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들이 몸을 씻었다는 전설이 어린 옥계폭포.
배웅 나온 지인들 애간장 녹인 피리소리

난계 박연(1378~1458)은 거문고를 만든 고구려의 왕산악, 가야금을 제작한 신라의 우륵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 악성(樂聖)으로 추앙받는다. 난계(蘭溪)라는 호는 그의 집 정원에 난초가 유난히 많아서 붙은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1405년(태종 5년)에 문과에 급제한 박연은 음악가로 유명하지만 꽤 높은 자리까지 오른 문화 행정 관료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후원해준 세종을 만난 덕분에 단순히 고위관료에 그치지 않고 조선의 음악을 총정리하는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세종 이전의 궁중음악은 신라의 향악과 당나라의 당악, 송나라의 아악 등이 혼재되어 있었다. 세종은 박연으로 하여금 궁중음악을 일관성 있게 정리하도록 명했다. 조선은 송나라에서 시작된 성리학을 국가의 기본 이념으로 삼고 있었던 까닭에 박연은 국가 행사에 이용되는 음악의 기본을 아악으로 정리했다. 또한 불완전한 악기 조율과 악보편찬의 필요성에 따라 1427년(세종 9년) 편경(編磬) 12장을 만들고 12율관(律管)에 의거하여 음률의 정확성을 이루었다.

공조참의, 중추원첨지사, 중추원동지사, 인수부윤, 중추원부사 등을 역임한 박연은 정이품 벼슬인 예문관대제학에 올랐다. 그러나 1453년(단종 1년) 계유정난 때 아들 계우가 세조에게 반대하다가 처형되는 아픔을 겪었으며 박연은 파직되었다. 그가 한강에서 배를 타고 고향인 영동으로 내려갈 때, 작별 인사하러 나온 지인들 앞에서 불었던 피리소리는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일 정도로 애달팠다고 한다. 낙향한 지 5년 만에 박연은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옥계폭포 입구의 '피리 부는 박연' 조형물.
'세계 최대의 북' 천고도 눈길 끌어

박연의 고향인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8호인 난계사가 세워져 있다. 박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인 난계사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목조기와집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입구의 석조계단을 올라 앞면 3칸, 옆면 1칸의 솟을삼문인 외삼문을 들어서면 나란히 놓인 3개의 석조계단 위에 '蘭溪祠'라는 현판이 걸린 사당이 올라서 있다.

난계사 입구에는 거대한 북인 천고(天鼓)가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2009년 7월부터 2010년 8월까지 14개월에 걸쳐 만든 천고는 2011년 7월 6일 기네스 월드 레코드(GWR)에 '세계 최대의 북'으로 등재되었다. 15톤 트럭 4대 분량인 소나무 원목 2만4천재와 40여 마리의 소가죽으로 만들었으며 다섯 마리의 용이 휘감은 문양의 오룡으로 단청하여 한결 우아한 품격을 내뿜는다. 북 지름 5.54미터, 북통 지름 6.4미터, 북 길이 5.96미터, 무게 7톤에 이른다.

난계사 인근에는 난계국악박물관과 난계국악기체험전수관이 세워져 있다. 난계국악박물관은 박연의 업적을 기리고 국악에 대한 자료를 수집·전시·보존하기 위해 2000년 9월 23일 문을 열었다. 2층 건물의 1층에는 국악실과 난계실·영상실 등이 있고, 2층에는 정보검색코너와 국악기체험실이 마련되어 있다. 이 가운데 가야금을 비롯한 현악기 14종과 타악기 37종, 관악기 19종 등 100여 종의 국악기가 전시되어 있는 국악실과 90여 가지의 국악기들을 직접 다뤄볼 수 있는 체험실이 돋보인다.

난계 박연이 즐겨 찾은 옥계폭포

박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인 난계사.
난계국악기체험전수관은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2006년 3월 15일 문을 열었다. 가야금·거문고·해금·대금·피리·편종·편경·단소 등 8가지 국악기 소리를 터치스크린을 통해 동영상을 보며 들을 수 있는 체험관, 각종 악기를 직접 연주해볼 수 있는 체험전수실, 136석의 소공연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숙박을 하며 국악에 대해 공부하는 국악연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난계사에서 4㎞쯤 떨어진 옥계폭포를 그냥 지나치기 아깝다. 월이산 남동쪽 기슭의 옥계(玉溪)폭포는 옥문(玉門)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소개되었을 만큼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 풍류를 즐겼다. 난계 박연도 즐겨 찾아 피리를 불었다고 한다. 그래서 박연폭포라고도 불리며 폭포 입구에는 '피리 부는 박연'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높이 20여 미터에 이르는 옥계폭포는 깎아지른 듯한 단애를 타고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 흡사 명주 자락을 드리운 듯 신비스럽다. 옥계폭포는 인근 주민들이 찾아와 촛불을 켜놓고 소원을 비는 장소이기도 하다. 특히 아이를 갖지 못한 아낙네들의 발길이 잦다고 한다.

옥계폭포는 장쾌하고 시원스럽게 흘러내리는 물줄기 자체도 장관이지만 폭포 좌우로 웅장한 암벽이 솟구쳐서 한결 빼어난 절경을 빚는다. 폭포와 암벽의 장엄함을 한눈에 바라보노라니 마치 살아 있는 산수화를 마주한 듯한 비경에 넋이 나갈 것만 같다. 선녀들이 내려와 몸을 씻었다는 전설도 괜히 생긴 것이 아니리라.

# 찾아가는 길

기네스 월드 레코드에 '세계 최대의 북'으로 등재된 천고.
옥천과 영동을 잇는 4번 국도로 달리다보면 난계사 및 옥계폭포 입구에 다다른다.

대중교통은 옥천-영동간 시외버스를 타고 난계사 입구 및 옥계폭포 입구에서 내린다.

# 맛있는 집

옥계폭포로 들어가는 진입로 옆에 자리 잡은 폭포가든(043-742-1777)은 우렁쌈밥정식으로 유명하다. 상추, 신선초, 경수채, 케일, 레드치커리, 로스카노, 로메인, 청경채, 래디시 등 신선한 유기농 채소에 왕우렁이 듬뿍 들어간 우렁쌈장을 올리고 싸먹는 쌈밥이 구수하니 입맛을 돋운다. 황태포를 기본 육수로 하여 바지락과 우렁이 들어간 된장찌개도 일품이다.


난계사 입구의 박연 동상.
2000년 9월 23일 문을 연 난계국악박물관.
우렁쌈밥정식으로 이름난 폭포가든.

글ㆍ사진=신성순(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