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정상, 아득한 빙하 세계

스위스 융프라우요흐는 ‘Top of Europe'으로 불리는 로망의 공간이다. 알프스의 최고봉에 기댄 열차역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해발 3453m에 들어서 있다. 붉은 열차를 타고 정상에 오르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빙하가 아득하게 펼쳐진다. 한 템포 더디게 둘러볼수록 세계의 명소로 추앙받는 비밀과 맞닥뜨리게 된다.

알프스의 거봉인 융프라우, 묀히, 아이거를 연결하는 매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알레취 빙하. 알프스 최대인 알레취 빙하는 길이가 무려 22km에 달한다. 독일의 흑림지대까지 바람처럼 뻗어있다. 알레취 빙하는 최고봉 융프라우(4158m)와 함께 200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알프스의 자연경관으로 세계유산에 등록된 최초의 일이었다.

또 하나의 매개는 붉은 색 산악열차다. 클라이네샤이덱에서 출발한 톱니바퀴 열차는 묀히, 아이거 등 빙벽의 봉우리들을 뚫고 융프라우의 턱밑까지 오른다. 터널 속 열차가 잠시 숨을 고르는 아이거반트, 아이스미어역은 단순한 동굴속 간이역이 아니라 아이거 봉우리의 한 가운데 위치했다. 아이거는 수많은 등반가들에게 산악등정의 꿈처럼 여겨지는 봉우리이기도 하다. 빙벽 사이로 드러난 조그마한 창밖에서 빙하의 향연은 시작된다. 그 열차의 정점에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역인 융프라우요흐가 자리잡았다.

100년 세월을 넘어선 산악 열차

세월을 되짚어 보면 융프라우요흐의 비밀은 더욱 숙연해진다. 스위스 철도의 왕으로 불리던 아돌프 구에르 첼러는 1896년 아이거와 묀히의 암벽을 뚫고 융프라우까지 톱니바퀴 철로를 건설하는 공사에 도전한다. 당초 7년을 예상했던 공정은 폭설, 혹한, 사고 등으로 16년이 소요됐고 구에르 첼러가 죽은 뒤인 1912년이 되어서야 열차는 비로소 개통된다. 융프라우 철도는 이제 운행된 지 100년 세월을 넘어섰고 시시각각 변하는 변화무쌍한 경관과 함께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융프라우요흐의 정상은 신비로운 빙하와 체험의 세계다. 융프라우요흐에 위치한 유럽 최고 높이 전망대 스핑스에서 내려다보는 정경은 압권이다. 융프라우요흐의 연평균 기온은 영하 9.7도. 시야를 가득 채우는 흰 물결은 눈이 아니라 빙하이며 사계절 눈부신 자태를 자랑한다. 이곳의 빙하는 아직도 움직이고 있으며 굉음과 함께 흘러내리기도 한다.

빙하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얼음 궁전은 알레취 빙하 30m 아래를 다듬어 얼음세상을 빚어 놓았다. 수천년 겹겹이 쌓인 빙하의 세월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융프라우요흐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우체통에 엽서 한장 띄우거나 거친 호흡을 끌어안고 만년설에 발자국을 새기는 시간 역시 인상적이다. 고원지대인 플라토에 나서면 스위스 국기와 융프라우 봉우리를 등지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유럽 가장 높은 역에서의 이색체험

정상의 변덕스런 날씨에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융프라우 일대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날씨 변화는 유네스코 등재 사유중 하나다. 구름 위로 솟은 반전의 봉우리들이 탄성을 자아내기도 한다.

융프라우요흐에서는 열차 시간에 쫓겨 내부만 휙 둘러보고 떠나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열차 개통 100주년을 기념해 융프라우요흐에는 융프라우 파노라마와 알파인 센세이션이 문을 열어 암벽 속 터널을 거닐며 봉우리의 풍광과 산악열차의 역사를 더듬을 수 있게 됐다. 궂은 날에도 360도 입체 화면을 통해 빙하 세계에 빠져들 수 있다.

그윽하게 레스토랑에 앉아 설경을 벗삼아 뜨거운 커피 한잔과 스위스 전통음식을 맛보는 것도 꽤 유쾌한 시간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초콜릿 공장인 ‘린트 초콜릿 월드’에서 직접 제조과정을 엿보고, 고도 3000m 에서 만들어진 초콜릿을 맛보는 독특한 체험도 곁들여진다. 훈풍이 분뒤, 묀히요흐 산장까지 빙하 트레킹에 나서는 것은 융프라우요흐 등정에 숨겨진 또 다른 선물이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융프라우요흐 일대의 산악열차들은 인터라켄 오스트역이 관문이다. 취리히, 제네바 등에서 이동이 가능하며 프랑스 파리,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직통고속열차도 운행중이다.

▲숙소=융프라우 일대에는 호텔 외에 산장호텔, 호스텔, 캠핑장 등 다양한 형태의 숙소가 마련돼 있다. 장기투숙들이 스위스 전통 가옥인 샬레를 빌리는 체험도 가능하다. 스키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2월 중순 이전의 가격대가 저렴한 편이다.

▲레스토랑=융프라우요흐 정상에서 정찬을 즐기려면 크리스탈 레스토랑을 이용한다. 빙하를 배경으로 전통 스위스 요리를 즐길수 있다. 부담 없는 메뉴가 준비된 셀프서비스 레스토랑도 이용 가능하다. 커피바에서는 CF에 나오는 정겨운 컵라면을 맛볼수 있다.

▲기타정보=여러 산을 둘러보거나 스키, 하이킹을 할 경우에는 VIP 패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VIP패스는 1~6일로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으며, 융프라우 지역 7개 노선 철도 및 곤돌라 무료 탑승과 레스토랑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 정상에서의 여벌옷은 필수. 상세한 현지정보는 융프라우철도 홈페이지(www.jungfrau.co.kr)를 통해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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