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라이프

<이야기가 있는 맛집(218)> 임실 태양건조 백양국수

‘자연’과 ‘땀’으로 빚은 유일한 국수

부부의 국수 만든 세월 93년…티끌 없는 ‘한길’

백양국수는 밀가루, 천일염에 바람, 햇볕, 습기, 구름 더해져

이제 속성 국수만 남고 햇볕에서 숙성시킨 국수는 사라져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

“이제 백년이 다 되었나요?”라고 물었다. 부부가 국수 만든 세월의 ‘길이’를 묻는다.

“아즉 백년은 안되었지?”라고 답한다. 남편 곽강찬 씨는 일흔다섯, 아내 이명희 씨는 예순여덟이다. 서른 살과 스물세 살에 결혼했다. 혼인 후, 국수공장을 시작했다. 손에 쥔 돈이 없어서 문중에서 쌀 열가마니 값을 빌렸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할 줄 아는 일이 이것뿐이라서’ 국수를 만들었다. 각각 45년의 세월이다. 처음엔 허가도 없었다. 무허가로 벌금도 냈다. 고단한 시절, ‘있는 것은 없는 것’ 뿐인 젊은 부부가 할 일은 국수 열심히 만드는 것이었다. 여전히 어려웠다. 국수를 만들어놓고 남편은 따로 공사장에 다녔다. 순둥이 남편은 어디 가서 “우리 국수 사라”는 말도 제대로 못했다. 국수를 자전거에 싣고 국수 팔 곳에 갔다가 말도 붙이지 못하고 되돌아오기도 했다.

남편은 결혼 전 서너 해, 국수 공장에서 일했다. 굳이,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부부의 국수 만든 세월은 93년이다.

“국수 만들면서 한 세월 보냈어”라고 말한다. 누구나 쉽게 하는 ‘한평생’이라는 말과는 울림이 다르다.

국수는 밥 만드는 일과 같다. 박력분 밀가루에 강력분을 조금 섞는다. “밥에 찹쌀을 쬐금 넣으면 밥이 차지제?” 차진 국수를 위해 박력분에 강력분을 더한다. 오랫동안 국수 만들면서 자연스레 터득한 이치다. 학교에서 배운 공부로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보기 드문, 자연건조 ‘백양국수’를 얻는 것 역시 미련함이 우선이다. 밀가루를 반죽한 다음 롤러에 밀어 넣는다. 납작한 반죽을 접어 다시 넣고, 다시 넣는다. 이 과정을 여덟 번 한다. ‘국수 맹그는 이’들은 누구나 아는 과정이다. 이렇게 해야 제대로 된, 쫄깃한 국수를 얻을 수 있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녀. 귀찮으니 안 하는 거여”

반죽을 제대로, 여덟 번 롤러로 밀지 않으면 국수 가락의 탄력은 떨어진다. 백양국수를 끓이거나 먹어본 사람들은, 백양국수는 물 국수로 만들어도 쉬 풀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면의 탄력도 그대로고, 삶았을 때 뿌연 국물도 많이 나오지 않는다. 비빔국수나 볶음으로 만들어도 그만이다. “파스타로 만들어도 된다”는 이들도 있다.

‘태양건조국수’는 국수를 말릴 때의 과정에 ‘알려진 비밀’이 있다. 실내 응달에서 얼마간 국수의 몸을 만든 다음, 햇볕에 내건다. 다시 실내로 들였다가 또 바깥에 내건다. “겨울이면 한 달씩 걸릴 때도 있어”. 국수가 잘 되는 날은 추석 무렵이다. 이때는 사흘 정도에 국수를 완성하는 경우도 있다. 겨울에는 평균 보름 이상이 걸린다.

“볕에 말린 놈은 풀어지지 않아. 보일러로 불 때고 억지로 말린 놈은 물에 넣으면 흩어져. 밀가루에 힘을 보태줘야 국수가 되제? 힘이 없으면 풀어져”. 밀가루와 간수 뺀 신안 천일염, 물이 재료의 모두다. 여기에 바람, 햇볕, 습기, 구름을 더한다.

햇살이 좋은 날은 습도가 부족해서 제대로 된 국수를 얻을 수 없다. 강한 볕에 빨리 말린 국수는 쉬이 부러진다. 너무 흐린 날에도 국수가 제대로 마르지 않는다. 실내와 바깥을 한 달씩 오가는 경우도 있다. “나도 잘 모르겄어, 국수는…. 비 오기 전에는 머리카락으로 습도를 느껴. 그럴 땐 바로 국수를 안으로 들여야제”.

열두 살부터 곽강찬 씨는 스스로 일해서 먹고 살았다. 고향 임실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서울에서 장갑공장 일도 했다. 스물일곱 살 되던 해, 주민등록을 하려고 고향에 왔다. 친척이 국수공장 일을 잠시만 도와 달라고 해서 처음 국수를 만졌다.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친척의 국수공장에 눌러 앉아 ‘국수 맹그는 일’을 계속했다. 그 일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내 이명희 씨는 고향이 나주 남평이다. ‘노름 좋아하는 아버지’가 재산을 다 날렸다. 가족들은 이곳저곳 떠돌아 다녔다. 인연이 닿아 결혼을 했고 임실에 주저앉았다.

아쉽게도 이제 백양국수는 오래지 않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부부 중 한 사람이라도 아프면 백양국수는 만날 수 없다. ‘좋은 날은 국수 만들기 좋은 날’이라는 이 부부의 국수 만드는 일을 이어갈 이가 없다. 전국적으로 팔린다지만 수입은 보잘 것 없다. 물가가 여러 번 올랐지만 국수 가격은 여전히 한 묶음 2Kg에 5천원. 임실의 회사에 다니는 아들은 늘 “회사 일이 힘들다”고 투정한다. 그래도 국수공장 일을 하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셈을 해보면 국수 만드는 일을 하라고 등을 떠밀기도 어렵다. 이제 곧 열풍으로 짧은 시간 말린 국수만 남을 것이다. 오랫동안 햇볕에서 숙성시킨 국수는 사라질 것이다.

백양국수를 만날 수 있는 곳

백양국수

전화주문도 가능하다. 전북 임실군 임실읍 이도리 670-10. 전화 063-642-2339. 2Kg*7뭉치=14Kg으로 배송. 넉넉한 70인분이다. 가격은 3만5천원. 배송비 별도.

행운집

임실군 강진면의 소박한 국수집. 백양국수로 물 국수(잔치국수), 비빔국수를 낸다. 돼지수육도 별미. 겉절이 등도 아주 좋다.

별내 황소한마리육개장

백양국수를 육개장에 얹어서 낸다. 여름에는 백양국수를 이용, 콩국수를 내놓는다. 쫄깃한 면발을 제대로 살린다.

임실읍내 시장통 음식점들

시장 내 몇몇 집들이 백양국수를 이용, 순대국수 등을 내놓는다. ‘백양국수’에서 확인하면 사용하는 집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음식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사진 캡션

-백양국수 곽강찬, 이명희 부부

-곽강찬씨의 국수 만드는 모습

-태양 건조시키는 백양국수

-행운집

-별내 황소한마리육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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