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리안 성당의 야경.
동유럽의 오래된 도시일수록 구시가, 신시가에 대한 구분은 명확하다. 폴란드 제2의 도시인 쿠라쿠프 역시 예외는 아니다. 폴란드의 수도가 바르샤바로 옮겨지기 전까지 쿠라쿠프는 500여년간 폴란드 정치,문화,경제의 중심지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구시가 일대는 중세의 고성과 교회들이 2차 대전의 풍파를 벗어나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예전 왕들이 대관식을 갖기 위해 걸었던 플로리안스카 거리를 스쳐 지나면 시장광장이 나타난다. 시장광장 중앙에는 폴란드의 유명한 낭만시인 아담 미츠키 에비츠의 동상이 자리잡았고 그 앞은 현란한 댄스를 선보이는 B-보이들의 아지트다.

동상 뒤편의 직물회관 수키엔니체에서는 침대보며 식탁 커버를 판매하며, 직물회관을 벗어나면 이곳 구시가 시장광장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어대는 분주한 광경이 이어진다. 이렇듯 쿠라쿠프 구시가 안에는 낭만과 춤, 현실과 허구가 공존한다. 쿠라쿠프에 첫인상에 친근함을 느끼는 데에는 이런 모습들이 한 몫을 한다.

500년간 폴란드 문화의 1번지

시장 광장에서 그냥 스쳐 지날 수 없는 곳은 성 마리안 성당이다. 1220년 건축된 르네상스 양식의 성당 앞에서는 매시간 탑 꼭대기에 나팔수가 직접 나와 나팔을 부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나팔 부는 시간만 되면 사람들이 빼곡히 성당주변으로 몰려든다. 사실 유럽의 여러 도시들이 성당, 시청사 시계탑 세리모니를 지니고 있지만 직접 사람이 나와 나팔을 부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이 성당 안에는 폴란드 최고의 예술품으로 칭송받는 제단이 자리잡고 있는데 조각가 파이트 슈토스가 무려 12년에 걸쳐 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시가 광장.
바로크 양식의 구시청사탑이나 교황 바오로 2세가 졸업한 야기엘론스키 대학이 모두 인접해 있어 구시가만 이리저리 둘러봐도 꽤 알찬 구경이 된다.

이곳에서 케밥집과 노천바들이 늘어서 있는 글고츠카 거리를 지나치면 바벨성이 나타난다. 비스와 강변의 언덕위에 위치한 바벨성은 10세기에 최초로 성채가 완성됐으며 폴란드 국왕들의 거처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폴란드의 수도가 17세기 바르샤바로 옮겨진 뒤에도 대관식만은 이곳에서 거행됐다. 이곳 대성당은 역시 작고 소박하지만 예술미가 뛰어난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이 된 골목

바벨성을 나와 크라코브스카 거리로 향하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다룬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이 된 골목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예전 유대인들을 위한 벼룩시장이 아직도 들어서고 있으며 영화 촬영지를 둘러보는 투어도 인기를 끌고 있다.

많은 이방인들이 쿠라쿠프에 연정을 느끼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소금광산과 이 두 명소가 쿠라쿠프로의 발길을 유혹하는 매개다. 이곳 소금광산은 꼭 둘러볼 만한 가치가 있다. 광산의 길이는 총 300km나 되고 역사도 700년이나 된 광산이다. 중세시대부터 지금까지 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적으로 지정돼 있다. 암염으로 조각된 여러 조각들이 있는 킹카 성당은 소금광산 여행의 백미. 동굴 안에 호수도 있고 교회도 자리잡고 있다.

소금광산 암염조각.
쿠라쿠프 여행의 또 한축을 이루는 곳이 아우슈비츠다. 나찌의 유대인 학살현장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곳으로 쿠라쿠프 여행지중에 유일하게 입장료가 무료다. 당시 학살당한 유대인들의 머리카락, 신발, 사진 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가스실 앞에서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그 흔적을 구경하기 위해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연중 몰려드는 곳이다.

한국 여행객들의 발길이 아직은 뜸하다는 것도 쿠라쿠프 여행의 큰 매력이다. 체코 프라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는 이미 사라져버린 동유럽의 흔적을 이곳에서는 더욱 새롭게 체감할 수 있다.

■ 여행메모

가는길=바르샤바나 프라하에서 열차로 쿠라쿠프로 가는 루트가 일반적이다. 프라하에서 출발하면 오스트라바와 카토비스에서 열차를 갈아타야 한다. 쿠라쿠프 캘로니 역이 도착역이다. 아우슈비츠로 가는 버스는 중앙역 뒤편 시외버스 정거장에서 1시간 단위로 출발한다.

음식=쿠라쿠프에서는 현지인들이 즐겨찾는 '밀크바'에 들려본다. 이곳에서 주민들에게 우유를 배급했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국가의 보조를 받기 때문에 음식값이 저렴하다. 대표적인 음식은 '비고스'로 그릇 모양의 딱딱한 빵 안에 고기와 양배추 절임이 들어 있다. 한국의 만두를 닮은 피에로기도 입맛에 맞는다.

아우슈비츠.
기타정보=폴란드 입국에 별도의 비자는 필요 없다. 5월까지 기온은 낮은 편이다. 이곳 트램에서는 수시로 티켓검사를 하니 반드시 티켓을 구입하고 개찰구에 티켓을 찍어야 한다.


유대인 거리.
대관식이 열렸던 바벨성.

글ㆍ사진=서영진(여행칼럼니스트) aular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