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로 가장 유명한 곳은 전남 구례군 산동면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산수유나무가 자라는 곳은 전북 남원시 주천면의 용궁마을로 알려져 있다. 해발 1,048미터의 지리산 영제봉에서 내려오는 완만한 경사지에 자리 잡은 용궁마을에는 용에 얽힌 전설이 내려온다. 옛날 지리산 기슭에 11마리의 용이 내려와 살았는데 한 마리는 달궁마을에, 나머지 열 마리는 이곳 용궁마을에 터를 잡았다는 것이다.
이 마을에 살던 용들이 승천한 후, 이곳을 지나던 도선국사는 용들이 100년만 더 살았더라면 최고의 길지가 되었을 거라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러더니 음양오행의 중심이 되는 노란색 꽃을 피우는 산수유를 심으면 복이 올 것이라며 자신의 산수유나무 지팡이를 땅에 꽂았는데, 그 후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었다는 전설이다. 이때가 신라 진성여왕 시기인 890년 무렵이라고 하니 1,100년도 훌쩍 넘은 셈이다.
바다 속 용궁을 떠올리게 하는 비경의 꽃밭
용과 도선국사에 얽힌 전설은 허황된 이야기로 들리지만 용궁마을에는 1,100년이 넘은 산수유 시목이 여전히 꽃을 피우고 있다. 이 마을은 무리 지어 핀 산수유 꽃밭과 돌담, 옛집들이 어우러져 아늑한 고향에 온 듯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다른 어느 곳보다 꽃봉오리가 크고 색감도 도드라진다. 마을 뒷산 지리산 영제봉은 아직 하얀 눈을 덮어 쓰고 있지만 마을에는 시나브로 봄이 깊어 간다.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샛노란 산수유 꽃밭은 해초들이 물결 따라 일렁이는 바다 속 용궁을 떠올리게 하는 비경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부흥사로 몰려들자 이를 우려한 고승, 선사들이 파근사로 절 이름을 바꾸었다. 그랬는데도 계속해서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자 빈대를 잡아 풀었는데 빈대가 너무 많이 불어나서 마침내는 사람들이 견딜 수 없게 되었고 이에 따라 절도 폐사가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지금은 파근사지라는 절터의 자취만 남아 있으며 중터, 왕답, 너들검, 명대세 등, 들이나 골짜기 이름이 먼 옛날을 더듬게 한다.
생육신 김시습의 <금오신화> 무대였던 만복사 옛터
용궁마을을 찾은 김에 인근 남원의 명소도 살펴보면 한결 다채로운 여정이 되리라. 광한루원이야 워낙 유명한 곳이어서 새삼스레 소개할 필요가 없겠으나, 만복사지는 둘러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데도 이상하게 찾는 이가 별로 없어 한적하기만 하다.
남원역 인근 왕정동의 너른 벌판에 자리 잡은 만복사지(萬福寺址)는 1991년 3월 사적 349호로 지정되었다. 고려 문종(재위 1046~1083년) 때 창건된 만복사는 구리로 만든 높이 35척(약 10미터)의 거대한 불상을 모신 2층 법당과 5층 목탑을 갖추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목탑을 가운데 두고 동‧서‧북쪽에 법당을 둔 일탑삼금당(一塔三金堂)식 배치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전성기에는 많은 전각과 수백 명의 승려를 거느린 큰절이었으나 정유재란 때인 1597년 소실되었다.
만복사는 생육신의 하나인 매월당 김시습의 자취가 어린 곳이기도 하여 소중하다. 김시습이 집필한 <금오신화>에 실린 소설 가운데 하나로, 산 남자와 죽은 여자 혼령과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만복사저포기>의 무대였던 것이다.
■ 여행 메모
▲찾아가는 길=오수 나들목에서 순천완주(27번)고속도로를 벗어난 다음, 남원 방면 17번 국도-율치 교차로(남원시내 쪽이 아니라 구례 방면 우회도로 이용)-고죽 교차로-19번 국도를 거치다가 육모정 교차로에서 주천 쪽으로 들어온다. 주천에서 용궁리는 불과 2km 남짓한 거리다.
대중교통은 전라선 열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남원으로 온 다음, 주천 방면 시내버스로 갈아탄다.
글ㆍ사진=신성순(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