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운동의 함성'이 메아리치다

소안도에서는 일 년 내내 집집마다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린다.
집집마다 태극기가 걸려 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태극기가 펄럭이지 않는 집은 하나도 없다. 삼일절이나 광복절인가? 아니면 다른 국경일인가? 아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일 뿐이다. 이곳에서는 일 년 열두 달 삼백육십오일 하루도 빠짐없이 집집마다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린다. '항일의 땅, 해방의 섬'이라는 표지석을 내건 소안도 얘기다.

전라남도 완도군에 속한 소안도는 독립유공자 19명, 애국지사 57명을 배출한 항일운동의 대표적인 섬이다. 1909년 1월 일본인들이 자국 선박의 항해를 돕기 위해 인근 자지도(당사도의 옛 이름)에 등대를 설치하자, 그해 2월 24일 동학군 출신 이준화를 비롯한 6인의 소안도 의병들이 등대를 습격하여 파괴하고 4인의 일본인 간수를 처단하는 등 항일정신을 드높였다. 일제강점기에는 800여 주민이 이른바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히고 수백 명의 주민이 감옥에 갇히는 등 거센 항일운동을 펼쳤다. 당시 감옥으로 끌려간 이웃들 생각에 소안도 주민들은 겨울에도 이불을 덮지 않고 잠잤다. 일본 경찰에게 일절 말을 하지 않는 불언동맹으로 탄압에 맞서기도 했다.

소안도(所安島). 편안하게 삶을 영위할 만한 섬이라는 뜻이다. 임진왜란 이후 용맹스러운 주민들이 자치 방위대를 조직해 왜구 침입을 막은 덕에 100세까지 안심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섬 전체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풍광도 빼어나지만 뜻밖에 조용하다. 코앞에 있는 보길도의 명성에 가린 까닭이다. 넓이 23.16㎢에 3천여 주민이 사는 이 섬은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소중한 천연기념물도 둘이나 거느리고 있다.

모래톱으로 두 섬이 하나로 이어져

완도 화흥포항에서 카페리에 차를 싣고 1시간 남짓 바다를 헤쳐 소안도로 건너간다. 부두에서 비자 간척지와 죽도 사이에 놓인 방조제를 건너면 남북으로 섬을 관통하는 주도로와 만난다. 이곳 삼거리에 있는 달목공원은 장독대와 돌탑, 철쭉이 어우러져 운치를 돋운다.

항일운동기념탑 옆으로 사립 소안학교가 복원되었다.
먼저 북쪽 길로 방향을 잡는다. 5㎞ 조금 넘게 달려 고개를 내려서자 북암리에서 길이 끝난다. 멸치잡이 배들이 드나드는 아담한 포구로 아늑한 어촌 풍경이 서정시처럼 다가온다. 갯바위와 자갈이 뒹구는 해변도 아름답지만 찾는 이는 거의 없다. 새싹들의 배움터였던 북암분교는 문 닫은 지 오래되어 잡초 속에 녹슨 미끄럼틀이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차를 돌려 소안면 중심가를 지나자 개미허리처럼 끊어질 듯 이어진 모래톱이 나온다. 소안도는 본디 남섬과 북섬, 둘이었다. 그러다 오랜 세월에 걸쳐 조류, 파도, 바람 등에 의해 모래가 밀려와 쌓여 둑 모양의 모래톱(사주)을 이룸으로써 하나로 이어졌다. 그래서 섬 모양이 8자와 흡사하다.

길이 1.3㎞, 너비 500미터의 모래톱이 끝나는 지점에 항일운동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1990년 항일운동기념탑을 세운 뒤에 기념관 건물은 2003년 10월 들어섰다. 기념탑 남쪽으로 길쭉한 기와집이 보인다. 2005년 복원한 사립 소안학교 건물이다. 사립 소안학교는 1913년 설립한 중화학원을 모태로 1922년 세워져 민족자립정신을 드높였다. 당시 소안학교는 인근 노화도, 보길도, 청산도는 물론 해남과 제주도에서까지 유학생들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었다. 그러자 일제는 일장기를 걸지 않는다는 이유로 1927년 폐교 조치했다. 항일운동기념관 앞으로는 은빛 백사장이 드리운 과목해변이 펼쳐진다.

상록수림 앞으로 몽돌해변 펼쳐져 운치 돋우고

항일운동기념관 앞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은 맹선리, 왼쪽 길은 미라리로 이어진다. 맹선리 바로 앞 바다에는 섬이 하나 버티고 있다. 보길도 동쪽 끝머리인 선백도다. 저 유명한 '송시열 글씐바위'를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맹선리 해변은 방파제가 빙 둘러싸고 있어 낚시하기에 좋고 두 방파제 끝에는 등대가 하나씩 서서 정취를 돋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천연기념물 340호인 상록수림이다. 붉가시나무, 감탕나무, 후박나무, 생달나무, 동백나무, 구실잣밤나무, 모밀잣밤나무, 보리밥나무, 광나무 등 20여 종 250여 그루의 상록수와 느티나무, 팽나무 등의 낙엽활엽수가 섞여 있는 맹선리 상록수림은 거센 북서풍을 막기 위해 심은 방풍림이다.

맹선리 포구 앞으로 보길도의 '송시열 글씐바위'가 보인다.
미라리 가는 길에 아부산이 보인다. 기묘한 암벽과 갯바위들이 해변을 에워싸고 있는 소안도의 절경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 제대로 볼 수 있으나 아부산은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손쉽게 굽어볼 수 있다. '소안도의 금강산'이라는 별칭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푸른 바다로 내리 뻗은 기암절벽이 아름답다.

아부산 서남쪽 기슭의 물굽이에 자리잡은 미라리 상록수림과 몽돌밭은 소안도에서 가장 이름난 명승지다. 천연기념물 339호인 미라리 상록수림은 길이 400미터, 너비 50미터에 이르며 수종은 맹선리 상록수림과 거의 비슷하다. 다른 점은 상록수림 앞으로 몽돌밭이 펼쳐진다는 것. 동글동글한 자갈과 맑은 바닷물이 손잡은 이곳은 해수욕장으로도 사랑 받는다.

# 찾아가는 길

완도 화흥포항에서 소안도로 가는 카페리 하루 10여 회 운항. 약 1시간 소요. 문의 061-555-1010.

소안도에는 농어촌버스와 택시가 다닌다.

장독대와 돌탑, 철쭉이 어우러져 운치를 돋우는 달목공원.
# 맛있는 집

소안도 일원 다도해에서는 도미류를 비롯해 다양한 어종이 잡히는데 특히 감성돔이 별미다. 감성돔 회는 늦가을부터 봄 사이에 가장 맛있는데 쫄깃쫄깃하면서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또한 감성돔에는 매운탕보다 맑은 탕(지리는 일본어)이 어울린다. 소안도의 특산물로 첫손 꼽히는 참전복도 별미다. 소안도의 여러 횟집에서 이들 외에 다양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맹선리 상록수림과 유채꽃이 어우러졌다.
천연기념물 340호로 지정된 맹선리 상록수림.

글ㆍ사진=신성순(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