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늑한 숲길 넘어 낙동강 비경을 품다

우리 국토의 대동맥 백두대간은 태백산에 이르기 전, 삼수령에서 낙동정맥이라는 굵직한 가지를 뻗어 내린다. 피재라고도 불리는 삼수령(三水嶺)은 세 물줄기가 갈라지는 고개라고 해서 불리는 이름이다. 이 고개 북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한강을 거쳐 서해로, 남쪽 땅을 적신 빗물은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동쪽으로 내린 빗줄기는 오십천을 지나 동해로 흘러드는 까닭이다. 삼수령 피재에서 남쪽으로 내달린 낙동정맥은 주왕산-단석산-가지산-취서산-금정산을 지나 낙동강 동쪽 하구인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에 이르러 남해바다로 꼬리를 내린다.

낙동정맥 일원의 산자락과 언저리를 따라 이어진 길이 낙동정맥 트레일이다. 영남지방 곳곳에 드리운 낙동정맥 트레일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곳은 최북단에 위치한 봉화군이다. 봉화의 낙동정맥 트레일은 다시 세 구간으로 나뉜다. 1구간은 석개재에서 승부역, 2구간은 승부역에서 분천역, 3구간은 분천역에서 울진군 광회리 또는 영양군 우련전에 이르는 길로 이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2구간이다. 낙동정맥 트레일 봉화 2구간을 가장 편하게 답사하는 방법은 분천역에서 협곡열차를 타고 승부역으로 갔다가 걸어서 되돌아오는 것이다.

여우천에서 내려온 냇물이 갈라져 낙동강으로 흐른다 해서 부내, 한자로 분천(汾川)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1956년 영업을 시작한 분천역은 금강송을 수송하는 화물열차가 정차하며 황금기를 보냈지만 금강송 벌목이 금지되면서 2008년 11월 열차 운행이 중지되어 존폐 위기를 맞았다. 그러다가 2013년 4월 중부내륙순환열차 O-트레인과 백두대간협곡열차 V-트레인 개통으로 환승역이 된 분천역은 새롭게 기지개를 켜기에 이르렀다. 2013년 5월에는 한국-스위스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스위스 체르마트와 자매결연하고 역사와 주변을 새롭게 단장하여 알프스 마을 같은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춘양목 실어 나르던 멧갓길 더듬어

분천역에서 출발한 V-트레인은 12~13분 후 국내 최초의 민간역사이자 세계에서 가장 작은 기차역으로 알려진 양원역에 잠시 쉬었다가 간다. 1955년 12월 영주와 철암을 잇는 영암선이 개통되었지만 이곳 주민들은 승부역까지 철길을 걸어 기차를 타야 했으며 그 와중에 10여 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주민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결국 1988년 기차가 서게 되었고 주민들 스스로 역사를 지었다. 협곡열차가 10분간 정차하는 사이 양원역에서는 작은 장터가 열린다. 천 원씩인 잔막걸리와 돼지껍데기 안주가 가장 인기 있다.

양원역에서 8~9분 후 승부역에 도착한다. 승부역에서 낙동강 위로 드리운 빨간 현수교를 건너 왼쪽으로 잠시 걸으면 ‘눈꽃마을 승부’라는 비석이 있는 2구간 들머리에 닿는다. 입구에 늘어선 포장마차식 간이식당들은 주말과 휴일에만 문을 연다. 한 쌍의 장승인 낙동정맥대장군과 청정봉화여장군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걷기 좋은 숲길이 열린다.

산길치고는 제법 넓은 길은 지난날 춘양목을 실어 나르던 멧갓길(산판길)이었다. 춘양목은 춘양을 비롯한 봉화 지역에서 자라는 금강송을 일컫는다. 예전에는 미군용 트럭인 GMC에 금강송을 실어 날랐다. 멧갓길이 좁다란 오솔길로 바뀌면서 숲길의 정취는 한결 짙어간다. 그러다가 층계로 이어진 오르막길을 넘으면 배바위고개에 올라선다. 승부역에서 2.7㎞, 1시간 남짓 걸렸다.

배바위고개는 1968년 11월 우리 군에 발각된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들이 북한으로 도주하던 이동경로였다. 그때 뽕나무골 주민을 비롯해 18명이 희생되었다. 배바위고개 북쪽 기슭의 뽕나무골은 화전민들의 생활터전으로 산뽕나무가 많이 자라던 곳이었다. 그러다가 1975년 화전정리 사업으로 화전민들을 이주시키면서 뽕나무골은 빈터로 변했지만 아직도 샘터의 흔적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강변 언덕 위로 달리는 협곡열차

데크에 벤치가 놓여 쉼터로 사랑받는 배바위고개에서 분천역까지는 7.2㎞로 2시간 30분가량 더 가야 하지만 내리막이어서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배바위고개에서 잠시 내려오면 길손의 안전을 지켜주는 길상목(吉祥木)인 수령 500년의 엄나무와 만난다. 이에 얽힌 전설.

옛날 배바위산에는 사람의 혼을 홀리는 요망한 도깨비가 살았다. 산신령이 고갯마루에 엄나무를 심으라고 일렀지만 도깨비가 두려워 아무도 엄나무를 심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한 노인이 엄나무를 심고는 며칠간 앓다 죽었다. 그 뒤로는 더 이상 도깨비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물 맑고 청아한 비동골과 소 장사꾼들이 소를 끌고 지나던 소장시길(소장사길)을 헤치면 비동마을에 다다른다. 기와지붕을 얹은 현대식 귀틀집이 눈길을 끈다. 산나물, 고로쇠수액, 칡즙, 표고버섯, 고추 등을 파는 민박집이다. 비동마을 아래로 낙동강이 굽이친다. 이제 분천역까지 4㎞의 콘크리트길이 남았다.

낙동강의 비경을 느긋하게 감상하며 걷다 보면 카약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정겹게 다가온다. 때마침 백두대간협곡열차가 지난다. 낙동강의 시원한 물살을 헤치는 카약과 강변 언덕 위의 철길을 달리는 협곡열차가 손잡은 풍경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글ㆍ사진=신성순(여행작가)

▲찾아가는 길=중앙고속도로-풍기 나들목 또는 영주 나들목-영주시-울진 방면 36번 국도를 거쳐 분천역으로 온다.

백두대간협곡열차 외에 동대구역이나 부산 부전역에서 출발하는 강릉 방면 무궁화호 열차도 분천역과 승부역을 경유한다. 운행시간은 요일별 및 계절별로 달라지므로 레츠코레일 홈페이지(www.letskorail.com) 참조.

▲맛있는 집=분천역 주변에 먹거리장터를 비롯해 10여 개의 향토음식점이 있다. 집집마다 식단은 다소 다르지만 산채비빔밥, 곤드레나물밥, 보리밥, 시래기국밥, 도토리묵, 메밀전병, 손두부, 감자전, 모둠전 등의 토속음식을 맛깔스럽게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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