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적에 여름방학을 하면 시골에 있는 외가댁으로 몇 번씩 버스를 갈아 타고 놀러 갔었다. 그러면 도회지에서 손님이 왔다고 동네 분들이 나와서 맞이해 주셨다. 어떤 분은 찐 감자와 옥수수 같은 간식 거리를 가져와서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도회지의 일상에 대해 궁금해 하시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다. 시골동네 입구에 큰 느티나무 아래는 할아버지의 놀이터였다. 거기는 항상 장기판이 벌어졌고 장기두면서 두런두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것이 할아버지의 소일거리다. 반면 심심풀이 민화투판은 할머니들의 몫이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어깨너머로 장기와 화투에 대해서 눈뜨게 되었다. 민화투를 칠 때 할머니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6 목단과 7 홍싸리다. 요즘 심심풀이로 치는 고스톱에서도 비슷한 느낌이다. 따온 것 같은데 따온 느낌이 안 드는 그런 패인 셈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목단(牧丹)은 ‘꽃 중의 꽃’인 화왕(花王)이나 곡우 절기에 핀다고 해서 ‘곡우화(穀雨花)’라고 불렀으며 부귀를 상징해서 궁중이나 일반 백성 할 것 없이 의복이나 침구류 뿐 아니라 병풍에 목단을 수놓곤 했다. 우리가 흔히 ‘모란’이라고 부르는 목단(牧丹)은 붉은 색(丹)을 기른다(牧)는 뜻으로 혈약(血藥)과 관련이 있다. 3-5년 정도 자란 모란의 뿌리 껍질은 목단피(牧丹皮)라는 한약재로 쓴다. 목단피는 성질이 약간 차고(微寒) 맛은 맵고 쓰다.(苦辛) 매운맛은 발산하여서 흩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므로 다른 청열양혈약과는 달리 목단피는 어혈을 제거하는 효능이 있다. 불을 꺼주거나 식히는 역할을 하는 찬 성질과 쓴맛의 정도는 다른 한약보다 떨어진다. 특히 목단피의 기운은 청량하고 방향성이 있어서 수분이나 진액 속에 숨어있는 잠열(潛熱)을 없애줘서 혈(血)이 끈적거리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므로 어혈을 제거해서 혈액순환장애를 개선하는 효능이 있다. 그래서 혈액이 가장 많이 저장되어 있는 자궁이나 하복부의 혈분(血分)에 문제가 있어서 생리통이나, 아랫배가 아프거나, 타박상을 입었을 때 많이 사용한다. 맹장염이나 복막염같은 질환에 수술 같은 외과적인 방법으로 치료할 수 없었던 과거에 목단피가 들어간 대황목단피탕(大黃牧丹皮湯)을 썼다. 생리불순, 불임, 갱년기장애 같은 부인과 질환에 많이 처방하는 온경탕(溫經湯)에도 어혈을 제거할 목적으로 목단피가 들어간다. 또 다른 생리불순 치료 처방인 계지복령환(桂枝茯笭丸)에도 역시 목단피가 들어가서 어혈을 제거한다. 탈진 같은 소모성 질환에 쓰이는 신기환이나 육미지황환에도 들어가서 혈(血)이나 진액이 졸여져서 생긴 어혈을 없애서 혈액순환을 촉진시킨다. 이를 거어생신(祛瘀生新)이라고 한다. 적작약(赤芍藥)이라고 있다. 적작약의 뿌리를 건조해서 쓴다. 작약은 오랫동안 보혈약(補血藥)에 속하는 백작약(白芍藥)과 청열양혈약(淸熱凉血藥)에 속하는 적작약(赤芍藥)으로 구별하여 사용하여 왔다. 그러던 것이 2002년 대한약전 개정에서 ‘작약’ 하나로 생약명이 개정되었다. 백작약은 진정시키고 진통하는 힘이 강하고, 적작약은 활혈거어하는 힘이 강하다. 우리나라 의성이나 호남지방에서 주로 재배되는 작약은 거의 적작약에 가깝다. 그 적작약을 껍질을 벗기고 살짝 쪄서 백작약을 만든다. 야생에서 나는 작약을 산작약 혹은 강작약이라고 하는데 효능이 좋아서 원래 작약의 효능을 취하려면 강작약을 쓴다. 적작약은 성질이 차고 맛은 쓰다. 혈(血)로 가득 차 있는 간장(肝臟)과 간경락(肝經絡)으로 들어가 혈(血)을 졸이는 열(熱)을 식히고, 떡이 져서 뭉쳐져 있는 핏덩이 상태의 혈괴를 잘 부셔서 흩어주는 양혈산어(凉血散瘀) 즉 혈을 식히고 어혈을 흩어주는 효능이 탁월하다. 적작약은 일체의 혈열(血熱)과 어혈(瘀血)을 동시에 치료하는 중요한 한약재다. 적작약은 목단피와 잘 어울려서 함께 작용하는데, 목단피는 혈(血)을 식히는 효능이 뛰어나고, 적작약은 어혈을 치료하는 효능이 뛰어나다. 타박상에 어혈을 제거하는데 쓰는 당귀수산(當歸鬚散)에 적작약이 신약(臣藥)으로 있는 이유다.



하늘꽃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