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과대학 고학년이 되면 추석을 즈음해서 하는 연례행사가 있다. 그 때가 되어야 질이 좋은 생지황이 나오기 때문이다. 생지황을 즙을 내서, 미리 가루를 낸 인삼(人蔘)과 복령(茯笭)을 넣어 잘 섞는다. 생지황이 캔 지 오래 되서 마르면 즙이 잘 안 나오기 때문에 가능하면 싱싱한 것으로 해야 한다. 그 다음 꿀을 달여서 거품이 나면 불을 끄고 거품부위를 모두 없앤 다음 그 물같이 맑은 꿀을 거기에 추가로 붓고 기름종이로 밀봉한 다음 물로 중탕해서 은근한 불로 3일 밤낮으로 졸인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경옥고(瓊玉膏)다. 용돈이 넉넉지 않은 관계로 성능 좋은 즙 짜는 기계를 동기한테 빌려 쓰는 데, 그 기계를 가지고 있는 동기는 위세를 부릴 만하다. 물이 졸여져서 보충도 해 줘야 되고, 불을 꺼트리지 않아야 해서 대개 2인 1조로 교대로 불을 보는데 경옥고가 완성될 때 쯤 이면 녹초가 된다. 하지만 손수 만든 경옥고를 한 단지씩 옮겨 담으면서 마치 뭔가를 해낸 뿌듯함을 갖게 되고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추석에 부모님이나 친척들에게 선물로 드리면 소중한 것이라고 잘 보관했다가 마땅한 선물이 없을 때 선물로 드리기도 하고, 직접 드시더라도 아껴 드시느라 잘 먹지도 않는다.

지황(地黃)은 지수(地髓)라는 이명이 있다. 땅의 정수(精髓)라는 의미이다. 지황은 한약 중에 다방면으로 다양하게 사용되는 오지랖이 넓은 몇 안 되는 한약 중에 하나다. 지황은 어떻게 수치 하느냐에 따라서 효능이 많이 변한다. 그대로 쓰는 것을 생지황, 말려 쓰는 것을 건지황, 구증구폭(九蒸九曝)해서 쓰는 것을 숙지황(熟地黃)이라 한다. 숙지황의 구증구폭은 상당히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수치법이다. 생지황을 깨끗하게 씻어서 물에 띄워 가벼운 지황은 걷어내어 즙을 낸다. 무거운 지황은 그 즙에 담궜다가 찜통에 넣고 밑에 막걸리를 넣고 찐 다음 다 익으면 햇볕에 말린다. 다 마른 지황은 다시 즙에 하루 밤 담궜다가 막걸리로 쪄내고 말리곤 한다. 이걸 9번 하는 것을 구증구폭(九蒸九曝)이라 한다. 생지황은 즙이 충만하게 있는 상태로 그대로 쓰기 때문에 성질이 차고(寒) 맛은 달고 쓰다.(甘苦) 건지황도 역시 성질이 차고(寒) 맛은 달다.(甘) 생지황과 건지황은 얼추 성미가 비슷하다. 차고 수분이 많아서 온사(溫邪)나 열사(熱邪)로 인해서 진액이 졸여져서 진액의 고갈되어 여기저기 잘 갈라지고 특히 혓바닥이 갈라지고 갈증이 심하게 나거나, 고열이 계속 지속되어 대변을 졸여 딱딱하게 되거나 정신이 혼미하게 될 때 생지황과 건지황을 쓴다. 특히 이럴 때는 현삼(玄蔘)과 서각(犀角) 맥문동과 함께 사용한다. 큰 열병이 지나가고 미열이 물러나지 않고 계속 있는 것을 미열불퇴(微熱不退)라 한다. 이 때는 청호(菁蒿)나 지골피(地骨皮)와 함께 사용한다. 또한 고열이 오랫동안 인후부를 머물러 인후부위가 짓무를 때는 현삼, 산두근, 길경, 지각 등과 같이 사용한다. 생지황은 열이 많은 소양인이나, 어린 아이들이 열이 나서 코피가 터지거나 여기저기 출혈이 있을 때 숙지황과 함께 쓰는데 이제마가 만든 사상처방인 생숙지황탕(生熟地黃湯)이 제일 효과가 크다. 또한 생지황은 지난번에 말했던 석고와 함께 쓰면 소양인 아토피같은 피부질환에 폭넓게 사용할 수 있다. 그 외에 증상에 따라 사용되는 범위가 너무 넓어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다. 숙지황은 보음약(補陰藥)이나 보혈약(補血藥)에 없어서는 안 될 한약이다. 모든 부인과 질환과 노인질환 그리고 소아과 질환에 많이 사용되고, 특히 만성 소모성 질환으로 수분이나 진액이 부족해져서 혈분(血分)이나 음분(陰分)이 고갈된 간신음허증(肝腎陰虛症)에 다양하게 사용된다. 자세한 것은 보음하는 한약재를 참고하기 바란다. 현삼(玄蔘)이란 한약재가 있다. 알고보면 지황도 현삼과 식물이다. 그러나 현삼은 지황과 많이 차이가 난다. 현삼은 성질이 차가워서 혈(血)을 식히는 양혈(凉血)작용이 있고 질감이 미끈거린다. 그래서 촉촉하게 한다. 결국 바짝 마르고 열이 나는 것을 해열하고 촉촉하게 해준다. 생지황과 맥문동 같은 한약재와 잘 어울려 논다.



하늘꽃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