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 없는 자유로운 음식…해장국 재료 다양

호남 음식 레시피 없는 한식과 가장 친밀

전주 ‘콩나물 국밥’ 토렴, 오징어 사용 독특

‘현대옥’토렴에 오징어 건더기와 육수

‘삼백집’ 하루 300그릇만 팔아… ‘웽이집’도 유명

‘일해옥’ 맑고 깔끔한 콩나물 국밥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해장국은 ‘국’이다. 국물 음식이다. 국물 음식, 국은 ‘갱(羹)’으로 표현했다. 한식 밥상의 중심은 밥이다. 우리 민족은 일상의 밥상과 제사 등의 주요한 밥상까지 널리 국을 이용했다. 쌀로 잘 지은 밥이 중심에 있다. 밥 곁에는 늘 국이 자리한다. 밥은 음이고 국은 양이다. 양과 음이 잘 어우러져 ‘평(平)’을 이루는 것이 곧 한식의 바탕이다.

국은 늘 밥과 더불어 자리한다. 밥이 없는 국은 없다. 국 없는 밥도 없고 밥 없는 국도 없다. 국이 없는 밥은 목에 멘다. 국을 먹지 않고 먹는 밥은 목이 메고, 견디지 못할 정도의 억울한 일을 당하면 우리는 목에 멘다. 그리움이 지나쳐도 목이 멘다. 우리는 국물 없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찬물에 밥을 말아 먹더라도 국은 있어야 한다. 찬물이 차라리 국물을 대신한다.

한국인들은 외국 음식인 햄버거 등을 먹을 때도 국물을 원한다. ‘햄버거의 국물’은 콜라 혹은 사이다다.

해장국은 우리 시대의 산물이다. 우리는 원래 국을 먹었으나 ‘밥반찬’ 혹은 ‘밥과 짝을 지어 먹는 음식’이었다. ‘술을 깨우는 국’은 우리 시대가 기획한 음식이다. 너무 널리 사용되니 마치 오랫동안 전해져온 전통 음식인 양 오해하고 있을 뿐이다.

호남의 음식은 자유롭다. 한식은 레시피가 없는 음식이다. 호남 음식은 레시피가 없다는 점에서 한식과 가장 친밀하다.

해장국의 재료는 정해져 있지 않다. 자유롭다. 생선이나 고기 등 동물성 단백질을 위주로 채소 등을 넣고 끓인다. 생선, 고기의 종류 등이 정해져 있지 않다. 종류도 부위도 자유롭다. 채소의 종류도 정해져 있지 않다. 우거지, 시래기 등을 자주 사용하는 곳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고 보관, 유통도 쉽기 때문이다. 콩나물도 마찬가지다. 멸치, 된장 등으로 육수를 만들고 편하게 구할 수 있는 콩나물로 국을 끓인다. 밥을 말면 콩나물국밥이다.

전주 토박이들은 “콩나물국이 전주 음식”이라고 입을 모은다. 의외로 비빔밥보다 콩나물국이 선호도가 높다. “어린 시절 바깥에서 사먹은 음식은 콩나물 국밥”이라고 표현하는 이들이 많다. 전주 인근 임실 등의 콩이 좋아서 콩나물 국밥이 발달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정확치는 않다.

지금은 체인화 된 ‘현대옥’은 전주 남부시장 깊은 곳에 있다. 물어서 찾지 않으면 가기 힘든 곳이다. 시장 통의 상인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위치가 시장 통 사람들이 아니면 접근하기 힘든 곳이다. 여전히 부분적으로 토렴을 한다. 토렴은 ‘퇴염(退染)’이라고도 하는데 차가운 음식을 뜨거운 솥의 국물 등에 적신 다음 몇 번씩 물기를 빼고 더한 것이다. 차가운 음식을 먹기 좋게 뜨듯하게 만든다. 국솥에 있는 국물의 맛을 차가운 밥에 배게 만든다.

전주의 콩나물 국밥을 둘러싸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가장 먼저 문제(?)가 된 것은 계란의 존재다. 원형 전주 콩나물 국밥에는 계란이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콩나물 국밥은 깔끔한 맛으로 먹는 것인데 계란은 국물 맛을 탁하게 만들기 때문에 넣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식 장사’를 하는 곳은 난처하다. 여러 번 “옆집은 계란을 주는데 왜 이 집은 주지 않느냐?”는 항의를 받으면 어쩔 수 없다. 결국 이집, 저 집 모두 날계란을 내놓게 된다. 오목한 그릇에 날계란 몇 개를 소복이 담아 놓는 집들이 유행하는 이유다.

이제는 사라진 수란(水卵)도 전주 콩나물 국밥 집에서 재현(?)했다. 예전에는 ‘난탕’ ‘난탕법’이라고 하여 지금의 수란 같은 존재가 있었다. 오목한 그릇에 계란을 깨 넣고 뜨거운 물에 중탕하여 내놓는 것이다. 계란이 붙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릇 안쪽에 참기름 등을 바르기도 했다. 난탕법의 수란은 계란이 귀한 시절 고급 음식이었다. 이 수란이 전주비빔밥의 ‘시끄러운’ 계란 대신 나타난 것이다. 상당수의 전주비빔밥 전문점에서는 수란을 제공한다. 날계란을 먹든, 말든, 수란을 먹든 말든, 소비자의 선택이다.

수란을 내놓을 때 사용하는 그릇도 재미있다. 밥공기보다는 적은 것이다. 이른바 ‘보시기’다. 보시기는 ‘보(甫)’ 혹은 보아(甫兒)라고 부르던 작은 그릇이다. 원래는 그릇의 중간 무렵이 오목하고 배가 부른 모습이었다. 보시기 비슷한 스테인리스 그릇을 주로 사용한다. 이제는 보시기란 이름도 자주 사용하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 김치 등을 담을 때 잘 사용했던 그릇이다.

전주 콩나물 국밥의 또 다른 특징은 오징어다. 남부 시장 안 ‘현대옥’의 경우 국밥 그릇 중간에 오징어를 세로로 꽂아 넣거나 국물 속에 오징어 토막을 넣는다. 해물로 육수를 냈다는 뜻이다. 주로 멸치 국물을 사용하지만 말린 오징어의 경우 훌륭한 육수 재료가 된다. 오징어가 한 토막 들어 있으면 멸치 대신 혹은 멸치와 더불어 오징어 육수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전주에는 전통이 깊은 콩나물 국밥 맛집들이 많다. ‘삼백집’은 하루 300그릇만 판다고 붙인 이름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들렀던 집으로도 유명하다. 오래 전에는 토렴을 했는데 이제는 직화로 끓여낸다. ‘웽이집’도 유명한 맛집이다.

맑고 깔끔한 콩나물 국밥은 전주 인근 익산의 ‘일해옥’에서 만날 수 있다. 멸치 육수의 맑은 국물이 수준급이다. “계란을 원하지 않는 손님들에게는 계란을 빼고 준다”고 써 붙였다. 국물 솥 위에 고추를 널어서 말리는 모습도 믿음직스럽다. 양념이나 매운 정도는 손님이 조정할 수 있다.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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