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씨(杏仁), 기침과 천식 치료에 탁월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은 고려 후기인 1377년에 만들어졌고, 구텐베르크에 의한 서양의 금속활자 인쇄술은 1450년 경에 완성되어 금속활자 인쇄술이 우리나라가 세계최초인 것은 맞다. 보통 인쇄술의 발달은 서적의 편찬 기회가 늘어나 전 사회 구성원의 지적인 역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서양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의해 그 이전에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려웠던 성서를 대량으로 공급하게 됨에 따라 많은 대중들이 접하게 되었고,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루터는 1517년 교황의 면죄부 판매를 포함해서 교회가 저지른 95가지 부패를 말한 ‘95개조 항의문’을 전 유럽에 배포하게 되어 기독교의 불씨를 만들었다.

반면 금속활자를 제일 먼저 만든 조선은 서적의 출판과 배급을 국가가 모두 도맡아 하게 되었다. 이런 차이는 지도층이 백성을 대하는 차이이기도 하지만 언어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조선은 대부분의 서적을 한문으로 인쇄한 관계로 책 한권을 출판하는 데 필요한 활자수가 10만개에 달했던 반면 서양의 인쇄술은 기껏해야 알파벳 대문자 소문자를 크기 별로 갖춰 놓았으면 됐을 따름이다. 그래서 10만자의 활자를 구리로 만드는 것은 여간 큰 재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경우라 민간에서 책을 편찬하기란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서점도 영조 후기에야 그것도 국가의 필요에 의해서 개설되어 대부분의 필요한 책은 빌려서 필사를 하는 것으로 지식을 구걸한 상태였다. 또한 금속활자로는 왕실의 중요한 문서만 몇 장 찍을 뿐이었으며 대부분은 나무로 만든 활자인 목활자로 출판하였다. 활자를 고정하는데 초기에는 밀랍을 판에 녹여서 그 위에 금속활자를 고정했지만 인쇄하는 동안 많이 흔들려서 품질이 떨어지는 일이 벌어지자 세종 때부터는 활자를 직육면체 같은 입방체로 만들고, 글자를 배열하는 식자판(植字版)에 활자를 놓고 빈 공간을 쇄기모양의 나무 조각으로 단단하게 고정해서 종전보다 인쇄량과 인쇄 효율 뿐 아니라 인쇄의 품질을 올리게 되었다. 근대적 인쇄소는 1883년 대한제국에서 설립한 ‘박문국’이었으며 ‘한성순보’를 발간했다. 최초의 정부 대변지 같은 느낌이 드는 신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위에서 말한 것 같이 양반들도 서적을 구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는데 중인 신분인 한의사들은 더 말 할 나위 없었다. 1923년에 ‘행림서원’이 들어서 대량으로 한의서를 출간하면서 한의사들의 지적인 욕구를 마음껏 채워 주었다. 행림(杏林)은 살구나무 숲이라는 뜻이다. 치료비를 받는 대신 살구나무를 심게 해서 그게 나중에 숲을 이루어서 붙인 말이다. 행림은 통상 ‘한의원’ 혹은 의료기관 정도의 뜻이 된다. 살구씨를 행인(杏仁)이라 부른다. 보통 행인이라면 은행나무 씨앗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은행나무 씨앗은 백과(白果)다. 행인과 백과는 지해평천약(止咳平喘藥)이다. 지해(止咳)는 해수(咳嗽) 즉 기침을 그치게 한다는 뜻이고 평천(平喘)은 천식으로 호흡이 문란해진 것을 고르게, 평탄하게 한다는 뜻이다. 기침이 날 때 가래가 없이 기침만 나는 것을 해(咳)라고 하고 색색 소리가 없이 가래만 나오는 것을 수(嗽)라고 하고 둘 다 있는 것을 해수(咳嗽)라 한다. 동의보감이나 방약합편에는 해수와 천식에 대한 분류가 너무 많고 자세해서 처방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어 청감의감에 있는 처방이 추천된다. 다 해서 7개 내외다.

다시 행인으로 돌아가자. 행인은 성질이 약간 따뜻하고 독이 있으며 맛은 쓰고 맵다.(苦辛) 행인이 기침과 천식을 치료하는 방법은 기운을 강력하게 아래로 끌어 내리는 방법이다. 이를 강기(降氣)라 한다. 100m를 전력으로 달리기 하고 숨찬 모습이나 가파른 산길을 등산하고 숨을 헐떡이는 모습 모두 기운이 위로 쏠리는 것인데 이를 아래로 끌어내리면 호흡이 고르게 되면서 숨찬 것이 없어지는 원리와 같다. 거기다 씨앗이라 기름이 풍부한 관계로 대변을 잘 내보낼 수 있다. 행인은 쓴맛이 나는 고행인(苦杏仁)과 단맛이 나는 첨행인(甛杏仁)이 있다. 일반적인 기침과 천식은 고행인을 많이 쓰고 기운이 빠져서 온 노수(勞嗽)는 첨행인을 많이 쓴다.



하늘꽃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