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라이프

<따뜻한 병원 & 착한 달리기> 의사는 가끔 MRI보다 신통하다

환자와의 리듬이 맞으면 보이는 것들

달려라병원 이성우 원장

정형외과 분야에서 MRI(자기공명영상)가 차지하는 비중은 참으로 크다. MRI가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질환을 찾아냈을까 싶을 정도로 21세기 정형외과분야에서 MRI의 역할은 대단하다. MRI는 쉽게 말해 자석을 이용해 영상을 만들어 이를 판독하는 것이다. 엄청 큰 자석으로 구성된 장치에 사람을 눕히고, 자기장을 이용한 고주파를 쏘여 인체 내에 존재하는 수소원자 핵에서 발생되는 신호를 분석해서, 각 조직과 구조물들의 공명현상의 차이를 계산해 영상을 구성하는 것이랄 수 있다.

MRI로 칼럼을 시작해놓고 정형외과 전문의 그 중에서도 척추전문의로서 과학을 벗어난 이야기를 꺼낸다는 게 좀 어색하다. 하지만 MRI도 못잡아내는 질환을 환자와의 대화 속에서 의사의 직관으로 찾아낼 때가 있는 걸 보면, 의사가 때론 첨단기기보다 나을 때도 있는 것 같다. 물론 때로 그렇다는 말이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실제로 정형외과 진단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MRI가 보편화되기 전에는 X레이나 CT가 진단에 주로 쓰였다. 특이한 점은 MRI가 없던 시절에도 ‘X레이 판독도사’들이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X레이 사진만으로도 MRI로 촬영해 판독하는 것보다 훨씬 정확하게 질환을 찾아내곤 했다. 영상의학과 전문의 선생님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실제 사례에서 전율이 느껴질 정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3년전 친구 아버님이 병원으로 찾아오셨다. 걷기 어려울 정도로 다리가 당기고 아파서라고 하셨다. MRI 검사상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제4∼5요추 사이 전방전위증을 동반한 심한 척추관 협착증이었다. MRI로만 보면 당연히 수술적 치료를 권했어야 했지만, 아버님이 운동이나 활동에 적극적으로 열심히 임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분 삶의 리듬을 존중하고 맞춰보겠다는 마음으로 비수술치료로 가장 효과적인 신경성형술을 먼저 시행했다. 그런데 이후 깜짝 놀랄 정도로 증상이 나아지셨고 생각대로 재활도 꾸준히 해주셨다. 3년 간은 아주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신 것이다.

한달 전, 친구가 아버지를 다시 모시고 왔다. 최근 들어 다리가 불편하신 증상이 조금씩 심해지시더니 다시 예전같이 5분정도 걸을 때에도 너무 천천히 걷고 힘겨워하신다고 했다. 다시 MRI 검사를 해보니 이전보다 조금 더 진행된 상태였다. 지난 번까지는 기존의 활동력과 꾸준한 관리로 인한 근력에 적절한 주사치료가 더해져서 생활 리듬이 유지가 되었지만 한계는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는 필자가 MRI보다 환자의 생활 리듬을 느끼고 적절한 치료법을 찾아내었던 것이고 이제는 MRI가 좋은 해결책을 내 준 것이라 생각한다. 그에 맞추어 수술을 받으셨다. 수술 후에 다리가 너무 가벼워서 좋다고 하신다.

3년 전에는 비수술치료에 삶의 리듬과 속도가 맞았었다. 그 후로 3년 이제는 수술을 받고 나서 다시 예전보다 활동적인, 즉 좀 더 빨라진 삶의 리듬과 속도에 만족하신다. 의사가 환자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에서 치료는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MRI와 같은 진단 도구가 단순히 가르쳐주는 대로만 하는 것은 치료가 아니다.

필자는 의사나 의료진의 이런 능력이 환자와의 소통을 위한 ‘리듬 파악’에서 발현되는 게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필자가 최근 읽은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책에는 ‘리듬은 삶의 본질적인 부분이며, 우리의 삶은 대부분 리듬과 속도로 결정된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또한 타인과의 대화에서도 리듬은 아주 결정적인 소통 수단이며,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이해하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얼굴 표정과 몸짓이라고도 한다. 다시 말해 사람과의 리듬이 맞아야 제대로 소통이 되는 것이란다.

그렇다. 리듬이라는 말은 항상 환자와의 소통이라는 문제로 고민하는 필자 같은 전문의들에게는 꼭 필요한 개념이다. 환자 각각의 삶의 리듬과 속도를 알아내고, 삶의 리듬을 맞추는 치료를 하면 이게 바로 환자와 의사가 소통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필자가 지금 칼럼을 통해 춤 치료, 음악치료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MR검사 같은 정밀검사결과만 가지고 어떤 치료를 해야 하는지, 어떤 의사의 말이 맞는지 고민하고 싸울 필요 없이, 환자의 리듬과 속도에 맞는 치료가 필요할 경우도 많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만 의사가 환자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고,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런 점에서 때론 의사가 MRI보다 낫지 않나 싶다. 물론 조심스레 꺼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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