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이천계곡
필자도 문의재에서 사금산을 오른 적이 있다. 그때 사금산 동쪽으로 길고도 깊이 파인 골짜기는 참으로 신비롭고 장엄했다. 지도상으로 어림잡아도 20㎞를 족히 넘음직한 기나긴 골짜기는 원덕 호산에서 동해의 품에 안긴다. 삼척시 원덕읍 이천리(理川里)에 위치해 있어 이천계곡이다.
원덕읍 호산리 북부 외곽에서 7번 국도와 헤어진 뒤 옥원교를 건너 이천리로 접어든다. 맑은 시냇물을 끼고 점점 다가오는 사금산 줄기를 바라보며 4㎞ 남짓 들어가니 효자문이 보인다. 부모의 대소변을 받으며 3년 동안 병구완에 효성을 다하다가 부친 사후에는 산소 옆에 움막 짓고 3년간 시묘한 김종섭을 기려 고종 11년(1874년) 세운 효자문이다. 그는 또 궁핍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부친의 유훈에 따라 질병으로 고생하는 할아버지를 정성스레 섬기고 간호하며 하늘에 기도했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니 노송을 붙들고 어찌나 슬프게 울었는지 나무가 말라죽었다고 전해진다.
기암절벽 뒤흔들며 굉음 토하는 이천폭포
김종섭 효자문에서 1㎞ 가량 더 들어가면 폐교된 학교가 나온다. 1949년 7월 이천초등학교로 개교했다가 그 후 호산초등학교 이천분교로 격하되었으며 1995년 3월 반세기 가까운 역사를 뒤로 한 채 문을 닫았다. 학교가 사라진다는 것은 주민들이 정든 마을을 등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터에서 1.5㎞쯤 더 들어간 이천폭포는 그야말로 가관이다. 수십 미터 높이의 우람한 기암절벽을 뒤흔들며 굉음을 토하는 장쾌한 물줄기도 장관이지만, 그 아래로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짙푸른 웅덩이가 넓은 입을 벌리고 있어 두려움마저 자아낸다. 폭포 아래로 내려가면 더 멋진 자태를 볼 수 있으련만, 길도 보이지 않고 수직 벼랑을 타고 내려갈 엄두도 나지 않는다. 아쉽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아름답던 호산해변은 오간 데 없고
이천폭포까지는 길이 잘 나 있다. 과자 봉지가 눈에 띄는 것으로 미루어 피서객들도 종종 찾는 듯싶다. 그러나 이천폭포 상류로는 길이 험하고 발자취 찾기도 힘들다. 그 호젓한 분위기 속에 이름 없는 폭포수와 기묘한 암반들이 어우러져 심산유곡의 정취를 한껏 내뿜는다.
이천리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웃새터 언덕에 올라앉은 아늑한 황토민박인 하늘솔을 찾아간다. 이천폭포를 지나 만나는 삼거리에서 승지골로 이어지는 오른쪽 길로 들어서서 2㎞ 남짓 올라가면 하늘솔에 다다른다. 도중에 갈림길을 몇 차례 만나지만 하늘솔 이정표만 따라가면 된다. 완만하던 오르막길은 급경사 급커브로 돌변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다. 서너 가구가 오순도순 모여 사는 새터마을을 지나면 이내 하늘솔에 닿는다.
해발 약 600미터 고지인 이곳은 본디 화전민들이 살아가던 터전이었지만 이제는 한 가구만이 남아 유기농 농산물을 키우고 황토민박을 운영하며 고향 땅을 지키고 있다. 험준한 산악으로 에워싸인 지세를 살펴보노라면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말이 실감난다. 집 앞 둔덕에 우뚝 서있는 살구나무 두 그루가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다. 실제로 영화촬영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지만 주인장은 단호히 거절했다고 한다. 유명해지면 망가지는 것은 한순간이므로…….
원덕으로 내려와 바닷가로 간다. 그러나 50리 이천계곡이 동해로 흘러드는 호산해변은 오간 데 없고 추억의 사진만 남았을 뿐이다. LNG 기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동해에서 유일하게 모래와 자갈이 섞인 백사장과 바닥이 비칠 정도로 맑은 바닷물이 자랑이었는데 산업화의 물결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지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찾아가는 길=영동고속도로-강릉 분기점-동해고속도로-동해시-7번 국도-삼척-원덕 옥원삼거리-옥원이천로를 거쳐 이천리로 들어온다.
동서울터미널, 삼척, 울진 등지에서 호산(원덕)으로 가는 직행버스 운행. 호산에서 이천리로 가는 시내버스 운행.
▲맛있는 집=원덕읍 임원항은 동해 중부에서 손꼽히는 어항으로 횟집들이 즐비하며 삼척의 향토 별미인 곰치국으로도 이름나 있다. 싱싱한 곰치를 토막 내고 김치와 파, 소금을 넣고 끓인 다음, 고춧가루를 얹어 낸 맛이 전혀 비리지 않으면서 시원하고 담백하다. 하얀 곰치 살은 흐물흐물해 젓가락으로 먹을 수 없으므로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임원항에 있는 대부분의 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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