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령(茯笭) 다양하게 쓰여…비장 튼튼하게 해줘

고려시대에 전시과(田柴科)제도란 게 있었다. 나라에 임용된 공무원에게 지급한 녹봉으로 전과(田科)와 시과(柴科)가 그것이다. 전과는 논과 밭에서 나는 곡식을 거둬들일 수 있는 권리이고, 시과는 밥을 짓고 방을 덥히는데 쓰이는 땔감을 벨 수 있는 허가권을 주어 산림을 보호하고자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화전(火田)과 도벌, 벌목을 엄격히 금지하였고 황장목(궁궐에 쓰이는 금강송)은 더욱 엄격히 관리되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27년부터 14년간 압록강‧두만강 유역을 집중적으로 벌목한 결과 북부지방의 1/3에 이르는 거대한 산림이 사라지고 만다. 해방 후에도 6.25를 겪으면서 포화로 스러지고 춥고 배가 고파서 벌목하는 바람에 남이나 북이 별 차이 없이 민둥산 일색이었다. 그나마 남쪽에서는 식목일을 만들어 대대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한 결과 어떤 곳은 나무가 너무 울창해서 함부로 들어가기가 겁날 정도인 곳도 많다. 필자가 심은 나무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기억된다. 거기다 나무를 갉아 먹는 송충이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학생들 모두 산으로 내모는 바람에 산에는 송충이보다 학생수가 더 많았었다. 물론 수업을 빠지는 재미가 쏠쏠했고 무엇보다 송충이를 잡아서 여자애들 골려주는 재미도 있어 나름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먹을 게 별로 없었던 그 시절에는 초봄에 산에 가서 연한 소나무 가지를 꺽어 겉껍질을 벗기고 물이 오른 속껍질을 먹으면 달콤한 맛이 났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이나 동양인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사시사철 푸르게 있어 지조 있는 선비를 뜻하는 ‘세한후(歲寒後) 지송백지후조야(知松栢之後彫也)’ 는 날씨가 추우면 소나무와 잣나무만이 독여청청 하듯이 선비도 지조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곧은 소나무는 목재가 되고, 굽은 소나무는 땔감이 되며, 소나무 잎은 송편의 재료가 되고, 죽은 소나무에서는 송이버섯이 자라고, 솔방울이나 소나무의 상처난 부분을 치료하기 위해 생긴 끈적거리는 송진이 많이 엉긴 가지부위나 옹이 부위인 관솔은 불을 밝히는 데 사용했다.

이것보다 더 귀한 것이 소나무에서 나는 데 복령(茯笭)이란 한약재다. 복령은 구멍쟁이 버섯과에 속하며 소나무 뿌리를 둘러싸고 균사 덩어리를 만든다. 뿌리를 중심으로 뿌리를 바로 감싸는 것을 백복신(白茯神)이라고 하고, 그 다음이 백복령(白茯苓), 적복령(赤茯苓), 복령피(茯笭皮)순서로 된다.

백복신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안신(安神)하는 한약재로 청소년들에게 흔히 많이 처방되는 총명탕(聰明湯)의 주된 재료 중에 하나다. 적복령은 복령인데 색깔이 붉은 색을 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적복령의 의미는 이진탕(二陳湯)을 보면 잘 드러난다. 이진탕은 끈적거리는 가래 같은 담음(痰飮)이나 물처럼 출렁거리는 수독(水毒)을 없애주는 처방이다. 특히 위장에 담음이 있으면 마치 출렁거리는 물위의 배를 타고 가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리고, 미식거리고, 토할 것 같고, 속이 쓰리고, 또 심하면 배멀미 같이 어지러운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이진탕의 군약(君藥)이 반하(半夏)지만 적복령 또한 신약(臣藥)으로 자신의 역할이 있다. 수독에서 물을 빼고, 열로 인해 끈적이는 가래에서 열을 끄고 습기를 제거하는 역할이 그것이다. 비만관리 하는 동안 한약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을 하는 환자는 그것이 비만 관리하는 동안 본인 몸의 변화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한약처방이 잘못됐다고 오해하게 되는 데 이 때 사용하면 탁월한 효과를 본다. 물론 입덧이나 배멀미에도 이진탕의 변화방들이 많이 쓰인다.

복령피(茯笭皮)는 복령을 싸고 있는 겉껍질로 물을 밖으로 배출하는 이수(利水)작용을 주로 한다.

복령(茯笭)은 백복령(白茯苓)이다. 비오습(脾惡濕) 즉 비장은 습기를 싫어한다는 한의학이론이 있는데 복령이 습기(濕氣)를 없애줘서 비장을 튼튼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인삼(人蔘), 백출(白朮)들과 어울리면 비장을 튼튼하게 하고, 저령(豬苓), 택사(澤瀉)등과 어울리면 몸의 온갖 부종(浮腫)을 치료한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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