관리였던 영재 유득공의 <서경잡절(西京雜絶>에도 "냉면과 찐 돼지고기(蒸豚, 熟肉, 수육) 값이 오르기 시작한다(冷麪蒸豚價始騰)"라는 표현이 나온다. 계절 상 돼지고기 값의 등락이 있었다는 뜻이다. 돼지고기가 일상적으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농촌의 현상은 아니고 도시(서경=평양)의 이야기다.
오늘날 돼지고기 소비, 삼겹살 우대는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유럽에서는 삼겹살 부위를 베이컨 혹은 육류 가공품 만드는데 사용한다. 가격은 낮다. 한국 삼겹살 가격이 유럽, 남미 등에 비하여 5배 높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가격이야 어떻든 우리나라 사람들은 삼겹살을 좋아한다. 국내 식당들의 돼지고기 값은 삼겹살, 항정살, 목살, 갈비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맛있는 돼지고기는 도축 후에도 적절한 손질이 필요하다. 도축장에서 피 빼기를 하고 사후경직을 풀어낸다. 업소에는 적정한 온도에 5∼10일 정도 '후 숙성'시킨다. 김치냉장고나 와인냉장고 등을 이용해 숙성된 맛을 얻어낸다.
서울 시내 몇몇 돼지고기 맛집을 소개한다. 상일동 ''는 고기 전문가가 운영하는 집이다. 목살의 두께가 4.5cm 정도다. 무척 두꺼워서 주인이 일일이 손질해주기도 한다. 좋은 돼지고기를 구해서 잘 숙성시킨 고기다. 생고기도 좋지만 양념돼지갈비도 수준급이다. 고기 손질에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목동 ''는 묵사발 등 곁들이는 음식들도 수준급이다. 시장 통의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짝퉁 희석식 소주'가 아니라 전통 방식의 증류 소주도 내놓는다. 고기도 수준급이다.
홍대 철길 입구의 ''은 젓갈로 유명해진 집이다. 원래 멸치젓갈을 사용하다가 최근 자리돔 젓갈로 바꿨다. 주인이 일일이 고기를 손질하여 내온다. 가격도 홍대임을 감안하면 싸다.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