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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규 원장의 스마트 한의학(153)] 청열양혈약(淸熱凉血藥)-서각(犀角)

무소의 뿔…혈(血)이 열로 인해 끓어 넘치거나 출혈 시 가루로 사용
공지영의 장편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불교 경전의 한 대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정스님이 최초로 번역한 부처님의 말씀인 ‘숫타니파타’의 사품(蛇品)의 3장에 있는 ‘무소의 뿔’에 나온다. 법정스님은 ‘무소유’로 대중과 많은 소통을 나눈 것으로 알고 있지만 스님에겐 ‘숫타니파타’를 한글로 번역한 것이 훨씬 의미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법정스님이 있었던 성북동의 길상사(吉祥寺)는 ‘자야’가 시주한 ‘대원각’의 또 다른 이름이다. 대원각(大元閣)은 그 당시 잘나가는 최고급 요정으로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거물들이 드나들며 정치를 하던 곳이다. 그 대원각의 주인인 ‘자야’는 가난 때문에 기녀가 되었지만 그 당시 중앙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할 정도로 깨어있던 인텔리 신여성이었다. 그런 자야가 어느 날 천재시인 ‘백석’을 만나게 된다. 백석과 자야는 서로 애절하게 사랑했지만 한국전쟁으로 남북이 갈라지는 바람에 백석은 북에서, 자야는 남에서 하염없이 만날 날을 기약했지만 단 한 번도 다시는 못 만나게 된다. 자야는 평생을 일궈온 대원각을 법정(法頂)스님께 시주한다. 길상사에 가 보면 대원각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로 사찰로 개조한 흔적이 보여 법정스님의 ‘무소유정신’을 엿볼 수 있다.

법정스님이 번역한 ‘숫타니파타’는 초기불교를 이해하는 데 엄청나게 중요하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그 제자들이 모여서 부처님의 말씀인 경(經)과 계율인 율(律)을 확정짓고 그 내용을 후대에 전하게 된다. 그 당시 인도에서는 문서가 아닌 암송으로 문화가 전승된 관계로 불교 경전도 예외없이 암송되어서 전해지게 된다. 불교가 다른 나라로 전파되면서 인도와는 달리 암송문화가 없던 각 나라는 불경을 자신의 문자로 활자화하기 시작한다. 부처 사후 200년 후 아쇼카 대왕이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하면서 불교 경전이 세계 최초로 문자로 쓰여진다. 그것이 팔리어삼장이다. 필리(Pari)어로 기록된 삼장이란 뜻이다. 오랫동안 존재가 안 알려져 있다가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때 이 경전이 발견되었고, 다른 누구보다 빨리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이라는 이름으로 일본학자들이 번역하였다. 팔리어삼장을 대장경(大藏經)에 수록된 불경과 대조해보니 아함경(阿含經)과 같았다. 단지 팔리어 삼장에는 대장경의 아함경에 없던 새로운 불경이 있었는데 그 중에 ‘숫타니파타’와 ‘법구경(法句經)’이 있었다. 숫타니파타를 접해보면 다른 경전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인간 싯달타의 가르침이 얼마나 소박하고 아름다운지 너무나도 청순한 인간미에 우선 눈시울이 뜨거워질 것이다. ‘무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말은 혼자서 도에 이르는 독각(獨覺)의 의미다.

무소의 뿔은 서각(犀角)이란 한약재다. 지금은 CITES(멸종위기 동식물 국제협약)에서 호경골(虎脛骨), 웅담(熊膽), 사향(麝香)과 함께 수입이 금지 금지되어 있다. 서각은 성질이 차다. 그래서 혈(血)이 열로 인해서 끓어 넘쳐서 어딘가 터져서 출혈이 일어날 때 미리 가루를 만들어 놓았다가 사용한다. 하루 종일 갈아도 5g을 밖에 못 얻을 정도로 정말로 단단하다. 그래서 다른 약을 달일 때 함께 달이지 않고 주로 가루 째로 복용하거나 환약에 섞어서 사용한다. 서각은 혈(血)에 열이 많아서 겉에 발진이 나거나, 황달이 오거나, 피를 토하거나, 하혈을 하거나, 뇌에서 출혈이 일어났거나 했을 때 많이 쓰인다. 우리가 흔히 아는 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에 웅담과 사향과 함께 서각이 들어가서 피가 끓어 흘러넘치는 것을 식혀 증상을 완화하는 작용을 한다. 옛날에도 귀해서 서각을 쓰는 대신 그것과 기원이 유사한 수우각(水牛角) 즉 물소뿔을 써도 된다고 명의별록(名醫別錄)에서 말하고 있다. 다만 수우각으로 서각의 효능을 내려면 10배만큼 써야 한다. 동의보감에 보면 황달에 서각탕(犀角湯)을, 피부 발진에 서각현삼탕(犀角玄蔘湯)을 쓰라고 되어있다. 기자가 자야에게 “천억원 값어치가 나가는 대원각을 시주했는데 아깝지 않습니까?” 하니 “그까짓 것, 백석의 시 한줄 보다 못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전국에서 제일 잘사는 동네 앞마당에서 일어난 ‘기묘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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