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한 맵시 돋보이는 칠성골
금남마을을 지나 심답마을로 들어서면 심심산골의 정수에 젖어들게 된다. 심답은 심곡(깊은골)과 답동(논골)의 앞 글자를 딴 마을 이름이다. 길 따라 늘어선 전봇대마다 귀여운 동식물 그림이 그려져 있어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감돈다. 옆으로는 칠성봉에서 발원한 중이천의 맑은 계류가 따라와 청량감을 더한다. 깊고 푸르른 못이 곳곳에 드리우고 맵시 있는 폭포를 거느린 지계곡들도 가지를 뻗어 한여름이면 피서객이 종종 찾아드는 호젓한 골짜기다.
그러기를 한 십여 리. 대항소라는 비경을 숨기고 있는 칠성봉산장 옆을 지나치면서 분위기는 다시금 돌변한다. 좁다란 시멘트 길이 굽이굽이 돌며 가파르게 기어오른다. 길이 있으니 갈 뿐, 과연 사람이 살고 있을지 의구심이 들 만큼 깊은 산속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오가는 산길에서 사람을 만나는 행운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맑은 하늘과 산 공기에 가슴이 부풀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콧노래 흥얼거리며 20분 남짓 가풀막을 오르면 남쪽으로 해발 910미터의 칠성봉이 웅장한 자태로 우뚝 솟아 있다.
옥수가 철철 넘쳐 농사짓기 좋은 산마을
잘 빠진 고목들이 늘어선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아늑한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 뒤쪽 산등성이에는 큼직한 당나무 몇 그루가 장승인 양 묵묵히 서서 나그네를 맞는다. 바깥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높은 산들이 에워싼 가운데 잔뜩 웅크리고 있는 이 마을이 바로 논골이다.
논골은 해발 500미터나 되는 고지에 올라선 산골이면서도 경작할 땅이 20만 평이 넘는 완만한 분지 마을이다. 이곳에 마을이 형성된 것은 넓은 경작지 외에 물이 풍부한 덕분이다. 칠성봉 자락에서 흘러내린 계류는 웬만한 가뭄에도 마르는 법이 없을 만큼 옥수가 철철 넘친다. 이처럼 기름진 농토 덕분에 산간벽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농촌의 전형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백두대간과 헤어져 남으로 뻗어 내린 낙남정맥은 삼신봉에 이르러 좌청룡우백호의 두 줄기로 갈린다. 동남으로 뻗은 우백호는 주산과 옥산을 거쳐 마산 쪽으로 이어지는 낙남정맥 본줄기이고, 남으로 뻗은 좌청룡은 시루봉을 거쳐 논골 뒷산인 깃대봉에 이른다. 깃대봉에서 남쪽으로 칠성봉에 이르는 20여 리의 힘차고 높은 산줄기는 논골에서 악양으로 넘는 길목을 가로막는 천연장벽 구실을 한다.
오지마을에서 찾은 희망의 실마리
지금은 좁다란 찻길이 청암 쪽으로 드리워 사정이 달라졌지만 옛 논골 사람들은 가까운 악양을 생활권으로 삼았다. 그래서 장 나들이를 할 때는 이 천연장벽 가운데로 난 배티재를 통해 왕복 대여섯 시간이나 걸어 악양장을 이용했다. 논골 고갯마루 삼거리에서 서쪽으로 가는 악양 옛길이 아직 남아 있어 옛사람들의 발자취를 더듬게 한다.
가까스로 농사지어 먹고 살아가는 판에 새마을운동의 기본시책인 지붕개량을 하려니 힘에 부칠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은 늘어나는 빚더미에 등이 휘어 하나둘 마을을 떠났다. 50호가 넘던 가구 수가 10여 호로 줄어들고 그나마 젊은이들은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세태의 흐름이리라. 자식들은 모두 대처로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땅을 부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당산나무의 수령으로 미루어보건대 마을이 생긴 지 최소한 300년은 넘은 듯싶은 이 마을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다른 오지마을의 운명과 별반 다르지 않게 쇠퇴의 길을 걸을 것인가? 올해 9월초 다시 찾았을 때 희망의 실마리를 보았다. 논 옆으로 번듯한 기와집이 신축되고 있었으며 어느 문중을 위한 재실인지는 모르지만 경모재도 들어서 있었던 것이다.
여행메모 ▲찾아가는 길=횡천에서 하동과 진주를 잇는 2번 국도를 벗어나 청학동 방면 1003번 지방도로 9.8㎞가량 달린 뒤에 금남길로 좌회전, 4.7㎞쯤 올라가면 논골에 닿는다. 대중교통은 하동에서 청학동행 농어촌버스를 타고 금남 정류장에서 내려 1시간 20분가량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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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신성순(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