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상에서 맞는 베트남 하롱베이의 새벽은 몽환적이다. 열도 사이로 해가 솟고, 고깔모자 ‘농’을 쓴 아낙네의 나룻배가 숨죽인 바다를 가로지른다.

여명에 눈을 뜨면 유람선 창문 아래로 낯선 배 한척이 서성거린다. 섬에 기대 사는 주민들이 저어온 나룻배들이다. 하롱베이 주민들과 이방인과의 만남은 새벽녘 뜻밖의 소통으로 채워진다. 배 안에는 과일이며 해산물, 과자들이 담겨 있다. 열도의 중심에서 보낸 하룻밤은 그렇듯 독특한 잔영을 가슴에 새긴다. 생경한 바람에 시작됐던 섬의 군상들은 시간의 궤적과 함께 모습도, 색채도, 감동도 달리한다.

1700개의 희귀 섬과 수상마을

베트남 최고의 관광지로 손꼽히는 하롱베이는 약 1700개의 크고 작은 섬들과 희귀한 석회암 바위들이 도열한 곳이다. 이색 카르스트 지형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고 한때 제주와 함께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경합을 벌였다. 혹자들은 봉우리들이 현란하게 솟은 중국 계림과 견주기도 하지만 두 지역은 배경과 아웃라인이 다르다. 하롱베이 바다의 총 넓이는 1553 평방 km에 달한다. 하롱베이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언뜻 보면 섬들이 모양새는 구불구불한 용의 등을 닮았다.

하롱베이 투어때는 대형 크루즈에서 몸을 내려 수상마을을 방문해본다. 절벽만이 즐비한 ‘V'자 모양의 카르스트 지형은 섬 위의 삶터를 허락하지 않았다. 섬과 섬 사이에는 대신 수상가옥들이 들어서 있다. 벙비엥, 콩담, 쿠아반 등은 이곳을 대표하는 수상마을들이다. 수상마을 주민들은 낚시를 하거나 굴 양식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섬들 사이 수상가옥을 나룻배로 만나는 것은 달콤한 하롱베이 유람의 백미다. 거친 엔진 소리 대신 삐거덕 거리는 노젓는 소리가 정적을 깨운다. 고깔모자인 ‘농’을 쓴 뱃사공들의 미소가 눈가에 부서진다.

벙비엥 수상마을은 관광객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이다. 이마을에는 50여가구 20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 산다. 그물을 널어놓은 집 안으로 들어서면 TV도 있고, 개도 컹컹 짖는다. 일상의 단상은 여느 시골마을 풍경과 닮았다.

피난처와 삶터였던 카르스트 동굴

벙비엥 마을에서 나룻배를 타고 만나는 하롱베이의 속살은 두번째 탄성을 자아낸다. 담소를 나누던 구경꾼들도 자연스럽게 입을 닫고 눈을 연다. 잠시 정적이 바다길 작은 동굴 사이에 드러난 섬들 위에 내린다.

하롱베이를 더욱 이채롭게 단장하는 것은 곳곳에 들어선 석회암 동굴들이다. 이곳에서 동굴투어에 나서는 것은 필수 코스다. 탐쿵, 메쿵, 송솟 등 하롱베이를 대표하는 동굴들은 입구는 숲에 가려 협소해 보여도 안으로 들어서면 규모가 시원스럽다. 동굴들은 전쟁과 자연재해때 피난처와 삶터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중 송솟 동굴은 거대한 동굴 내부와 동굴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탐스럽다. 동굴 안은 수천명이 한꺼번에 모일 수 있는 거대한 광장과 종유석, 석순 등으로 치장돼 있다. 송솟 동굴의 별칭이 ‘놀람의 동굴’인데 섬 하나를 통째로 비워 웅대한 동굴이 똬리 틀고 있다는 사실은 하롱베이의 또 다른 반전이다. 이런 매혹의 하롱베이를 영화 관계자들이 놓칠리 없었다. 하롱베이는 영화 ‘인도차이나’, ‘굿모닝 베트남’의 주요 배경이었다.

바다 위 수산시장
예전 하롱베이를 채웠던 목선대신 최근에는 고급 크루즈 선박들이 바다 위를 유랑한다. 하롱베이의 바다에 몸을 담그고 싶다면 구명조끼 하나 받아들고 물에 뛰어들면 된다. 이곳 바다는 새벽만큼, 호수만큼 잔잔하다.

여행메모

▲가는길=인천에서 하노이까지 베트남항공 등 항공편이 매일 수차례 운항중이다. 베트남항공은 최신예 중대형기 A350편을 10월부터 취항해 180도 눕는 비즈니스석에서 이동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하노이까지는 약 4시간 소요. 입국에 별도의 비자는 필요 없다. 타도시로 이동할 경우 하노이에서의 스톱오버(1박 이상 체류)도 가능하다.

▲숙소, 음식=하롱베이의 크루즈는 1박 10만원~30만원대로 다양하다. 쌀국수와 구운 돼지고기를 곁들이는 ‘분짜’는 하노이의 가장 보편적인 음식 중 하나다. 고기, 야채 등을 얇게 싸먹는 ‘퍼꾸온’ 역시 별미다. 깊은 맛의 베트남 커피를 마시는 것도 놓치지 말것.

▲기타정보=베트남의 화폐단위는 ‘동’이다. 1000동이 약 50원. 달러로 가져간 뒤 현지 호텔 등에서 환전이 가능하다. 시차는 한국보다 2시간 느리다. 북부 지역의 연평균 기온은 23도로 대체로 더운 편이나 아침, 저녁에는 긴팔 옷이 필요하다. 북부는 11월~4월이 건기다.

나룻배 상인들

하롱베이 수상동굴
카르스트 지형의 송솟동굴
벙비엥 수상마을의 뱃사공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tour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