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매산성 위로 황매산 정상이 솟아 있다.
마고할미·무학대사 전설이 어린 명산

힘이 장사인데다 새의 발톱처럼 긴 손톱을 가지고 있는 신선할머니로 알려진 마고(麻姑)할미가 살았다는 전설이 어려 있단다. 또는 정상부의 바위봉우리가 흡사 할미꽃을 닮아 할미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정상의 세 봉우리가 노란 매화꽃처럼 보여 황매산(黃梅山)으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황매의 황은 부(富)를, 매는 귀(貴)를 의미하므로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산이라고도 한다.

황매산은 효(孝)의 산이자 삼무(三無)의 산이기도 하다. 무학대사가 황매산에서 수도할 때 그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산을 오르내리던 어머니가 칡덩굴에 걸려 넘어지고, 땅가시에 긁혀 상처가 나고, 뱀이 출현해 놀라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이를 알게 된 무학대사는 황매산 산신령에게 지극정성으로 백일기도를 드렸다. 이후 황매산에서 칡덩굴과 땅가시, 뱀이 사라졌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까닭이다.

합천호를 굽어보며 경남 합천군 가회면과 대병면, 산청군 차황면에 걸쳐 있는 해발 1,108미터의 황매산은 주변 산들에 비해 유독 우뚝 솟구친 까닭에 첫눈에도 웅장하고 험준해 보인다. 특히 영암사 쪽에서 올려다본 기암절벽과 괴봉은 설악의 한 부분을 옮겨놓은 듯 위압감마저 준다. 그러나 막상 산에 오르면 의외로 부드럽고 매끈한 산행을 즐길 수 있으며, 정상 동남부 비탈면은 평전(平田)을 이루어 목장으로 이용될 정도다.

철따라 독특한 자연미를 자랑하는 황매산의 첫손 꼽히는 매력은 봄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철쭉 꽃밭이다. 황매평전의 둔내리목장 남쪽에서 영암사 방면으로 이어지는 능선 주위로 드넓은 철쭉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다.

황매평전에 세워진 영화 촬영용 봉화대.
철쭉과 억새가 어우러진 황매평전

황매산은 흔히 합천 쪽에서 오르고 철쭉제(올해는 5월 1일~17일)도 합천군에서 올리지만, 여기서는 산청 차황에서 올라 합천 영암사로 내려가는 길을 더듬는다. 차황면 소재지에서 두무재를 넘어 4킬로미터 남짓 가면 법평리 신촌마을에 다다른다. 이 마을에는 군내버스와 관광버스를 타고 온 탐방객들을 위해 택시들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소형차만 오갈 수 있는 가파른 고갯길을 2.5킬로미터 가량 오르면 황매산 영화주제공원 주차장에 닿는다. 도중에 도보 여행자들을 위한 지름길인 산길도 드리워 있다.

황매산 영화주제공원은 단적비연수, 천군, 태극기휘날리며 등의 영화와 주몽, 태왕사신기, 바람의나라 등의 드라마를 촬영한 곳으로 2001년 5월 일반에 공개되었다. 촬영 당시 사용했던 억새집과 통나무집 등 원시부족 가옥 30여 채와 풍차, 대장간, 은행나무 고목, 벽화 등이 남아 있다. 북과 칼, 활, 악기, 주인공 캐릭터 등 소품 1천여 점과 영화 장면을 담은 사진 100여 점도 전시되어 있다. 세월의 수레바퀴를 원시시대로 되돌린 듯한 느낌이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아쉽다.

영화주제공원에서 철쭉 군락을 헤쳐 30분쯤 오르면 수십만 평에 이르는 황매평전(해발 약 930미터)과 만난다. 황매산성과 봉화대, 쓰러진 움막의 너와지붕 등 영화 촬영용으로 세운 시설물과 황매산제단이 있는 황매평전은 5월초 무렵이면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능선 일원이 온통 철쭉꽃으로 뒤덮이고 억새도 어우러져 묘한 대조를 이룬다. 더욱이 시야가 시원스레 트여 있어 철쭉의 붉은 물결을 한눈에 굽어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꽃밭 사이로 연인들이 술래잡기를 하다가 두 손 꼭 잡고 사진 찍는 모습이 부럽다.

신령스런 기운 감도는 영암사 옛터

영화 촬영을 위해 만들어진 황매산성.
황매평전에서 50분 가량 오르면 황매산 정상이다. 지리산 천왕봉을 비롯해 경남 일원의 산악지대가 한눈에 든다. 북으로는 합천호가 드러누워 있다. 높은 산들로 에워싸인 호수는 깊은 골짜기 속으로 가지를 뻗치고 있다. 흡사 숲과 바위의 바다에 포위된 외로운 섬 같다.

황매평전으로 되돌아 내려온다. 황매평전에서 베틀봉-철쭉제단-모산재를 거쳐 영암사까지 두 시간 남짓 걸린다. 지금의 영암사는 별다른 특징이 없고 아담하지만 영암사 옛터(영암사지)를 둘러보면 예전에는 명성 높은 큰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유물로 미루어 통일신라 고찰로 보이는 이곳에는 금당터, 서금당터, 중문터 등의 건물 터와 삼층석탑(보물 480호), 쌍사자석등(보물 353호), 귀부(보물 489호) 등의 석조물이 남아 있다. 화강암을 네모반듯하게 잘라 켜켜이 쌓아올린 석축과 통돌을 깎아 만든 층층대가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석축 위에 올라앉은 쌍사자석등과 그 뒤로 솟구친 영암봉이 손잡고 펼치는 풍경이 절묘하다. 영암사 옛터에는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돈다.

여행 메모

# 찾아가는 길

산청 나들목에서 대전통영(35번)고속도로를 벗어난 뒤에 산청읍-59번 국도-차황면-황매산로-신촌마을을 거쳐 황매산 영화주제공원으로 온다.

베틀봉 아래로 철쭉 꽃밭이 펼쳐졌다.
대중교통은 산청에서 상법 방면 군내버스를 타고 신촌마을에서 내려 40분 남짓 걸으면 황매산 영화주제공원이다. 영암사 입구는 합천 군내버스가 다닌다.

# 맛있는 집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경호강변의 늘비물고기마을에는 민물고기 전문점들이 모여 있다. 민물매운탕과 피리(피라미의 사투리) 조림이 별미다. 고추장으로 양념한 피리조림은 매콤하면서 달콤해 입맛을 돋우고 부드러운 살코기와 뼈째 아작아작 씹는 맛도 일품이다. 피라미 밑에 깔린 무에도 양념이 배어 남기기 아깝다. 여러 집 가운데 생초식당(055-973-5757)이 유명하지만 거의 비슷비슷한 맛일 것이다.


영암사 옛터의 삼층석탑과 쌍사자석등.

글ㆍ사진=신성순(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