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이 빚은 걸작 영남 알프스

고헌산, 가지산, 운문산, 사자봉, 재약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영취산 또는 취서산이라고도 함) 등, 경상북도 청도군과 울산광역시 울주군, 경상남도 밀양시와 양산시에 걸쳐 솟은 1천~1천2백 미터급 준봉들을 통틀어 ‘영남 알프스’라고 일컫는다. 숱한 고봉들이 다투어 솟았으면서도 하나의 거대한 산악군을 이룬 모습은 지리산에 버금갈 만큼 장엄하다. 낙동정맥이 빚은 최고의 걸작이라고 할 만하다.

고헌산-가지산-간월산-신불산-영취산을 잇는 산길은 낙동정맥 으뜸의 등산 코스지만 거리가 길고 상당한 체력이 요구되어 일반인은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 가운데 하나의 산만을 골라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도 그리 만만치는 않다.

영남 알프스가 거느린 명산 가운데 일반인이 손쉽게 다가갈 수 있으면서 다채롭고 아기자기한 자연경관을 품은 곳은 신불산 일원이다. 부드러운 초원 능선과 날카로운 암릉, 맑고 청아한 계곡과 시원스러운 폭포수, 광활한 고원의 억새밭 등, 산이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골고루 갖추었으면서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대자연이 베푼 혜택을 만끽할 수 있다.

신불산 등산로는 다양하지만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에서 간월재를 거쳐 오르는 코스 주변의 경관이 가장 아름답다.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은 다양한 크기의 숲속의집과 산림문화휴양관을 갖추고 있으며 하단지구와 상단지구로 나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들머리인 하단지구에서 상단지구까지는 멋들어진 계곡을 따라 약 2.3㎞의 산길이 이어져 있으며 1시간 남짓 걸린다.

배내골 지류에 숨은 비경 파래소폭포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 하단지구와 상단지구의 중간 지점에 자리 잡은 파래소폭포는 울산12경의 하나로 꼽힐 만큼 절경이다. 높이 15미터의 수직폭포인 파래소폭포는 부산‧울산‧양산 일원 주민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인 배내골 지류에 숨은 비경이다. 간월재 기슭에서 발원한 계류가 빚은 파래소폭포는 넓고 웅장한 암벽을 타고 쏟아져 내려 시원스럽고 그 아래로 깊고 짙푸른 웅덩이가 드리워 신비감을 더한다.

옛날 가뭄이 심했을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더니 바라던 바대로 비가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바래소폭포라고 불리다가 파래소로 음이 바뀌었다는 것. 지금도 휴양림 입구 벽련마을 주민들은 바래소폭포라고 부른다. 파래소폭포 주변 계곡은 가을 정취도 빼어나다. 가을에는 폭포의 물줄기가 약한 탓에 장쾌한 멋은 다소 떨어지지만 골짜기를 뒤덮은 고운 단풍이 가슴까지 진하게 물들인다.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 상단지구에서 간월재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임도가 두 가닥 드리운다. 하나는 휴양림 상단지구 직전에 오른쪽으로 뻗은 길이고, 다른 하나는 휴양림 상단지구를 지나 만나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어느 길로 가든 시간은 1시간 남짓으로 엇비슷하게 걸리지만 이왕이면 후자를 택하는 것이 좋다. 도중에 빼놓기 아까운 명소인 죽림굴을 만나는 까닭이다.

‘한국의 카타콤바’ 죽림굴

옛날 굴 주변에 산죽이 많아 죽림굴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국내 유일의 석굴 공소(公所)였으며 ‘한국의 카타콤바’라는 별칭도 얻었다. 1840년부터 1868년까지 천주교 박해를 피해 많은 신도들이 이곳에 은신하며 예배드렸고, 주변에 움막을 짓고 토기와 목기를 만들거나 숯을 구워 생계를 이어갔다. 죽림굴은 1860년의 경신박해 때 최양업 신부가 4개월간 은신하면서 미사를 집전하고 마지막 서한을 작성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100명가량 들어갈 수 있는 넓은 굴로 앞에 소나무가 있고 계곡이 가깝다’는 구전(口傳)을 단서로 20년 가까이 찾아다녔던 박만선 신도가 1986년 발견했다.

드넓은 고원을 이룬 간월재는 바람도 쉬어 간다는 고개로 가을철 억새밭이 일품이며 휴게소와 대피소도 마련되어 있고 돌탑도 세워져 있다. 가을이면 억새밭 옆 데크에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산악인들도 종종 눈에 띈다. 해발 900미터의 간월재에서 40분가량 오르면 해발 1,159미터의 신불산 정상에 오른다. 처음에는 다소 가파른 비탈길이지만 이내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므로 그다지 힘들지 않다.

신불산에서의 조망은 시원스럽기 그지없다. 평평한 고원과 겹겹이 솟은 영남 알프스의 웅산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이색적인 풍광을 연출하는가 하면, 동쪽으로는 설악산 공룡능선을 연상시키는 암릉도 이어져 아기자기하고 다채로운 자연미를 만끽할 수 있다. 더욱이 가을이면 은빛 물결을 이루며 반짝이는 억새밭이 광활한 고원을 뒤덮어 장관이다. 특히 정상 남쪽 신불재 일원의 억새밭이 백미다. 신불산 정상에서 20분 거리인 신불재에서 1시간 20분쯤 내려오면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 하단지구로 되돌아온다.

여행 메모

▲찾아가는 길=서울산(삼남) 나들목에서 경부고속도로를 벗어난 뒤에 언양-밀양 방면 24번 국도-석남사 입구-배내고개-배내골을 거친다.

대중교통은 언양에서 석남사로 가는 버스를 탄 다음 배내골 방면 버스로 갈아탄다.

▲맛있는 집=언양은 불고기로 이름난 고장이다. 고르고 엷게 지방이 분포해 고기 맛이 좋다는 3년쯤 된 한우 암소를 사용하는 것이 언양 불고기의 특징이다. 냉동육이 아닌 생고기를 석쇠에 올리고 숯불로 구운 맛이 고소하고 부드러우면서 담백하니 일품이다. 언양 일원에 밀집한 불고기집들이 저마다 맛을 자랑하는데 그 가운데 언양기와집불고기(052-262-4884)가 가장 유명하다. 언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석지기 기와집을 개조한 이 식당은 모든 음식을 와사옥기(瓦舍玉器)에 담아내어 더욱 호평 받는다.



글ㆍ사진=신성순(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