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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산, 단풍보다 눈부신 설국을 만나다

장수 영취산에서 백두대간과 갈라진 금남호남정맥은 마이산을 지나 주화산에 이르러 북으로는 금남정맥, 남서쪽으로는 호남정맥이라는 가지를 친다. 호남정맥은 주화산에서 광양 백운산에 이르기까지 약 400㎞를 내달리는 산줄기로 도중에 정읍의 명산 내장산을 빚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정혜루기’에 따르면 정읍 내장산은 남원‧구례 지리산, 영암 월출산, 장흥 천관산, 부안 능가산(변산)과 더불어 호남의 5대 명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내장산은 장군봉-연자봉-신선봉-까치봉-연지봉-망해봉-불출봉-서래봉-월영봉 등의 ‘내장9봉’이 말발굽 형상으로 휘어지며 이어진 산세가 개성 짙은 풍광을 보여준다.

내장산(內藏山)은 숨기고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리저리 굽어 꺾인 계곡이 양(羊)의 내장과 흡사해 많은 인파가 몰려도 계곡 속으로 들어가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불리는 것이라는 설도 있다. 또는 이태조의 영정과 조선왕조실록을 감추어 두었던 산이어서 내장산이라고 일컫는다는 말도 있는데 이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롭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왜군이 전주를 압박해오자 경기전 안의 전주사고에 보관하던 조선왕조실록을 지키는 일이 다급해졌다. 이에 전라감사 이광은 손홍록과 안의에게 왕조실록을 내장산으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두 선비는 머슴 30여 명을 이끌고 경기전으로 달려가 그곳을 지키는 참봉인 오희길과 함께 6월 22일, 왕조실록을 비롯한 소장서적을 내장산 은봉암으로 옮겼다. 이어 7월 1일에는 이태조의 영정을 내장산 용굴암에 봉안했다. 그 후 7월 14일에는 실록을, 9월 18일에는 영정을 내장산 비래암으로 옮겼다.

이로써 조선왕조실록은 해주를 거쳐 묘향산 보현사로 옮겨지기 전까지 내장산에서 370일 동안 무사히 보존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서울의 춘추관, 충주사고, 성주사고가 불타 실록이 소실되었지만 유일하게 전주본만이 전화를 피해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이다.

우화정을 감싼 신비로운 설경

내장산 하면 누구나 단풍을 떠올린다. 해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략 11월 초순 무렵에 절정을 이루는 내장산 단풍 터널은 약 3㎞에 걸쳐 이어지며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일주문과 내장사 사이의 단풍 숲은 1892년, 백팔번뇌를 벗으라는 상징적 의미로 승려들이 108그루의 단풍나무를 심음으로써 조성되었으며, 집단시설지구에서 일주문에 이르는 길에는 1970년경에 심은 당단풍들이 펼쳐진다.

내장산을 찾는 탐방객의 3분의 2가량은 단풍철에 몰린다. 그래서 다른 계절에는 한적하지만 내장산은 사철 모두 아름답다. 봄의 신록과 산벚꽃, 여름의 짙은 녹음과 시원한 계곡도 좋지만 특히 눈부신 겨울 설경이 매혹적이다. 지형적인 영향으로 눈이 자주 내리는 까닭이다.

그러나 전문 산악인이 아니라면 미끄러운 눈길을 헤치고 등산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일반인이 손쉽게 내장산 설경을 감상하려면 눈꽃 터널로 변신한 진입로를 따라 우화정을 거쳐 내장사를 둘러본 다음,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 오르는 것이 좋다.

신선제(神仙堤)라는 아담한 호수에 세워진 우화정(羽化亭)은 우화등선(羽化登仙)이라는 고사성어에서 따온 말이다. 옛날 신선들이 여기서 바둑을 두었는데 어느 날 정자에 날개가 돋아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이어져 내려온다. 늦가을 단풍 촬영장소로 사랑받는 우화정은 겨울철 얼어붙은 호수와 정자 지붕 위에 푹신하게 쌓인 눈 풍경도 신비롭다.

내장산 연봉이 병풍처럼 두른 내장사

본디 내장산에는 636년(백제 무왕 37) 영은조사가 창건한 50여 동의 대가람인 영은사와 660년(백제 의자왕 20) 유해선사가 세운 내장사가 있었다. 그러다가 1539(중종 34) 승도탁란사건(僧徒濁亂事件)이 일어나자 중종은 도둑의 소굴이라며 내장사와 영은사를 소각했다. 그 후 1557년(명종 12) 희묵이 영은사 자리에 법당과 요사를 세우고 절 이름을 내장사로 고쳤다. 지금의 내장사는 정유재란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소실된 것을 1970년대에 대규모로 중건한 것으로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49호인 내장사 동종을 품고 있다.

내장사는 내장산 연봉이 병풍처럼 둘러친 경관이 아름다운데 특히 서래봉이 눈길을 잡아맨다. 내장산 최고봉은 해발 763미터의 신선봉이지만 가장 돋보이는 봉우리는 서래봉(622미터)이다. 서래봉은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약 1㎞에 걸쳐 늘어서서 장관을 이룬다. 서래봉(西來峰)은 ‘달마대사가 서쪽으로부터 왔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흙을 고르는 농기구인 ‘써레’와 생김새가 흡사해 써레봉이라고도 일컫는다.

우화정 옆 승강장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사오 분만에 상부 승강장에 다다른다. 인적 뜸한 겨울에는 단풍철과 달리 기다릴 필요도 없다. 상부 승강장에서 300미터가량 평탄한 길을 걸은 뒤에 층계를 오르면 전망대에 닿는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눈 덮인 내장산 연봉들이 장쾌하게 펼쳐지고 저 아래로는 우화정이 한 폭의 멋진 동양화를 그려낸다. 별다른 수고 없이 눈부신 설경을 마주한다는 것이 송구스러운 순간이다.

▲찾아가는 길=내장산 나들목에서 호남고속도로를 벗어난 뒤에 내장사 이정표를 따라간다.

대중교통은 정읍 시내버스 이용.

▲맛있는 집=내장사 입구의 식당들은 산채정식을 주로 내는데 그 가운데 삼일회관(063-538-8131)이 가장 유명하다. 뜨겁게 달군 돌판에 얹어 나오는 송이구이, 팽이버섯구이, 불고기를 비롯해 온갖 산나물 등 30가지쯤의 반찬이 오르는 삼일산채정식이 진수성찬이다. 양념이 진하면 나물의 담백한 맛이 사라지므로 초고추장, 된장, 멸치 달인 물로 적당히 나물을 무치고, 나물의 숨이 죽지 않도록 상에 오르기 직전에 버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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