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와 나눔'정신 깃든 별미 풍성최 부자 후손의 '요석궁' 밥식해 독특… '팔우정' 조미료 절제된 묵해장국 '시원''금호할매추어탕' "원래 추어탕,해장국맛"'삼릉칼국수' '서면식육식당' 가볼 만해

요석궁
경주는 멀다. 비행기를 이용하더라도 포항에 내린 다음 경주로 가야한다. 경주는 멀고 불편하다고 여긴다. "경주는 멀다"고 느끼는 것은 '심리적'인 부분이 크다. 물리적 거리와 더불어 심리적 거리가 먼 것이다. 바꿔서 말하자면 "그 정도 거리에 시간을 투자하여 가기에는 경주에 별 매력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경주가 '유적지 관람' 중심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천마총 금관이나 첨성대, 불국사 등은 이미 교과서나 각종 미디어를 통해 볼 만큼 봤다. 현장에 가서 똑같은 것을 줄지어 서서 보고 되돌아온다. 따로 공부를 하지 않는 이상 특별한 느낌을 가지기도 힘들다. 대략 1,500년 전에 이런 게 있었구나, 라고 생각할 뿐 더 이상의 감흥은 없다. 국립경주박물관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너무 많은 유물을 짧은 시간에 보니 "와 봤다"는데 의미가 있을 뿐이다.

경주에 가면 경주의 '정신' '문화'를 보라고 권한다. 음식점을 통해 보고 싶다면 가장 먼저 ''과 '팔우정'을 권한다.

''은 경주 최 부자 집안의 후손이 직접 운영하는 곳이다. 음식은 절제되어 있다. 양이 적다고 따지는 이들도 있다. 양은 그리 적지 않고 반가의 음식으로는 충분한 양이 제공된다고 믿는다. 별다른 반찬이 없이 그저 평범한 '집밥'을 내놓는다는 불평도 들었다. 부잣집이라고 유별한 음식을 먹었던 것은 아니다. 만약 부잣집이라고 특별한 별난 식재료를 사용해 음식을 만들었다면, 그리하여 집안에서 그런 음식들을 양껏, 즐겨 먹었다면 오늘날 '경주 최 부자' 집안의 전설은 없었을 것이다.

며느리가 새로 들어오면 무명옷을 입게 했다. 일찌감치 사치를 멀리하라고 가르쳤다. 화려한 혼수도 굳이 말렸다. 오늘날 같이 혼수를 두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은 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굶지 않게 하라, 가뭄이나 홍수 등으로 곡물이 귀한 시기에는 논밭을 사들이지 말라고 했다. 지녀야 할 재산과 벼슬살이도 절제시켰다.

팔우정 묵해장국
가장 빛나는 부분은 '경주 최 부자 집안의 마지막'이다. 전 재산을 독립 운동과 영남대학 재단에 희사했다. 이런 결정에 별다른 반대가 없었다는 점도 돋보인다. 경주 최 부자 집안 음식의 정신이 '절제'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경주 가면 ''을 가보라"고 권하면서 반드시 덧붙이는 말은 "그 집의 '밥식해'를 꼭 보라"는 것이다. '식해(食醢)'와 '식혜(食醯)'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식해는 동물성 특히 생선 등을 삭힌 것을 말한다. 식혜는 우리가 감주(甘酒) 혹은 단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식물성 발효식품이다. 복잡한 한자까지 비슷해서 혼동하는 경우가 잦다. '밥식해'는 '밥알+식해'다. 강원도 이북의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자미식해는 가자미를 삭힐 때 좁쌀을 더한 것이다. '밥식해'는 생선을 삭힐 때 밥알을 더한 것이다. 예전에는 귀한 쌀을 사용하여 식해를 만드는 것이 그나마 부유한 집안에서나 가능했을 것이다. 낙동강 동쪽 지역인 경상우도인 경주, 안동에는 각각 밥식해와 고춧가루식혜가 명물이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음식이니 반드시 살펴볼 것을 권한다.

'팔우정'은 경주 최씨 사성공 배반파의 유허지다. 경주 최씨나 월성 최씨 혹은 그로부터 시작된 분파의 모든 시조는 신라시대 문장가 최치원이다. 멀리 따지자면 모두 최치원의 후손이다.

기록에 따라 13대 이상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더러는 300년이 아니라 500년 이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몇 대 몇 년이 중요하지는 않다. '최 부자 집안 전설'의 핵심은 역시 '절제와 나눔의 정신'이다.

더하는 음식이 아니라 빼는 음식은 맛이 맑다. 조미료, 감미료 투성이의 맛을 내는 음식을 많이, 빨리, 맵고, 짜게 먹는 것은 우리 시대 음식 문화가 하류임을 보여준다. 팔우정 부근의 '팔우정 해장국'은 조미료와 감미료가 절제된 해장국이다. 이집의 해장국은 묵해장국이다. 메밀묵을 썰어 넣고 대가리를 뗀 '두절(頭切)콩나물'을 넣는다. 해조류를 넣고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은 해장국이 시원하다. 해장국에 별다른 고기를 넣지 않고 끓인다. 더하는 음식이 아니라 양념이나 식재료를 최대한 줄이고 뺀 음식이다. 식재료마저도 절제한 것이다. 오늘날 해장국들이 "먹고 나서 오히려 속이 거북할 정도"로 양이 많고 기름지다. 우리는 속을 편하게 하려고 해장국을 먹으면서 오히려 속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금호할매추어탕
경주 인근 영천의 ''도 단출한 맛을 보여준다. 별다른 기교도 없이 그저 "원래 추어탕, 해장국 맛이 이렇다"고 말하는 것 같다.

경주에서 울산 가는 길의 ''도 가볼 만한 곳이다. 대구, 경북 지역에는 '경주'이름을 단 국수집들이 제법 있다. ''는 발로 디뎌서 반죽하는 국수다. 건져서 식힌 다음 내놓는 건진국시가 아니라 물에 넣고 삶아서 바로 내놓는 제물국시다.

고기를 먹고 싶다면 경주 외곽 아화의 ''을 권한다. 시골풍의 고기집이지만 고기질과 양 모두 만족스럽다.


삼릉칼국수
서면식육식당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