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지구(和中止嘔) 외 발표해서(發表解暑) 기능도…감기ㆍ소화불량에도 써

어릴 때 누구나 한번쯤은 배탈이 나거나 설사를 하면 어김없이 고약한 냄새가 나는 정로환을 온갖 인상을 쓰면서 목구멍으로 넘긴 기억이 있을 것이다. 정로환에는 제국주의를 신봉하면서 끊임없이 정복전쟁을 일삼던 일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1900년 중국 의화단 사건으로 러시아가 만주로 진격해서 주둔하게 되자 만주를 넘어 대륙정복을 꿈꾸던 일본에겐 러시아가 눈에 가시였다. 호시탐탐 러시아를 칠 기회만을 노리다가 1904년 제물포에서 러시아 해군을 기습하고 1905년 러일전쟁의 최대 승부처인 봉천전투에서 승리하게 되어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고 중국대륙으로 가는 관문을 확보하게 된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문제는 이 때에 발생한다. 일본군이 만주의 기후와 풍토, 물에 적응하지 못하고 복통과 설사를 호소하게 된 것이다. 그 이전 청-일 전쟁 때도 비슷한 일을 겪었던 일본은 1902년 다이코 약품회사에서 크레오소트(Creosote, 목초액)를 주성분으로 개발한 환약을 병사들에게 대량 살포하게 된다. 그 약의 이름이 정로환(征露丸)이다. 정로환은 ‘로서아(露西亞, 러시아의 한자음)를 정벌(征伐)하는 데 보급된 환약’이란 뜻이다. 물론 그 이후에 ‘정복하다’라는 뜻을 가진 정(征)자에서 바르게 하다는 정(正)자로 이름이 바뀌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히 성분과 제형변화를 가져와 현재는 주성분인 크레오소트에 세균을 살균하는 작용이 강한 한약재인 황백(黃白)과 설사를 멎게 하는 이질풀인 현초(玄草)를 가미해서 당의정(糖衣錠:달달한 것을 표면에 코팅한 환약)형태로 만들어 먹기 편하게 하였다.

한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부작용이 없으면서 이질이나 식중독 설사에 사용한 처방이 있었는데 그 처방의 주 재료가 오늘 말하려고 하는 곽향(藿香)이란 한약이다. 곽향은 광곽향과 배초향이라 불리는 곽향의 모든 부위를 한약재로 쓴다. 광곽향은 중국에서 주로 자생하고 곽향은 중국과 우리나라 모두에서 자생한다. 곽향의 성질은 따뜻하고 독은 없으며 맛은 맵다. 방향화습(芳香化濕)의 효능이 있어 입맛을 좋게 하고 소화를 잘 시켜주므로 비위(脾胃)의 경락으로 들어간다. 소화되지 않는 음식물 즉 습탁(濕濁)이 명치나 위장을 막고 있을 때 습탁을 밖으로 배출시키려고 위장이 구역질하게 된다. 습탁을 제거해서 속을 편하게(和中)하면 구역질도 자연스레 수그러들게 된다. 이를 화중지구(和中止嘔)라 하는데 가운데를 편하게 하고 구역질을 멎게한다는 뜻이다. 곽향은 다른 방향화습약과는 달리 발표해서(發表解暑)의 기능이 추가적으로 있다. 발표(發表)는 표면의 근육 사이에 있는 사기(邪氣)를 몸 밖으로 날려버린다는 뜻이고, 해서(解暑)는 더위로 인해 피부와 근육에 잠재되어 있는 잠열(潛熱)을 날려 피부를 식힌다는 뜻이다. 곽향은 특히 성미가 건조하지도 않고 열이 많지가 않아서, 표(表)에서는 발표(發表)를 하고 리(裏)에서는 화중(和中)을 하는 등,표리(表裏) 모두에 작용하는 특이한 한약재다. 한의학에서 일반적으로 표(表)는 감기, 리(裏)는 소화불량으로 대체로 본다. 곽향은 감기에도 소화불량에도 다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성질이 따뜻하고 매운 것 때문에 음허(陰虛)해서 화기(火氣)기 치솟아 오르는 증상에는 쓸 수 없다. 박하와 소엽(蘇葉)은 둘 다 표리(表裏)-즉 감기(表)와 소화장애(裏)에 작용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단지 박하는 방향화습(芳香化濕)이 우선이라 소화기에 먼저 작용하고 이로 인해 부수적으로 발생된 감기를 부차적으로 치료하는 반면, 소엽은 발산풍한(發散風寒)이 우선이라 감기를 먼저 치료하고, 오랜 감기로 발생한 소화장애를 그 다음에 치료하는 차이가 있다. 곽향과 향유(香薷)라는 한약재는 여름철 감기를 치료하는 발표해서(發表解暑)하는 작용이 똑같이 있다. 곽향은 비장의 기운을 깨워서 입맛이 돌게 하고 위장의 소화를 도와주는 성비개위(醒脾開胃)의 효능이 우선인 반면에 향유(香薷)는 땀을 내어서 여름철 감기를 치료하고 더불어 물길을 열어서 밖으로 배출하는 이수소종(利水消腫)의 효능이 더 크다. 곽향은 창출(蒼朮), 후박(厚朴), 반하(半夏)같은 한약재와 잘 어울려 놀면서 우리들의 입맛이나 소화기능을 북돋아 준다.



하늘꽃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