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와 함께한 오랜 식재료원산지는 말레이 반도… 현 개량종과 달라고려 때부터 육(肉) 식재료로 널리 활용호남 '장수통닭' '약수닭집' 코스별 요리함평 '시골집' 남원 '내촌식당' 독특

‘약수닭집’ 닭회
"닭의 종자는, 뽕잎이 떨어질 무렵에 난 놈이 아주 좋고, 봄이나 여름철에 난 놈은 좋지 않다. (중략) 먹이는 마른 밥을 먹여야지 만일 젖은 밥을 먹이면 배꼽[臍]에서 농(膿)이 생기게 된다.(중략) 어미닭은 봄ㆍ가을에 걸쳐 1년에 병아리를 두 번 깔 수 있다. (중략) 닭에서 얻은 알은 물론 가용(家用)으로 쓰거니와, 또는 다른 물건과 바꾸어 쓸 수도 있으니, 생활을 영위하는 방법에도 한 가지 도움이 된다.(후략)"

교산 허균의 <성소부부고> '한정록 16권 양계' 편의 내용 중 일부다. 닭의 종자, 즉 병아리는 가을철에 태어난 것이 실하다. 1년에 두 번 부화가 가능하다. 달걀은 가용으로 쓰고 더러는 물건과 바꾸기도 한다. 닭이나 달걀 모두 소중하게 여겼다.

닭은 오래 전부터 인간과 친숙한 동물이었다. '꿩 먹고 알 먹고'보다는 '닭 먹고 달걀 먹고'가 더 잦았을 것이다. 경주의 지명에는 '계림(鷄林)'이 있다. 김알지나 김수로왕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 난생설화(卵生說話)다. 우리 닭은 말레이 반도가 원산지라고 알려졌다.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들어왔다는 게 다수설이다. 지금 우리가 만나는 닭과는 혈통 상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지금의 닭은 모두 개량종이다. 모습도 다르고 고기의 질도 전혀 다르다. 양계장에서 대량으로 기르는 닭들은 예전의 닭과 전혀 다르다. 품종도 다르지만 기르는 방식에서 전혀 다른 '식재료'가 된다. 우리는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식의 엉뚱한 닭고기를 만나고 있다.

닭 입장에서는 화가 날 일은 고대국가 부여(夫餘)의 부족 이름이다. 마가, 우가, 저가, 구가는 각각 말, 소, 돼지, 개를 뜻한다. 정작 생활 가까이 있는 닭은 없다. 닭은 작고 미약하니 계가(鷄家)라는 이름은 없었을 것이다. 닭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었다.

고려 망국 3년 전인 1389년(공양왕 1년)의 <고려사절요> '제34권'의 기록이다.

‘약수닭집’ 녹두죽
"(전략) 경기에 계돈장(鷄豚場) 두 곳을 만들어(중략) 새끼 가진 짐승을 죽이지 않는다면, 수년이 못 되어서 공상(供上)ㆍ제사ㆍ빈객의 쓰임에 충당되고 우리 백성들의 먹을 것도 풍족하게 될 것이며, 사냥함으로 인하여 농사를 망칠 걱정도 없게 될 것입니다.(후략)"

고려시대에도 고기를 먹고자 하는 욕구는 강했다. 소를 도축이나 식용은 엄히 금했다. 고려 조정은 금살도감(禁殺都監)을 정해서 엄격하게 막았다. 소를 도살하면 살인죄를 적용하자는 건의도 나온다. 그래도 서북 면에서는 굳이 고기를 찾는 이가 많다. 개성-의주 지역을 잇는 서북 면은 중국과의 교류가 잦은 곳이다. 사신 접대도 잦다. 중국으로 향하는 우리 사신들의 왕래도 잦다. 이민족이자 고기를 잘 만지는 '달단(韃靼)의 수척(水尺)'들도 이 지역에서 활동한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는 말도 있다. 이 지역에 오면 고기를 찾는다. 쇠고기를 찾다가 부족하면 농사짓는 농민들을 사냥에 내몬다. 농번기에 한 달씩 사냥에 동원되니 농사가 엉망이 된다. 고기는 먹고 싶고, 고기는 부족하다. 사냥을 하니 농민들이 죽을 지경이다. 결국 대체재를 생각한다. 드디어 닭과 돼지를 사육할 계돈장(鷄豚場)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온다. 잘 지켜지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3년 후에 나라가 망했다.

쇠고기 금지, 사냥 금지를 위하여 계돈장을 만들어 닭과 돼지를 대신 공급하자는 아이디어는 조선 초기에도 그대로 시행된다. 결국 만만한 게 닭이다.

"사위가 오면 귀한 씨암탉을 잡는다"는 표현의 내용에 대해서도 오해하고 있다. 흔히 귀한 사위에게 대단히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씨암탉의 고기는 질기다. 오늘날 같이 계란을 적당히 낳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상태일 리가 없다. 먹이도 부족하고 암탉은 근근이 알을 낳고 있다.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별 쓸모가 없는 수탉부터 먹어치운다. 다른 닭들도 먹고 마지막까지 아끼는 것은 알을 낳고 부화시키는 암탉 즉, 씨암탉이다. 알을 낳고 부화시키는 씨암탉도 먹어버리면, 더 이상 닭을 키우지 않겠다는 뜻이다. 고기가 귀한 시절이다. 귀한 사위가 왔는데 도대체 내놓을 고기가 없다. 집안에 마지막으로 남은 '고기'는 씨암탉이다. 맛있어서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서 귀한 것이라는 뜻이다. 없는 살림에 마지막으로 보이는 성의라는 뜻이다.

호남의 닭고기 전문점들은 '코스 별로' 닭고기를 내놓는 경우가 많다. '1인당'이 아니라 닭 한 마리 코스가 5만원-5만5천 원 정도. 미리 예약해야 한다.

전남 해남의 ''은 보편적인 통닭, 프라이드치킨 집이 아니다. 닭 회가 반찬과 더불어 먼저 나온다. 곧이어 붉은 양념을 한 닭고기 구이가 철판 위에 놓인다. 곧이어 백숙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닭고기 국물에 푹 곤 녹두죽이 제공된다. 인원과 관계없이 코스 별로 제공된다. 4인상으로 적절하다.

여수의 '약수닭집'도 비슷하다. 닭 회가 한 접시 나오고 곧이어 소금구이가 제공된다. 역시 백숙과 녹두죽이 나온다.

함평의 ''도 비슷한데 닭튀김이 나오는 점이 다르다. 국물과 더불어 칼국수를 끓여 먹을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닭고기 회, 백숙 등도 제공된다.

전북 남원의 ''은 앙증맞다(?). 한적한 곳이다. 시골 버스정류장에 자그마한 구멍가게가 있다. 이 구멍가게에서 닭국을 내놓는다. 노부부가 압력밥솥에 끓여내는 닭국이 일품이다.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장수통닭
시골집
내촌식당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