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자취’ 깃든 고유의 별미

‘이순신 장군의 밥상’ 관광 상품화…‘연포탕’등 본래 음식 재현 드물어
함양 ‘삼일 식육식당’ ‘대성식당’오래전부터 고기 다른 노포
통영 ‘원조밀물식당’ 깊은 맛, ‘어촌싱싱회해물탕’은 “착한식당” 평가
거제 해물요리 전문 ‘백만석’ 제대로 된 멍게 젓갈과 멍게비빔밥 수준급

“二十二日. 朝. 草溪倅備軟泡來勸。而多有敖慢之色(22일. 조. 초계졸비연포래권 이다유오만지색)”

설명이 필요하겠다. <난중일기> 중 1597년 6월22일(음력)의 기사다. 이날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 지금의 경남 합천군 초계에 있었다. 당시 초계는 전략적 요충지로 비중이 높은 도시였다. 가까운 곳에 도원수 권율 장군의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현직 신분은 ‘백의=계급이 없음’으로 도원수 권율 휘하의 ‘일개 병사’였지만, 전임 삼도수군통제사다. 조정에서 명령 불복종 등으로 밉보여 벼슬이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장군으로서 역할을 한다. 불과 1년 반 후 명량해전에서 목숨을 거두기 전에,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를 되찾았다.

지방수령으로서는 제대로 대우를 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홀대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호불호도 있었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 곁에도 찬성파와 반대파는 늘 있었다. 성웅 이순신 장군이 이런 대접을 받았다는 것은 퍽 재미있다.

“22일, 아침, 초계 군수가 연포(탕)을 마련하여 찾아와서 권했다. 얼굴에 오만한 기색이 완연했다.”

연포탕은 반가에서도 유용하게 사용한 음식이다. 한낱 끈 떨어진 ‘백의’에게 초계 군수가 대접할 음식은 아니다. 하지만 도원수가 귀히 여기는 사람이고 전직 삼도수군통제사다. 음식을 내오긴 했는데 얼굴에 오만한 기색이 완연하다. 이런 기록을 남긴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보는 것 같아 재미있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없으니 이날 이 음식을 어떻게 먹었는지, 또 뭐라고 했는지 등등 그 후의 에피소드는 없다. <난중일기>가 음식 레시피 책은 아니니 더 이상 찾아도 별 내용은 없다.

‘연포(軟泡)’에 대해서는 더 감감해진다. 조선후기의 기록에는 연포탕이 고급 음식으로 나온다. 닭고기 육수에 작게 썬 두부 꼬치를 넣고 보글보글 끓여먹는 음식이다. 이게 얼마나 고급 음식이면 여러 벼슬아치들이 연포탕에 술 몇 잔 먹은, 그래서 사치한 죄로 탄핵을 당하기도 한다. 귀양을 보냈더니 현지의 ‘친구 벼슬아치’와 연포탕을 먹었다고 탄핵당하는 일도 있었다.

홍만성의 <산림경제>에는 ‘연포탕’에 대한 내용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연포탕은 연두부탕이다. 연한 두부 국을 끓이는데 새우젓갈을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른바 연포탕 끓이는 법, ‘자연포탕(煮軟泡湯)’이다.

1597년 6월22일 아침에 초계 군수가 끓여온 연포탕이 닭고기 육수를 사용한 고급 연포탕인지 아니면 <산림경제>의 내용대로 새우젓갈을 넣은 연한 두붓국이지는 불확실하다. 어는 것이든 오만한 기색이 완연한 얼굴로 내온 것이니 이른 아침부터 시원한 국물 마시면서 기분이 그리 상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연포탕’을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경남 남해안 일대에서 새롭게 재현한 ‘이순신 장군의 밥상’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은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냈다. 삼도는 충청, 호남, 영남을 이른다. 이곳에 해당하는 해안은 서해안 일부, 남해안, 동해안 일부를 아우른다. 이순신 장군이 활동하지 않은 바닷가가 없다는 뜻이다. 어느 바닷가나 ‘이순신 장군의 밥상’을 만들어낼 의미가 있다. 그중 여수와 통영이 첨예하게 대립했지만 오늘날에는 동, 서, 남해안의 큰 해안 도시들이 모두 관광 상품으로 ‘이순신장군의 밥상’을 만들어 선보이고 있다.

문제는 어느 곳에서나 문제의 연포탕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숱한 음식전문가들이 매달렸는데 정작 연포탕은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낙지가 들어가고 두부는 없는 희한한 ‘낙지연포탕’이 대세다. 연포의 ‘포’는 거품이라는 뜻으로 두부를 의미한다. 연한 두부 탕에 나중에 들어온 낙지가 주인 노릇을 하는 셈이다.

조선시대 진주권은 초계를 시작으로 남쪽으로 함안, 함양, 의령, 진주, 진해 일대를 아우른다. 넓은 의미에서 이순신 장군이 주둔했던 통영과 거제 일대도 포함한다.

해산물이 풍부하고 내륙의 물산들도 쉽게 모을 수 있는 곳이다. 근래 통영이 관광지로 자리매김하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통영 일대를 찾고 있다. 통영의 바닷가 음식과 더불어 진주문화권의 음식들도 만나기를 기대한다.

마른 생선을 이용해 제사를 모시고 평소에도 법도에 맞는 음식을 먹는 지역이다. 예전의 음식을 재현하자는 것이 아니라 예전 음식의 ‘정신’을 되새기자는 뜻이다.

함양군 안의면은 중부권에서 영남 남해안으로 내려갈 때 들를 수 있다. 이곳의 ‘삼일식육식당’은 노포로 안의갈비의 시작이다. 내륙 깊은 곳의 외진 곳이지만 음식을 담는 그릇 하나도 허투르지 않다. 함양군 읍내 ‘대성식당’도 오래 전부터 고기를 만졌던 이 지역의 전통이 배어 있는 곳이다. 따로국밥, 해장국이 수준급이다. 두곳 모두 노포다.

통영에서는 ‘원조밀물식당’ ‘어촌싱싱회해물탕’ 등을 권한다. 관광지로 변하면서 식당들의 음식도 많이 달라진다. ‘어촌싱싱회해물탕’은 젊은 주인이 주방에서 직접 일한다. “착한식당”으로 선정된 집이다. ‘원조밀물식당’은 노포다. 늘 손님들이 밀려들지만 비교적 꾸준히 음식을 유지하고 있다. 통영 길거리에서 시인 백석의 시와 화가 이중섭 관련 유적을 만나는 것은 덤이다. 이순신 장군 관련 유적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멍게비빔밥을 만나고 싶다면 거제의 ‘백만석’을 권한다. 멍게 젓갈은 소금을 넣지 않고 만든다. 짜지 않고 향이 살아 있는 멍게 살로, 제대로 만든 비빔밥을 만날 수 있다.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