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추두부탕 보양식 추어탕 대중화고려ㆍ조선 미꾸라지 식용…‘추두부탕’유행서울ㆍ중부는 통추, 영남ㆍ호남은 주로 갈추 자연산ㆍ국산 귀해지며 고등어 갈아 사용도

음식 먹고 평가하는 일이 잦다. 비싼 것, 진귀한 것, 좋은 것만 가려 먹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는 않다. 식성이 좋은 편이니 별난 보양식 한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잘 먹는다.

피하는 음식은 있다. “절대 먹지 않는다”는 정도는 아니지만 가급적이면 피한다. 뱀장어, 삼계탕, 보리굴비, 과메기 등은 가급적이면 먹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도 뱀장어를 먹긴 했으되 오늘날 같이 게걸스럽게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름철에 보양한다고 법석을 피진 않았을 것이란 뜻이다. 물론 전통음식은 아니다. 뱀장어는 가격이 비싸다. 값비싼 치어를 수입해서 기르니 당연히 비싸다. 최근 무항생제 뱀장어가 유행이다. 그동안은 어떻게 길렀는지 궁금하다.

550g정도, 부화한 후, 30일 동안 기른, 닭인지 병아리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걸 퍼먹는 것도 어색하다. 삼계탕. 채 자라지도 않은 어린 닭을 영계라고 우기고, 그걸 퍼 먹으며 ‘보양했다’고 우기는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여름철에 건강 음식은 따로 있다.

보리굴비와 과메기는 이름만 남았고 우리가 아는 그 보리굴비와 과메기는 아니다. 고급 식재료는 넘쳐나는데 정작 제대로 된 식재료는 드물다. 있더라도 가격이 너무 비싸다. 서민들이 바라보기엔 너무 높다. 결국 열풍 건조 과메기나 굴비 아닌 굴비가 나돈다. 이런 짝퉁들이 모양과 색깔은 더 좋으니 당황스럽다.

뒤틀린 식재료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가 있다. 미꾸라지 때문이다. 추어탕(鰍魚湯)의 ‘추(鰍)’는 ‘어(魚)+추(秋)’를 붙인 것이다. 앞의 ‘어’는 물고기라는 뜻을 드러내고 뒤의 ‘추’는 발음으로 쓰인다.

오래 전 농경시절에는 추어탕이 가을철 음식이었을 것이다. 봄부터 여름 내내 논에서는 벼가 자란다. 가을이 깊어지면 추수가 시작된다. 논의 물은 마른다. 마른 논에서 붕어, 미꾸라지, 피라미도 나오고 미꾸라지도 슬슬 몸을 드러낸다. 추수를 한 후, 미꾸라지 탕, 추어탕은 농가의 별미이자 단백질 섭취원이었을 것이다.

자연산 미꾸라지는 귀하다. 일부 유기농법이나 저농약, 무농약 논에서나 보일 것이다. 한두 번 정도 ‘재미삼아’ 추어탕을 끓여먹을 정도이지 상업적으로 외식업체에 공급할 정도의 미꾸라지는 구하기 어렵다. 양식이라도 국산을 찾는 것도 호사스러운 일이다.

‘자연산 미꾸라지-국산 미꾸라지-중국산 수입 미꾸라지’ 순서로 사람들의 요구는 점차 낮아진다. 끔찍한 소문도 있다. 대도시 추어탕 집의 상당수가 미꾸라지가 아니라 고등어 곱게 간 것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다.

추어탕을 ‘갈추’와 ‘통추’로 나눈다. 서울, 중부지방에서는 통추를, 영남, 호남에서는 주로 갈추 형태로 먹었다. 옛 이야기다. 서울이나 지방이나 모두 통추, 갈추를 내놓는다. 국물은 지방의 갈추 방식으로 만들고 건더기는 서울, 중부 식으로 뻑뻑한 경우도 있다.

‘갈추’의 경우, 미꾸라지를 곱게 갈아서 체에 거른다. 뼈와 굵기가 굵은 건더기들을 걸러낸다. 아래에 모인 고운 국물만 모아서 얼갈이배추나 고운 배추 잎 등을 넣고 비교적 맑은 국을 끓인다. 된장을 풀고, 산초가루를 넣어서 먹는다. 미꾸라지를 삶은 다음 곱게 갈아서 국물을 만드는데 이때 미꾸라지 대신 고등어를 곱게 갈아서 넣어도 소비자들은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고등어도 우리가 널리 먹는다. 피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추어탕 먹자고 가서 고등어 탕 먹으면 유쾌하지는 않다.

조선시대의 ‘미꾸라지 음식’이 곧 오늘날의 추어탕은 아니다. <난호어목지>에 가을이면 미꾸라지가 살찐다고 했다. 먹었다는 것이다. 고려시대 송나라 서긍의 기록인 <고려도경>에도 미꾸라지가 등장한다. 그러나 미꾸라지는 ‘기록을 남길 만한 음식’은 아니었다, 오주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나오는 미꾸라지도 마찬가지다. “반촌(泮村)의 반인(泮人)들 사이에서 널리 먹는다”고 했다. <오주연문장전산고>도 음식 레시피 책은 아니다. 사회의 사물, 현상 등을 꼼꼼히 기록한 백과사전이다. 당시 사회 현상 중 하나인 ‘추두부탕(鰍豆腐湯)’을 이야기한다. 미꾸라지를 잡아서 음식을 만드는 과정도 기술했지만 “반인들이 추두부탕을 널리 먹는다”는 부분이 핵심이다. ‘추두부탕 유행’을 말한다.

경북 예천의 ‘유정식당’은 자연산 미꾸라지만 내놓는다. 남편은 이른 아침 인근의 들판에서 미꾸라지를 잡아온다. 아내는 자그마한 공간에서 음식을 내놓는다. 큰 미꾸라지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이 식당에서 처음 들었다. 전골 형태의 미꾸라지 탕이다. 통미꾸라지를 사용한다.

대구의 ‘상주식당’은 갈아서 내놓는 방식이다. 미꾸라지를 곱게 간 육수에 얼갈이배추를 넣고 끓인 다음 한 그릇씩 퍼주는 방식이다. “남도 식은 된장 푼 물을 사용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어떤 된장을 사용하느냐?”고 물었다가 망신을 당한 집이다. 맑은 맛이다. 겨울철에는 “얼갈이배추를 구할 수 없어서” 쉰다.

원주의 ‘원주 복추어탕’도 이젠 노포에 속한다. 국물은 걸쭉하다. 솥을 따로 걸고 손님이 올 때마다 새로 탕을 만드는 식이다.

전북 남원의 ‘새집추어탕’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집이다. 광한루 옆의 낡은 대문이 있던 한옥의 정취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많지만 세월 이기는 장사는 없다. 창업주의 친척이 대신 운영한다. 남도 음식의 푸근함이 살아 있는 맛이다.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